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개념을 적용시킨 기다림은 ‘기다리는 데 투입되는 에너지의 크기’이며 이는 곧 ‘무언가 기다림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어떤 것에 대한 열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의 연인이 언제 퇴근할 지 모르는 당신을, 오로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힘들지 않게 웃으며 기다린다면? 그것은 필시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것이다. 기나긴 수험기간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대학진학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이다. 오랜 시간 비교적 꾸준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장인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일에 대한 (혹은 회사에 대한) 열정이 큰 것이다.
때문에 기다림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당신의 열망이 바닥났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때는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더 키우거나, 혹은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열망을 키우기 위해서는 도착 지점(y)을 아예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로 설정하는 게 가장 쉽다. 예를 들어 ‘나는 기다리는 게 힘들지 않아. 못 보면 뭐 어때,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 걸’이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냐. 내가 이 일을 이토록 좋아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연봉 따위 오르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것이다.
만약 포기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종료 지점(y)이 없다는 것은 기다림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모두 나(x)에게 귀속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문에 오로지 나를 위한다면 그 에너지를 분산시킬 방법을 찾아두는 게 좋다. 다른 이성을 만나면서 시간을 두고 차츰 헤어진 연인을 잊는다던가 이직할 직장을 찾아두고 지금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까닭이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당신이 만약 누군가의 기다림을 보고 있는 입장이라면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힘들어하지 않던 상대방이 기다림에 힘들어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런 상대방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방향을, 즉 목표 지점(y)을 조금만 더 명확히 제시해 주라고 말이다. 연인이라면 ‘나도 너만큼 널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리더(사장)라면 눈에 보이는 보상을 손에 쥐어주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만약 그 기다림이 원치 않는 기다림이라면 깨끗하게 무시해라. 과학적으로도 에너지는 어차피 무한하게 생기지 않는다. 상대방의 그 에너지는 언젠가는 바닥날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당신을 혹은 조직을 정리하게 될 터이니.
노래 가사로 시작한 글을 노래 가사로 맺으려 한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과 기가 막히게 일맥상통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김동률의 ‘배려’.
“진정 나를 위한다면 이쯤에서 그만 날 놓아줘. 사랑했던 마음이라도 간직할 수 있게. 이런 내가 가엾다면 두 번 다시 날 찾지 말아줘. 니가 없는 체로 세상에 길들여질 수 있게. 돌아올 수 없는 거라면 차라리 멀리 떠나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