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Maudie, 2016

예술가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by 구윤숙

하나의 붓질이 있었다. 물감이 지저분하게 묻은 한 여인의 손으로 답답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가 붓끝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에메랄드그린이 묻은 둔탁한 붓은 팔레트 대신 쓰고 있는 깡통 캔과 벽 사이를 오간다. 붓을 잡은 손끝만으로도 그녀가 아픈 노인임을 짐작케 한다. 이런 첫 장면에서 말해주듯 이 영화는 인생의 마지막 몸짓으로 붓질을 선택한 사람, 즉 예술가의 이야기다. 모드(Maudie)가 그녀의 이름이고,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하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가의 직감으로 찾은 탈출구


모드는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하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하나 남은 가족인 오빠는 약간의 생활비를 보내주는 조건으로 동생을 숙모에게 맡겨버렸다. 그런데 숙모는 그녀를 돌보는 게 힘들기만 하다. 장애가 있으면 조용히 집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모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늘어놓고, 댄스 클럽도 좋아한다. 정숙한 기독교인인 숙모는 그런 모드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숙모 몰래 클럽에 간 모드 ^^

그러던 어느 날 모드는 심부름 간 식료품점에서 한 남자가 가정부를 구한다는 정보를 듣는다. 그의 이름은 에버렛 루이스, 가정부를 구한다는 메모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아 식료품점 주인에게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하는 무식한 사내다. 카메라는 쉽게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데 소리를 내며 걷는 걸음과 허스키한 저으로 오간 대화 몇 마디만으로도 그가 거칠고 무식한 남자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짧게 에버렛은 사라지지만 모드는 그의 입주 가정부가 되기로 작정하고 그가 붙여 놓은 메모를 아무도 못 보게 떼어내 가지고 간다. 그녀도 관객처럼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식료품 선반 뒤에 숨어 힐긋거리며 대화를 엿들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런 결단을 한 걸 보면 엄청난 촉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거칠지만 속으로 정이 깊은 따뜻한 사람으로 후에 그녀의 반려자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버렛을 연기하는 사람이 ‘에단 호크’다. ^0^)


불편한 몸으로 먼 길을 걸어 에버렛의 작은 집에 도착한 모드는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본다. 가정부를 구하려는 에버렛은 장애를 가진 모드가 일을 하겠다는 게 못마땅하지만 며칠간의 숙고 끝에 그녀를 데리고 온다. 고기잡이, 장작 패기, 집수리 등 온갖 몸으로 하는 일로 단련된 건장한 남자와 자기 몸 하나 건사 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인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재밌는 것은 모드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는 일을 선택하는 게 굉장히 순간적이었던 반면 에버렛의 선택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는 망설이고 고민하다 가끔 일해 주러 가는 고아원 선생님에게 자문까지 구한 뒤에야 결정을 내렸다. 남의 주문과 명령에 의해 일을 하는 에버렛은 효율성도 따져야하고 평판도 신경쓰다보니 혼자 결단을 내리는 게 서툴고 느리다.


작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에버렛과 모드


사실 모드의 빠른 결단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탈출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버릿의 집은 아주 작아서 부엌과 거실을 함께하는 일층과 침대 하나와 작은 협탁이 놓인 작은 이층 방이 전부다. 낯선 남자와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두려울 법 하지만 모드는 에버렛의 거친 행동을 보면서도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곳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가족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이기 때문이다.



명령하는 자와 창조하는 자


에버렛은 몸이 성하지 않은 여자를 가정부로 두고 함께 산다는 게 영 불편하다. 남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그녀가 그림도 그리고 계산도 잘하는 등 자신보다 똑똑한 것도 거슬린다. 그 때문에 함께 일하는 친구 앞에 모드가 나타나 대화를 이끌자 돌연 화를 내며 모드를 때리기도 한다. 뭔가 어색하고 애매한 상황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힘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는 때때로 그녀를 내쫓겠다고 위협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 집안에서 가장 위는 나고, 다음은 이 개, 그리고 그 다음은 저 닭들, 당신이 제일 아래야!”
(이 비슷한 대사가 나왔다. ^^;)


위계를 정하고 그것을 공표하고, 힘을 행사하는 것은 권력의 일이다. 에버렛은 그 작은 집의 권력자가 되고자 한다. 반면 모드는 그런 위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에버렛의 성 노예(love slaver)”라고 수근대는 사람들의 시선도 상관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 자신에게 버럭 화를 낸 에버렛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는 주급을 요구하고,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닭을 잡아 스튜를 끓인다. 그리고 에버렛의 허락도 없이 가구를 색칠하고 본격적으로 벽과 창에 그림을 그린다. 마당에 쌓인 나무 더미 안에서 판자도 찾아내어 자신의 캔버스로 삼는다. 그녀는 마치 자기가 그 작은 집의 안주인인 듯 행동한다. 그리고 그와 결혼 해 진짜 안주인이 된다. 그녀의 삶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벗어나 점점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모드와 에버렛의 결혼식, 그녀의 왼손에 들린 노란 들꽃!!
둘의 웨딩카는 에버렛이 직접 운전했다. 모드의 손끝에는 여전히 노란 들꽃이!!


모드와 에버렛의 결혼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다. 모드는 정말 작은 노란 들꽃을 부케로 들었다.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잡은 그 작은 노란 꽃은 들판에서는 가장 흔한 꽃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부케다. 그리고 그 꽃은 그녀가 범상치 않은 예술가임을 보여준다. 가장 흔한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걸 특별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모드는 집안 곳곳을 자신의 그림으로 채운 모드는 에버릿을 찾아왔다가 우연히 그녀의 그림을 보게 된 산드라를 통해 처음으로 그림을 팔게 된다. 그리고 점차 유명세를 타며 동네의 식료품점도 그녀의 그림을 파는 통로가 된다. 그런데 시골 촌부인 주인은 도대체 도시 사람들이 왜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집 5살짜리도 이렇게 그리겠네.”
“5살짜리는 나처럼 계속 그리지 않아요.” (이것도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한 대사임)


영화의 모델이 된 나이브 화가 모드 루이스의 그림

식료품점 주인의 퉁명스런 말에 모드는 돌아서며 속삭이듯 웅얼거린다. 그렇다. 붓을 들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그 중 예술가가 되는 사람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의 세계가 열린다. 모드도 그러했다. 그녀는 끝까지 에버렛의 작은 집에서 머물렀지만 그곳은 예전과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소리만 치던 무뚝뚝한 사내는 애정 가득한 남편이 되었고 작은 집의 벽과 창, 나무판자와 작은 엽서 종이 등은 그녀가 마음에 담았던 숲과 들판과 마을이 되었다. 그녀가 보여주기 전까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세계를 그녀가 창조한 것이다. 5살짜리는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오직 예술가만이 그렇게 창조한다.


그녀가 창조한 세계는 작은 화폭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가정부로 길들이려는 에버렛을 사랑하는 반려자로 만들고, 자신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바꾼다. 대표적인 인물이 그녀를 장애인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두려했던 숙모다. 그녀는 영화의 후반부에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고 모드와 화해한다. 힘과 권력, 논리적인 말로는 만들 수 없는 변화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살기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움직인 예술가의 용기와 똘끼(?) 아니었다면 펼쳐지기 어려운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내 사랑 Maudie, 2016 제작 / 감독 : 에이슬링 월시 / 출연 : 에단 호크(에버렛 루이스 역), 샐리 호킨스(모드 루이스 역), 캐리 매쳇 (산드라 역), 재커리 베넷 (찰스 다울리 역)

영화 정보 및 사진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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