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활량은 쓰레기지만 페이스러너가 되어드릴게요.
# 2025. 그는 여전히 달리고 싶다.
나는 올해 신규사업으로 개설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수정예 점자교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그들의 열정은 연이은 휴강(갑작스러운 선거 기간, 그리고 진짜 문제는 강사인 나야?)에 느슨해지는가 싶더니 소수정예 -> 소수점정예 수업이 되어가고 있어 아쉽지만 잘 진행되고 있다.
어제는 가장 진심인, 목표 의식이 뚜렷했던 교육생과 오붓하게 수업을 진행할 기회가 되어 이런저런 수업 관련 피드백도 받고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그날 대화에서 나에게 남은 건 두 가지였다.
1. 좌우명? 노노, 이제는 원포인트업, 아보하였지, 참.
점역사 자격증 취득이 목표인 수업 성격이 아니기에, 평소 좋아하는 글귀, 명언 등으로 점역 연습을 하고 종강 때는 서툴지만 소소한 '나만의 글 모음집'을 완성해 보낼 요량이었다.
지난주 수업 마지막 무렵, 교육생들을 쉬게 해 주고자 가볍게 툭 내어준 내 기준에선, 아주 수월한 과제였다.
"다음 시간에는 특별히 과제는 없고, 평소 자주 생각하는 좌우명 두세 가지 정도만 생각해 오세요."
이 날 이후 교육생들은 고뇌에 빠졌다고 한다.
사실 좌우명 따위 평소 생각하지 않는, 생각할 겨를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부터가 뻣뻣하고 와닿지가 않는 거지.
순간 아차 싶었다. 아...... 올해 초에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나 이거 아는데 ㅜㅜ
이제는 좌우명, 멘토, 명언, 롤모델. 아니고요.
그냥 오늘 덤벨 20개 들었으면 내일은 힘들어 죽겠어도 딱 1개만 더 들자. 원 포인트 업. 이거거든....
그리고 그것마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낸 것에 행복해하고 만족하면서 아이스크림 한 숟갈 입에 떠 넣으면 해엥-복.
이거거든... 맞아. 그거였지.
내가 왜 좌우명 따윌 거들먹거렸을까 후회되던 찰나였다.
좌우명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한 문장이라는 전제라면, 내 좌우명은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해 봐야 해"
이찬혁의 노래 가사가 내 좌우명이라 나는 확실히 있긴 하다.
2. 시각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시는 게 뭔지 아세요?
아주 다양한 시각장애당사자들과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보고 들은 바로는.
그들은
달리고 싶다.
그리고 운전하고 싶다.
스스로 움직여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소망이다.
흰 지팡이도, 활동지원사도, 도움 주는 가족도 없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제일 하고 싶다 하시는 게 뭔지 아세요?"
"아니요. 뭐예요?"
"달리고 싶대요. 막 달리고 싶고, 또 운전하고 싶고. 혼자 운전해서 뭐 바닷가라던지 원하는 데로 자유롭고 기동력 있게 가고 싶은 거래요."
평소 생각했던 바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김에 별다른 온도차 없이 했을 뿐인데
갑자기 교육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갑자기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다며 당황하며 습한 눈을 손바람으로 말리던 그녀의 모습이, 그 공감하는 마음이 보기 좋았다.
이제 수업은 연이은 휴강에 질세라 연강으로 쭉쭉 달려가고 곧 종강도 맞을 테지만.
짧았던 점자교실 수업이 그녀들에게 잠깐의 쉼표,
바쁜 일상을 살다가 언젠가 한 번씩, 흰 지팡이를 벗 삼아 살아가는 그들에게 페이스러너가 되어주고 싶었던 그 마음 그대로 기억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마음이다.
이 글을 볼 일 없는 그녀들에게. 아보하 & 오늘도 점자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