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한 해가 끝나갈 무렵까지만 해도 제주에서 6개월이나 살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가끔 삶은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 글은 예정에 없던 제주살이를 6개월이나 하고 돌아온 이야기로 일종의 후기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그 시점에 우리 집에 살 던 사람은 맞벌이 부부와 초등 1년 차 아들 그리고 돈 버는 자식을 대신해서 손자를 봐주시던 우리 어머니셨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이래로 늘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그 고민은 극에 달했다.
[혼돈과 고민의 절규]다행히(?) 어머니께서 1년간 도와주시기로 해서 그 고민이 1년 유예되었으나 이제 다시 2020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어머니께서는 더 봐주실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허리가 편찮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집(인천), 본가(부산)를 오고 가며 두 집 살림을 하시느라 힘들어하셨다. 아내가 퇴직을 하던지 육아 도우미를 구하던지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와이프는 퇴직 대신 6개월이나 1년쯤 육아 휴직을 한 후 회사를 계속 다닐지 결정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육아휴직 동안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와이프의 휴직에 대한 생각을 듣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주말에만 집에 있었고 주중에는 회사 근처 원룸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거의 2년 원룸 생활을 하다 보니 완전한 회사형 생활 패턴으로 살고 있었고 점점 일 중심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진짜 내 삶이 점점 사라지고 내 마음도 파괴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와이프와 같이 휴직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억울함도 보상(?) 받을 수 있고 마침 2020년 3월부터 아빠, 엄마의 동시 육아휴직도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당시가 행동할 시기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코로나 팬데믹은 그 타이밍의 화룡점정이 되었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지는 절묘한 타이밍]여하튼 2019년 말 내 머릿속에선 부부 동반 휴직이라는 작은 생각이 점점 커져갔고 쉬는 동안 뭘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미 돌이키기 힘든 수준이 된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 휴직은 기정사실이었다.
와이프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휴직을 할 건지 말 건지 한다면 얼마나 할지 어디서 뭘 할 건지 등등. 결국 와이프는 6개월, 나는 1년 육아 휴직하기로 했다. 아마도 둘 다 삶에 지쳐있던 것 같다. 잠시 정상적인(?) 삶을 피하기로 한 것이다.(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휴직 동안 해외로 갈까도 고민했지만 외국어 울렁증으로 국내에 있기로 했다. 여러 후보지가 있었지만 날씨, 주변 환경, 도시화 수준을 고려해서 제주도로 최종 선정했다.
이런 결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응원보다는 걱정을 많이 표했다. 전학 문제, 회사 커리어(승진), 경제적인 걱정 등등. 물론 그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하찮은(?) 문제보다 당시 삶의 압박이 더 심했던 것 같다. 결국 2020년 1월 내가 먼저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제주도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주도 한 달 살이가 유행이어서 관련 정보가 많았다. 여러 카페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준비를 했다. 최종적으로 서귀포시 도심 인근으로 집도 계약하고 2020년 3월부터 본격적인 6개월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6개월 제주 살이 근거지 위치]
[I ♥ JEJU]우리가 제주살이를 시작하던 3월은 코로나가 한창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때문에 제주로 여행 오는 사람이 급격하게 감소했고 대부분의 여행지가 한산했다. 그 후로 인천으로 돌아온 8월까지 제주에서는 지역 내 감염이 거의 없었다. 제주의 코로나 확진자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걸린 상태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고 여유롭게 제주살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식당에서 외식을 하거나 실내 여행지는 가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돌아다녔다.
원래 내 성격은 집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은둔형(?)인데 제주에서 사는 동안 변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부분은 제주살이의 폐해(?)이다. 그렇게 주구장창 돌아다녔지만 내 생각에 제주의 1/4 정도밖에 가보지 못한 것 같다. 아래 지도의 노란색은 6개월 동안 가본 곳이다. 녹색은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 가보지 못한 곳이다. 언젠가는 가볼 생각이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니까.
[노란색 : 6개월 동안 가본 곳, 녹색 : 언젠가 갈 곳]
이제 6개월 동안 겪은 제주에 대해 디테일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삶을 피해 도망치듯 갔던 제주에서 내가 찾고 깨달은 삶들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