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네디 Aug 08. 2023

빌런들의 성공 철학 스핀오프 or 시퀼 1. 회생

다시 살기로 하다.


굳게 믿었던 동업자에게 당했다.

몸담았던 시스템에서 모든 이권을 포기하고 나와 정산금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고, 새로 출발할 사업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받길 바랐으나 기일은 매번 연기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손과 발을 잘라 주저앉히려는 의도였다.

내게 갚을 돈으로 대여섯 필리핀 여인들에게 집과 차를 사주고, 사업 자금까지 대주던 호색한.

직장인이 착실히 살며 수십 년 모아야 할 정도의 금액이긴 했으나 그 물질적 상실 이상으로 나를 더욱 피폐하게 만든 건 나에 대한 기만과 배신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다시 거듭나려 노력했지만, 강도 높은 지진 이후의 여진과 같은, 그의 이어지는 음모에 연이어 당하며 받을 돈을 포함한 모든 자산을 잃었다.

매번 선한 얼굴로 다가와 화해하는 척하고 뒤에서는 음모를 꾸며 내 급소인 자금줄과 인맥을 무참히 끊어 버린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만들고 이를 누차 공격하는 철저함으로 사람의 피를 말리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 세심했던 디테일 악마.

다시 무엇을 시작하기 겁났고, 그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종적을 감춘 체 한국으로 돌아가 지방 여기저기 머물며 폐인으로 살았고,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 위에서 혹여 취중에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려워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견디기 힘든 자기 전 암흑의 시간 그리고 끊임없이 절망으로 이끄는 불길한 상상들.

내 머릿속은 곧 지옥으로 가자고 속삭이는 마귀들로 가득한 정신적 고통의 세계였다.

그나마 누워있으니 육신은 편했다.

체크아웃 이후 터미널이나 인근 벤치에서 하루 종일 멍하게 있다가 밤늦은 시간 피시방에서 야간 정액을 끊고 밤을 보낸 뒤 이른 아침 밖으로 나와 터미널이나 모텔 주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졸고, 저녁 8시가 돼서야 3만 원을 내고 다음날 12시까지 모텔에서 지내는 날들을 반복했으니 말이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아 아껴야 했다.

필리핀에서는 2천 원 같이 썼던, 800페소도 안 되는 2만 원을 아끼려 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인들에게 연락해 도움 청하려 하지 않았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잘 나가는 후배, 친구, 선배였던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은 허울의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지내던 10월 말의 어느 날,

이틀 연속 PC방에서 버텨야 했다.

허리 디스크로 군 면제 이력을 가진 놈에게는 쉽지 않은 일.

첫날은 그런대로 적응돼 괜찮았지만 둘째 날은 극악의 고통이었다.

감기 기운이 살짝 맴도는 것이 차가운 바람에 몸이 더 상할세라 터미널 대기석에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으려 했으나 경비 아저씨가 와서 깨우고, 갔겠지 싶어 다시 누웠다가 이에 단단히 화난 양반이 당장 나가라 소리치니 남들 보기엔 영락없는 노숙자.

아저씨가 무서워서, 혹시라도 받게 될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창피함에 쫓겨 밖으로 나왔다.

 

'내일은 내 생일. 내일만큼은 편하게 잠들고 싶다.'


남은 돈 3만 4천 원, 그래서 이틀을 버틴 거다.

전날 편의점에서 사발면으로 한 끼 때웠으니 됐고, 오늘 하루 거르면 내일 생일상으로 분식집에서 라면에 공깃밥을 말아먹을 수 있으니 그 정도면 만족.

매 생일마다 변변치 않은 살림의 큰누나가 며칠 새 매형 연봉을 벌기도 하는 동생한테 굳이 누나 노릇하겠다고 10만 원을 보내준다.

이틀 반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금액.


'저녁 8시에 모텔 들어가서 빨래와 샤워를 마치고 암울한 상상 없이 바로 잠들었으면 좋겠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곯아떨어지길 바랐다.

내비게이션 앱을 보며 15km가량의 경로를 선택.

인적을 피해 한적한 교외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면 3 시간 정도 소요될 테니 오후 7시. 평소 깐깐한 모텔 주인에게 생일 핑계로 한 시간 에누리라도 해볼 요량이었다.

