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고찰

이별에 대처 하는 우리의 자세(1) 이별은 왜 아프기만 한 걸까

by styleest

사랑이란 말과 다르게 ‘이별’은 그 정체가 분명하다. 관계를 맺고 있던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며 이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으로 대변된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담기어 표현될 수 있는 반면, 이별은 그렇지 않다. 이 말에는 아픔, 슬픔, 괴로움, 허탈함 등 부정적인 감정만이 담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별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은 아마 큰 의미가 없을 터.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가수 이승환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자,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지. 그럴 리 없어, 내 사랑만큼은 특별하다 생각하면 오산. 어찌 보면 요즘 그녀 평소와 다르진 않았는지. 무심한 표정 싸늘한 말투 모든 것엔 그럴듯한 이유.
있을 때 잘해주기,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게. 그녀에게 감사하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아니, 도대체가 궁금하다. 나는 왜 떠날 게 뻔한 그녀에게 더 잘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과연 진정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적절하단 말인가.



이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별은 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지 생각해보자. 앞선 ‘외로움에 대한 고찰’에서 나는 관계는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ax)과 상대방으로부터 받기를 바라는 것(by) 간의 균형’이라고 설명했다. (ax = by)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을 더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결국 부등식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ax > by) 여기에 한 가지 변수를 추가하고자 한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애착 정도 ‘A’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나는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있다. 여기서 나의 기다림은 ax이고 바라는 보상은 by이다. 자, 상대가 ‘그저 그냥 아는 친구’라면 당신은 어떤 보상을 바랄 것인가? 아마 “미안, 많이 기다렸지”라는 사과 한 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애인이라면? 바라는 보상이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과 한 마디로는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이상의 심리적 보상을 원할 것이라는 말이다. 즉, 내가 상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애착 정도’에 따라 by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우리가 고작 ‘시험 100점’을 조건으로 부모에게 어마 무시한 물리적 보상을 ‘뻔뻔하게’ 원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앞선 부등식은 등식 ‘A + ax = by’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간단한 사칙연산의 규칙에 따라 이렇게 바꿀 수 있다.

A = by - ax

애착 정도를 의미하는 변수 A는 어쩌면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표현하는 감정에 해당된다. 신뢰와 기대, 의지 등 사랑의 기본적인 감정이 변수 A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만약 A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이란 감정으로 정의한다면, 이 공식에서 우리는 왜 이별이 부정적인 건지 알 수 있다. 이별이란 관계를 맺고 있던 상대와 헤어짐을 의미한다. 상대방이 없어짐으로써 by가 0이 되는 순간이 바로 이별이며 이 경우 ‘A = -ax’가 된다. 즉, 상대에게 느끼던 애착 정도가 내가 상대에게 주었던 그 크기만큼 고스란히 마이너스의 값으로 남는 것이다. “사랑한 만큼 아프다”는 말이 진부할지언정 결코 거짓은 아니었던 셈이다.




姑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한다고 바랐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너무 아픈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