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고찰

사랑한다는 말

by styleest

어릴 적 수학시간에 배운 ‘허수’를 기억하는가? 소문자 아이(i)로 표현되는 이 수는 말 그대로 상상의(Imaginary) 수이다. 기존까지 수학의 규칙상 ‘제곱한 모든 수는 양수’여야 했는데, 어떤 수학자가 ‘제곱하여 음수가 되는 수가 있으면 3차 방정식을 더욱 쉽게 풀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허수라는 것을 만들었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우연찮게 김동률의 ‘사랑이라는 말’이란 노래를 듣다가 문득, 사랑은 허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주 흔하게 쓴다. 연인 사이는 물론이고 부모와 아이, 친구, 은사, 직장동료 등 모든 관계에 “사랑한다”말하기도 하며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신은 인간을 사랑하며 그들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이른다. 그런데 누구는 또 사랑이란 단어로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상대방에게 “사랑하니까 용서해달라”며 배려와 양보를 요구하며,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이던 연인에게 “우리 이제 헤어지자.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놔주는 거야”라는 말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고(姑)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며 사랑이 너무 아플 수도 있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아,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렘, 행복감, 두근거림, 애잔함, 애틋함, 간절함, 공허함, 슬픔, 아픔, 아련함 등. 사랑은 이 세상 모든 감정을 다 담을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 어떤 실체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랑’이란 말에 꽤나 집착한다. 연인끼리는 서로가 키워가는 감정을 확인하고 또 안심 받기 위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전한다. 나 또한 얼마 전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 때 쓰는 아들을 꾸중했는데, 조그마한 녀석이 삐쳐서는 “이제 아빠 사랑 안 할거야!”라고 소리질렀다. 그때 그 말이 얼마나 섭섭하던지 왠지 모르게 순간 마음 한 켠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계산하기에 급급했던 허수는 사실은 꽤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디선가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저명한 수학자들이 이 허수를 실체화하고 실용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발명을 허수 없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허수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의 연인이 묻는다. “나 사랑해?”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사랑하지.” 그러면 당신의 연인이 또 묻는다. “나 왜 사랑해?” 자,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이 선뜻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이라고 넘어가거나, 일부 몇몇은 이 질문 자체를 기피하고 귀찮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말이 쓰임새를 갖기 위해서는 ‘나는 이 사람을 왜 사랑하는가’, ‘나는 이 사람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가’, ‘내가 이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는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샐리: 미안하지만 해리, 송년의 밤이고, 외롭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랑한단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이런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샐리: 몰라.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이건 어때? 더운 날씨에도 감기에 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데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널 사랑해. 날 바보 취급하며 쳐다볼 때 코 가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네 모습과, 너와 헤어져서 돌아올 때 내 옷에 뭍은 네 향수 냄새를 사랑해.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이기에 널 사랑해. 지금이 송년이고 외로워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냐. 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란 말을 해주고 싶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해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기 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대상인 샐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해리는 자신이 말하는 “사랑해”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나도 이 말에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에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