500m쯤 걸어 교외에 접어들자마자 종아리 근육이 당겨오는 게 왠지 불편하긴 했지만, 보기 싫은 종, 인간을 피해 혼자일 수 있다는 기대에 다시금 편해졌다.

오랜만에 노래 부르며 흥이라도 내보자 싶어 몇 가락 뽑아내고, 다음 애창곡을 부르는 순간부터 숨이 가빠 온다.

잠시 후 노래하던 입마저 콧구멍을 도와 숨을 들여 내쉬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이내 터질 듯한 고통이 가슴에 몰려온다.

잠깐 쉬면 되겠지 싶었는데 이명이 오고, 시야가 흐려지더니 균형감각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거친 숨에 입안이 바짝 마르고 곧 목구멍까지 막힐 것 같은 답답하고 불길한 느낌.

이건 아니었다. 오늘내일 하긴 했다만 갈 때 가더라도 계획적으로 가고 싶었다.

그 순간 필리핀에서 알고 지내던 건달 형님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같은 상황에서 그 형님이 하셨다는 처치대로 잇몸을 잔뜩 물어 피를 내고 그 뜨거운 것을 삼켜 목구멍으로 흘려보내니 좀 나아졌다.

의학적 유불리의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최악의 상황에서 차악의 상황으로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역시 모든 문제에 있어 난 기분이 우선이다.

답답했던 일 하나 해결한 성취감이 심신에 용기와 활력을 북돋는 듯.

저리고 뜨거웠던 머리에서 다시 찬 기온이 느껴지고, 가빴던 숨이 평온해진 후에야 상체를 일으켰다.

청바지 두 벌을 제외하면 입고 있는 옷이나 백팩에 담긴 상의 모두 흰색 아니면 검은색

컬러 TV 세상이 도래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내 손으로 직접 산 옷들 이건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류 흑백논리.

누런 흙으로 얼룩진 흰 상의를 여러 번 털었지만 흔적은 여전했다.

땅을 짚고 일어나 가벼운 현기증과 싸워 이기고, 엉덩이를 털며 주변 앉을 만한 곳을 찾으려 주위를 살피는데 하필 그 순간 떨어지는 얄미운 빗방울.

만사가 나를 엎치고 덮치는 시기임을 상기시켜 주는 대자연 되시겠다.

싫어도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인간 세상을 향해 다시 걸었다.

빗방울이 굵어짐에 따라 채도를 달리하며 범위를 확대하는 흙 자국의 그레이디언트.

가을비는 포토샵 장인이었다.

온몸이 다 젖고 나서야 주머니 속 담배가 불현듯 떠오르고, 급하게 꺼내 열어 보니 네 마리 모두 익사한 체로 발견된다.

자기가 목청 높여 울 때까지 기다리라 하고, 때 되면 한 개비씩만 피라며 간헐적 금연을 종용하던 두 시간 터울의 담배 알람은 역할을 상실했다.

나 역시 끽연의 기회를 상실했다.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

간접흡연의 희생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담배가 주는 위안. 그것이 절실한 어느 실패자의 금단현상이 이제 막 발현을 개시했다.

늦게 하면 늦게 할수록 이익이라 여기며 이발비조차 아껴왔던 터라 눈썹 밑으로 한참이나 내려온 앞머리카락이 거슬린다. 심하게 짜증 나는 것이 금단의 전조임이 분명하다.

처자식들 먹여 살리고 싶다며 두 줄기 눈물을 흘리던 윤 OO, 형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고 이름이라도 공개하고 싶은 그 인간이 떠오른다.

높은 이잣돈을 써서 힘겹게 버티던 시기에 눈물의 곡절이 그리도 구슬퍼 내 수익까지 포기해 가며 빌려줬던 5천만 원을 갚지 않고 있던 그 인간.

적은 돈이나마 급하게 먼저 받을라치면 그 금액을 장기간에 걸쳐 분할로 갚으려는 악덕 채무자들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알기에 참고 참으며 기다렸건만 부득이 금단현상의 강요에 못 이겨 전화한다.


"형!"

"어! 잘 지냈어?"

