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후보자는 점자형 선거공보물 작성 · 제출 또는 공보물에 음성출력이 가능한 전자적 표시를 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후보자는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선거공보 외에 시각장애선거인(선거인으로서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따라 등록된 시각장애인을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을 위한 선거공보(이하 “점자형 선거공보”라 한다) 1종을 제2항에 따른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의 두 배 이내에서 작성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선거ㆍ지역구국회의원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의 후보자는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ㆍ제출하여야 하되, 책자형 선거공보에 그 내용이 음성ㆍ점자 등으로 출력되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65조제4항) <개정 2008. 2. 29., 2010. 1. 25., 2015. 8. 13., 2018. 4. 6., 2020. 12. 29.>
2024년 3월 19일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확정일
2024년 3월 20일~29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공보물 제작 끝.
치열하고도 쩐내 나는 열흘 남짓한 이 기간을 어떻게 설명할까.
소중한 한표, 당신의 권리
점자공보물 작업을 처음 다뤄보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고 입수부터 원고 수정 요청(차라리 직접 수정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원고 교열 및 편집, USB 선거공보물 제작 여부 확인 및 편집, 점역 및 오타 검수, 출력 관리 및 출력물 검수, 분류 작업 및 라벨링, 원본과 발송지와 수량확인 및 포장, 퀵!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한 공간에서 그리 많지도 않은 인원으로, 하염없이 많은 분량의 작업물들을 쳐내는 것은 흡사 대중소기업 밀집 지역에서 하나밖에 없는 카페의 점심시간 같달까.
그 카페의 직원들은 그 일이 속도가 생명임을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커피의 퀄리티 또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움직이는 자들이다. 각자에게 할당된 분할된 업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치고 빠지는 게 그 열흘 남짓한 동안의 최대 미션이다.
이들에게 그 짧고 굵은 나날들 동안 유일하게 허락된 낙은 자유로운 점심 메뉴 선정 정도이다.
지난 선거 시즌은 가보지 않았던 근처 식당들의 메뉴들을 개별 면접하듯 돌아가며 먹어보는 기회가 되었는데 가령 낙지전골, 해물찜, 소고기국밥 정식, 코다리찜 같은 익숙하면서도 섣불리 손 안 가는 것들이었다.
업무지 근처 식당가들을 순회하듯 번갈아가며 눈치껏 예약하고 식사 또한 재빠르게 해치우고 복귀하며, 누군가는 점자출력기가 쉬지 않도록 잘 돌봐야 했으므로 조를 나누어 식사는 이루어진다.
코끼리다리 아니고 코다리찜
점자선거공보물은 국회의원 한 사람당 점자용지 24면이 최대 분량이며 해당 선거구에 따라 적게는 70부~ 많게는 300부 이상 할당량이 된다. 이러한 후보자들의 선거공보물이 최소 몇 십 명 이상 의뢰된다. 단 시간에 많은 인력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스피드가 요구되는 이 업무를 하면서 생각이라는 걸 이따금씩 할 때 '이 점자공보물을 시각장애인들이 꼼꼼하게 잘 읽어나 볼까?'라는 의뭉스러운 마음을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왜일까? 사실 나조차도 내가 관심 있는 사람 한 둘 외에는 그다지 꼼꼼하게 그 사람의 공약이나 후보자 공개자료 등을 잘 읽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사실 도무지 당선되지 않을 것 같은 후보자들의 자료를 만들 때에는 더 그러한 생각들이 가뜩이나 분주한 머릿속을 들쑥날쑥 오가곤 했다.
선거공보물 제작 기간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점점 밀물처럼 머물 곳을 찾아 들어오는 후보자 원고들, 그리고 매일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는 야근의 연속.
평소 업무를 잠시 스탑 할 수밖에 없지만 아예 안 할 수는 없기에 이쪽저쪽 신경 쓸 게 많은 탓에 뇌는 이미 남루한 쩐내가 나기 시작했으나 실제 머리를 안 감는 일은 없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경험상 잠시 편하자고 머리를 안감은 날은 어김없이 찝찝한 기분 탓에 멍한 두통이 왔고, 화장이 귀찮아서 스킵하고 외출하면 민낯의 자신을 참기 힘들어 더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 나름의 외모지상주의자인가 보다.
감을까 말까 할 땐 눈 딱 감고 감아버려요.
선거공보물 제작 2일 정도 후부터 공보물 접수 마감일 1일 전까지 정도가 바쁨의 진격 시즌이다. 사실 이 시간엔 야근이라는 황금 카드로 집안일과 퇴근 후 육아에서 잠시나마 공식적인 탈출을 할 수도 있는 기간이 되기도 했다는 건 비밀이지만.
그래서일까?
또다시 언젠가 선거 시즌이 오겠지만 나는 탄식하면서도 마음 한편 덤덤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덤덤함이.
한 명의 시각장애인을 현명한 유권자로.
몇 명의 시각장애인들도 기꺼이 가담하는 상쾌한 한 표 유권자로.
많은 후보자들이 모두를 더 존중할 대상으로.
여김 받는 일에 담백하게 쓰이기를 바라며
여담으로 얼마 전 한 장애 인권 관련 강의에서 들은 한 마디가 마음에 남는다. 휠체어에 탔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한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우여곡절을 담은 강연은 많은 울림이 있었다.
5.18 사건 발생 시 최초 사망자는 청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움직이지 말고 즉각 행동을 멈추라!
그 간단하고도 무쇠 같은 한 마디를 그 또는 그녀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듣지 못했던 그는 움직였고, 단단하고 강력한 무언가는 그를 관통했을 것이다.
한 명의 사상자가 난 후부터는 양 측 모두 이성을 지키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그 모든 난리는 그렇게 시발점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뭔지 모를 무거운 감정이 들었다.
보지 못했던 이들은 그때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떤 행동들을 취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서 과연 무엇이, 누가 누구를 도울 수나 있었을까.
다음 선거 때는 시간을 내어 공보물을 꼼꼼히 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고 구구절절한 공약들을 보다 보면 다 그 말이 그 말,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나마 본인의 초심을 지켜내어 신념을 실현하려 부단히 애쓰는 이가 정녕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를 잘 살자.
잘 먹고 푹 자고 하루에 두어 번 더 웃어보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람 일은 모른다 하니
무탈하고 안정된 오늘의 소중함을
이불처럼 감싸 안고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다.
건 투더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