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찰

외로움

by styleest

외롭다. 나는 요즘들어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홀로 맥주를 마시며 '아, 참 외롭다'고 궁상을 떨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외로움은 무엇일까.




관계는 'a = b'의 등호가 성립될 때 시작되고 유지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a는 내가 주는 것이고 b는 내가 받는 것이다. 즉, 관계 유지의 핵심은 '기브 앤 테이크의 균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관계가 시작되면 변수가 생긴다. 내 노력을 더 크게 생각하며 상대에게는 더 많이 받고 싶어한다. 내 노력에 대한 고평가와 상대에 대한 기대가 더해지며 'a = b'라는 등식은 이렇게 바뀐다.

ax > by

다시 말해 관계 유지의 핵심은 사실상 ax와 by의 간극을 자신이 버틸 수 있는 범위, 즉 역치 내에서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ax가 by보다 월등히 크다고 느낄 때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ax의 크기를 줄이던가 by의 크기를 키우던가.

전자는 '의도된 외면'으로 나타난다. 상대에게 투입할 돈과 시간, 노력을 (충분히 상대에게 투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일부러 다른 곳에 투입한다. 연애를 예로 들면 이성을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모임에 나가거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회사를 예로 들면 할 일이 산더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뒤로하고 정시퇴근을 해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후자는 '집착과 욕망'으로 나타난다. 상대에게 '나에게 내가 원하는 걸 더 내놓으라'고 직간접적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요즘 왜 나한테 연락 잘 안해?', '요즘 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 안해?', '나 안 보고싶어?'라고 묻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연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무언가 다른 보상을 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같다.

외로움은 by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ax를 줄이고 싶지 않거나 혹은 줄일 수 없을 때.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by는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나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 같고 괜시리 힘이 빠지고 커지지 않는 by에 대해 억울하고 화도 나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 ax를 줄이거나 by를 키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으므로) 딱히 해결책이 없어 답답해 하다가 문득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아, 외롭다.'


외로움이 반복되면 ax를 줄이거나 by를 키우는 것 모두에 지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다. 바로 변수를 cz로 아예 바꿔버리는 것이다. 다른 이성에 눈을 돌린다거나 이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들어 나는 종종 외롭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논리는 있지만 결론이 없다. 아, 이토록 의미 없는 고찰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