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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 킴실 Nov 14. 2024

당신의 꿈은 컬러입니까?

주문하신 꿈은 흑백입니다

한 삼 년 전인가, 어수룩한 깊은 밤.

'브로콜리랑 새우를 갈아드릴까?'

'아무래도 자라나는 핏덩이에겐 소고기지. 무 소고기죽 콜.'

작은 몸덩이의 입으로 반은 들어가고 반은 침과 희석되어 묽은 농도로 흘러내리지만, 엄마표 이유식을 해다 바치느라 엉망이 된 주방을 나 몰라라 내일의 나에게 토스한 채 곤히 잠들었다가 난데없는 골방의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아, 참고로 우리 남의 편은 탱크 야간 타임 조종사여서 한 방에서 잠을 자기가 힘든 편이다.)


몸부림인척 좀 때려도 됨?

놀랐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깊은 단잠에서 와장창 깨버린 것에 깊은 빡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뭐야? 왜 그래?" 

"아... 너무 반가워가지고."


악. 하는 비명 소리보다 훨씬 더 선 넘었다.

이건 뭐 해병대 극한 훈련 후 산 정상에서 포효하듯 내뱉을 법한 데시벨의 5초 이상의 긴 함성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도 나름대로 고단한 어깨로 가볍지만은 않은 하루를 보내다 곤히 잠들었을 테지만 그 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어떤 큰 문을 열었더니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가 사셨던 동네가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부푼 함성을 지른 게 현실에선 그딴 괴성으로 나왔다는 거다.




다음 날, 육아 전쟁터에서도 필사적으로 커피 타임을 사수하던 전사였던 나는 간 밤의 꿈 사건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커피 잔에 나는 잠깐씩 착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다면 잘 때 꿈은 어떻게 꿀까?'


컬러일까 흑백일까

형체가 있을까 꿈에서도 어둠뿐일까

장애는 사춘기를 겪어 내듯 그 특정 시기를 견뎌내면 끝나는 종류의 것이 아닌,

살아가는 순간순간 장애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매일 극복해 내야 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어디선가 들었다.

장애라는 말부터가 나로서는 명치가 턱 막히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단어 같다.


좀처럼 굼뜨고 운동 감각이 썩 없던 나의 어린 시절, 체육 시간은 늘 숙제처럼 달갑지 않았다.

내적 댄스는 기가 막히게 잘 추던 내 상상만치 실제 상황에선 날렵하고 민첩하게 몸이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일 터.

(그래서인지 누군가 내게 운동을 잘할 것 같아 보인다고 해주면 나는 그게 이쁘다는 소리만큼 기분이 좋다.)



니가 넘나 내가 넘나 한 번 해보자

체육 중에서도 유독 싫은 종목들이 있었는데 장애물 넘기나 뜀틀, 매트 구르기와 같은 것들이었다.

장애라던지 장애물.

내 앞에 뭔가 어려운 게 놓여 있다는 거.

단발적이지 않은 인생에서의 긴 애로사항.


사실 이미 그것에 대해 질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대놓고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꿈 얘기를 하던 중,


꿈을 꾸는 것에 대해서 같은 직장의 순수한 그녀에게 넌지시 궁금증을 표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선천적 시각장애였는데 일단 본인은 딥슬립을 잘해서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했다.

간혹 꿀 때에 컬러는 아니고 형체나 어떤 느낌 같은 것으로 자주 꾸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그 정도가 멈추기에 적절한 것 같아 더 묻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꿈을 꾸는 것도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또는 시각의 손실 정도에 따라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중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도서를 여러분도 봤을지 모른다.

화려한 능력들로 여러 테마의 꿈들을 제작해 상품성이 있는 꿈들은 판매되고 사람들이 각자의 기분과 그리움에 따라 꿈을 구입해서 꾸는 내용이다.

베스트셀러라 하니 평타는 치겠지? 싶어 집어 들어 읽어보았다가 또 눈물샘 리필 여러 번 했더랬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내 꼬막눈을 흥건하게 괴게도 했는데 내가 시각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은 슬펐을까 어땠을까.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 제작의 천재이자 킥 슬럼버의 연인인 와와 슬립랜드 님,

잘 안 보이는 손님이 꿈 사러 가면 화면해설기능 좀 분할기법으로 디테일하게 삽입해 주시고요.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깨끗해요 화-이트
에베레스트 산 히말라야의 눈 덮인 절경이며 깨끗하게 대비된 하얀색 눈과 명암이 짙은 눈 아래 산의 모습이 풍경 전체의 1/2과 좌우 전반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위 1/3 좌우는 전반적으로 구름 아래는 옅은 회색으로 흐리고 크게 뭉쳐진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중반부에는 눈 덮인 산 중에서도 가위로 자른 듯 정 가운데가 뾰족한 정상이 원근감 있게 돋보이는 절경이다. 아래 1/3 지점은 흙과 짙은 녹록 색으로 가장 가깝게 보이는 대지와 하얗게 눈 덮인 암석이 일부 보인다. 이 풍경을 보았을 때 입김을 불면 후- 불면 하얗고 깨끗한 입김이 피어 나올 것 같은 선명하고도 깨끗한 느낌이 든다.

(현장영상해설사 교육과정 수료중이에요. 잘 모르지만 꿈화면해설을 해주면 좀 낫지 않을까요? 에헴)


새콤달콤 태몽을 만들며 남은 것은 단편적인 예지몽 조각으로 할인된 값에 파는 아가냅 코코 님,

그녀가 꿈꾸러 오면 향기 나는 것은 냄새로 뿡- 뿜어서 후각도 동원하게 해 주세요.

다음 달이면 바빠질 산타클로스, 아이들을 위한 꿈을 만드는 꿈 제작자 니콜라스 님,

루돌프 사슴 축축한 빨간 코 만져보면서 촉각으로 생생하게 알 수 있게 이것저것 추가 좀 해주세요.

개도 코가 촉촉해야 건강한 거라던데 사슴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과 상상으로 만날 테지만 분명 그녀나 그에게도 같은 감동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멀디 멀었고 어쩌면 장애와 비장애, 정안인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간격은 결국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최소한의 예의라던지 최소한의 노력, 배려는 무지해서 삐걱거리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항상 필요한 윤활유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잘하고 있고 내일은 더 잘할 사람들이기에 누구 하나 덜 소중한 이는 없다.

(오늘도 별 일 안 했고 내일은 더 격하게 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처럼)


꿈꾸고 놀고 먹고 자고 일하고 

이렇게 무한 반복하다 보면 어차피 죽음에 하루 더 다가갈 뿐이지만 순리대로 사는 게 인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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