"내가 잘 지내겠어? 얼마라도 있으면 보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구차하게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보내."

"내가 있으면 진작 보냈지. 진짜 한 푼도 없어. 나 지금 너무 힘들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큰소리로 말했다.

"담뱃값도 없으니까 당장 보내라고 이 XX야. 남들 같았으면 너는 진작 처맞아 죽었어. 내가 지금까지 싫은 소리 한 번 하디? 전에 나한테 몇 번 사기 쳤어도 내가 이해하고 넘어갔어. 게다가 돈까지 빌려줬는데 몇 개월 동안 십전 한 푼 안 갚냐? 내가 그 돈 때문에 낸 이자가 이미 원금 이상인 걸 알면서도 그래?"

"진짜 한 푼도 없어. 손님 들어오면 버는 대로 다 보낼게."


질질 짜는 소리가 이어진다.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상황.

번화가에 도착해 눈에 띄는 건물로 들어가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일단 한 개비라도 말려서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데 라이터도 젖었는지 불이 켜지지 않는다.

절박한 심정에 손을 우악스럽게 흔들어 빗물을 털고, 체온으로 어떻게 해보려 라이터를 한동안 움켜쥐고 있다가 힘 있게 켜기를 반복, 세 번째 시도에 뻑뻑함이 느껴진다.

라이터돌이 빠졌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떠밀고 있는 느낌.

나를 꺾고 굴복시키려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남다른 오기였다.

가진 것 두 개를 버릴지라도 얻고자 하는 하나를 향한 욕망을 지키고 채우려는 오기가 있었기에 찬란한 시절의 내가 있었다.

내일 생일상에서 라면과 함께 먹으려던 공깃밥을 포기하고 라이터를 샀다.

상황과 비유가 우습게 보여도 상관없다. 나는 원래 그런 놈이니.

젖은 담배 한 개비 꺼내 말리는데 하필이면 그때 전화가 울린다.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가방 덮개에 허리가 부러지는 담배.

쌍욕을 내뱉으며 발신자를 확인하고, 상대의 격에 맞는 목소리로 다듬은 뒤


"에에! 회장님!"

"일 잘 마무리했니?"

"아니요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O 회장은 내가 망한 게 아니라 시급을 다투는 문제로 급하게 출장 나온 걸로 알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거짓말했다.


"너 정신없을 것 같아서 지난주에 윤 OO한테 전화하고 갔거든. 얘기하디?"


가끔 바쁠 때마다 그 인간에게 O 회장의 잔심부름을 시켰던지라 서로 잘 알던 사이.

내가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윤 OO가 몰래 해 먹은 거다.


"아니요. 그런 얘기 전혀 없었습니다."

"어허! 그거 웃긴 XX네. 너 지금 한창 바쁠 테니까 괜히 신경 쓰게 하지 말고 나 귀국하면 상황 봐서 너한테 결과 보고하라고 했는데. 이번에 커미션도 많이 나왔을 거야. 3일 내내 밤새우다시피 게임했거든."


대화를 마치고 바로 윤 OO에게 전화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꺼져 있었다.

앞서 했던 전화는 혹시나 내가 알고 있는지 상황 파악해 보려고 받은 듯.

수상하면 끝까지 캐내려는 내 성격을 잘 아는 인간이라 뭔가 알아내서 다시 했을 거라는 예측으로 전화를 꺼 놓은 게 확실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는 다 틀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절망의 마귀들과 함께 밤새 나를 괴롭힐 테니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한참이나 말리고 입에 물었다.

한 모금 한 모금 빨 때마다 조금씩 밀려오는 회한.

그 한탄과 반성의 감정을 감당하기에는 한 개비로 부족했다.

두 개비를 거푸 피우고도 모자라 남은 마지막 하나에 불을 댕기려니 갑자기 속절없는 눈물이 터져 흐른다.

남을 믿고 도와주거나 큰돈을 맡겼다가 여러 번 낭패를 겪어야 했다.

양심과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도우려 했던 일의 결과마저 이렇다면 다른 건 따질 필요도 없다.  

내가 당한 모든 일들이 내 결정에 의해 이뤄졌으니 결국 내가 가장 큰 죄인이며 마땅히 벌 받고 반성해야 함을 처음 인정한 날.

