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찰

기다림

by styleest

이승렬의 ‘기다림’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미칠 것 같아. 기다림 내게 아직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니가 미웠어. 참을 수밖에. 내게 주어진 다른 길 없어. 속삭여 불러보는 네 이름.”


이 얼마나 솔직 담백한 가사란 말인가. 그 흔한 미사어구 하나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답답하면서도 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뜬금없이 고등학교 과학 지식 하나. 물리적 현상을 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벡터와 스칼라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방향'이다.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나타내는 반면, 스칼라는 크기만을 나타낸다.

방향이 있다는 것은 쉽게 말해 ‘시작 지점’과 ‘종료 지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분면에 x점과 y점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다릴게~”에 담긴 기다림은 ‘벡터’로 설명할 수 있다.



친구들과 저녁에 만날 약속을 잡는다면 기다림의 시작점은 ‘지금’이고 종료 지점은 만나기로 한 날짜와 시간, 장소이다. 군인에게는 입대 날이 기다림의 시작점이고 제대가 종료 지점이다.
벡터 개념이 적용된 기다림은 기다림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가 확실하다. x부터 y까지 최단거리로 움직이지 못해 쓸데없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던가, 도달한 y지점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결과물)이 아니던가.

이유가 확실하다는 것은 달리 말해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작정 기다림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도 충분히 결과를 예상할 수 있으며, 비교적 명확한 기준에 따라서 에너지를 더 투입할지 아니면 포기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칼라 개념이 적용된 기다림은 다르다. 방향이 없이 크기만 있다. 종료 지점(y)이 없다는 것은 기다림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모두 나(x)에게 귀속됨을 의미한다. 그게 시간적 에너지이건 물리적 에너지이건 간에 오로지 그 에너지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뚜렷이 기대되는 보상도 없이 내가 노력한 딱 그만큼 내가 힘들다는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연인이 언제 돌아온다는 기다림의 종료 지점이 없다. 너를 기다리면 나를 다시 만나줄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래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다. 수험생의 수험기간이 힘든 이유도 비슷하다. 기다리는 내가(x) 명확한 데에 반해 결과(y)는 매우 불확실하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만큼 공부하는 시간도 힘들고,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에도 내가 투입한 노력만큼 좌절감이 크다. 공무원보다 일반 직장인이 힘든 이유도 그러하다. 공무원은 y지점이 비교적 예측이 가능하다. 은퇴 시점도 분명하고 연봉 인상률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직장인은 아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할지 못할지, 못한다면 보상은 어떻게 될지,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내가 언제 이 조직에서 쫓겨날지 불확실하다. 그래서 일을 하는 만큼 힘들다.



이 어찌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