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고찰

이별에 대처 하는 우리의 자세(2) 우리가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이유

by styleest

앞선 글에서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정의했다.

A = by – ax

여기서 A는 ‘상대방에 대한 애착 정도’, 즉 사랑을 의미한다. 또한 by는 상대방으로부터 받기를 바라는 것이고 ax는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별을 한다는 것은 by = 0이 되는 상태이며 이 경우 A = -ax가 되므로, 이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만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승환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노래 가사를 살펴보자. 그는 이 노래에서 연인이 이별을 고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있을 때 잘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 ‘미련’이다. 미련의 사전적 정의는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다. 상대방이 없어진 시점에서 내 사랑에 남은 것은 –ax, 즉 내가 상대에게 주었던 것에 대한 크기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미련의 실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왜 이것밖에 못해줬을까, 만약 이보다 더 잘해줬더라면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왜 이것밖에 못해줬을까’하는 후회를 미련이라고 인지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미련은 내가 떠올리는 ‘내가 해주었던 것’에 대한 생각이다.



자, 이러한 맥락에서 이승환의 노래 가사는 완벽하게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있을 때 잘해준다는 것은 ax의 크기를 키운다는 것. 그런데 ax는 이별 이후에 미련으로 바뀌기 때문에 잘해주는 만큼 미련이 더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사는 “확실하게 정 때내기,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게” 정도로 바꿔야 현실적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승환의 노래 가사처럼 이별이 올 거 같은 순간,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심지어는 ‘그 이별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왜일까? 사랑과 이별을 구분하지 않고, 이별 역시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A = by – ax 이다. 그리고 이별은 by = 0이 되는 순간이다. 이별 이후 남는 미련이라는 감정은 A = – ax 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별을 한다 해도, 즉 by = 0이 된다 해도 변수 A가 B나 C 등 다른 변수로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by = 0이 됐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별한 사람에게 이별이란 상대방이 없어졌을 뿐, 여전히 자신에겐 사랑이라는 말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느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한다. 그게 어떤 관계이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별은 아프고 힘들다. 이별을 직감했을 때,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잘해주어도 아프고 덜 잘해주어도 아프기 때문이다.


정작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별 이후 남을 ‘-ax’의 크기를 고스란히 견딜 수 있을 만큼 내가 준비가 되었는가 이다. 매일 밤을 홀로 술과 함께 보내든지, 매일 같이 친구를 만나 왁자지껄 놀든지, 널 지켜주겠다며 미련만 한 가득 끌어안고 살든지, 아픔을 치료해줄 다른 사람과 금새 새로운 사랑에 빠지든지, 그 방법이 무엇이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