뜨거운 피,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맛봐야 했던 슬프고 아픈 날.

난 태생이 그런 놈이었다. 바뀌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매번 비슷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재기한다고 한들 미래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참으로 암담했다.

불안함을 거두려 앉았다 서있기를 반복하고 드디어 8시. 힘겹게 모텔로 올라갔다.

비에 젖어 흙으로 얼룩진 옷을 입은 놈이 건네는 흠뻑 젖은 3만 원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받고 키를 내어주는 주인아주머니.

7시에 들어와 아주머니를 구슬려 한 시간 먼저 입실하려던 생각을 접은 게 다행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동으로 켜지는 조명과 TV가 날 반긴다.

피비린내와 담배 냄새 가득한 입안의 불쾌함부터 해소하고자 양치 먼저 마치고 옷을 입은 체 샤워기 물을 맞았다.

허리를 숙일 수는 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의문일 만큼 지쳐 선체로 상의에 비누 칠하며 비벼보지만 흙 자국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걸 비틀고 짜서 널었다가는 몸에 비누칠할 여력마저 소진될 테니 대충 타협하고 옷을 벗어 걸어둔다.

어찌어찌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은 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데 아직 끄지 못한 TV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박혜진 아나운서였다.

2003년 MBC 생방송 화제집중 마지막 방송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던,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던 그녀.

그때부터 난 그녀가 좋았다.

그녀를 좋아하던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좋았다.

눈을 감아 그 시절을 회상하니 또다시 눈물이 흐르고......


다음날 아침,

우려와 달리 지난밤은 좋은 기억을 회상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으면 했던 바람도 이뤄졌다.

뭔가 크게 바뀐 듯한 기분.

뻐근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12시간 이상 숙면해서인지 정신은 멀쩡했다.

오늘은 내 생일.

걸어보기로 했다.

어제 1km 정도를 걷다가 죽을 뻔했으니 어제 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오늘은 1.1km를 걷다가 죽을 뻔하면 된다는 생각, 아니 오기.

지도검색에서 1.1km 되는 지점의 건물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적은 돈이라서 받을 마음이 없었던 몇십, 몇 백만 원 단위의 빚진 자들을 우선 떠올리고, 두문불출에서 벗어나 한 명씩 연락해 받아내야겠다고 다짐하며 걸었다.

피사체에서 연상되는 글감을 기록하며 걷고, 두 딸을 떠올려 생의 의지를 키우며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가쁜 숨을 고르며 혈압약을 비롯 반드시 먹어야 할 약 목록을 작성하며 충분히 쉬고, 모텔 방향으로 다시 1km 이상을 걸어 도착한 터미널 근처의 분식집.

종종 와서 라면에 공깃밥을 시켜 먹던 녀석이 떨렁 라면 하나 시켜 먹는 사정을 짐작하셨는지 아주머니께서 밥을 내어 주신다.

놀라 쳐다보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주머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어제 그런 놈도 있는 반면 오늘 이런 분도 계신다.

십수 년의 세월 메말라 있던 눈에서 한 번 터지기 시작하니 두 번, 세 번 아주 그냥 봇물이 터진다.

울컥하며 맺히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고개 들어 눈을 부라리며 안구 전체에 얇게 퍼뜨려 말렸다.

남김없이 비우고 돈을 내며,


"정말 감사합니다."


또 한 번 같은 모습으로 인사받으시는 아주머니.

다시 살고자 하는 기운이 주변에 내 의지를 알려 재기를 도우려는 걸까?

축복 속에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생일 다운 생일.

오후에는 여지없이 누나가 축하금을 보내 줬고, 다음날부터 여기저기 연락해 형편을 숨김없이 알리니 내게 신세 졌던 이들 하나둘씩 성의를 보였다.

모텔 비용을 미리 지불해 안정된 거처에서 머물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 한 달 뒤에는 매일 10km씩 걸을 수 있었으며, 책상에 앉아 나른해질 때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글 쓰는 습관에 숙면도 수월해졌다.


그렇게 지내기를 6개월......

작가의 이전글 뚫어야 산다 or 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