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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 킴실 Nov 22. 2024

시각장애인과 식사할 땐 이렇게

추천메뉴, 비추 메뉴, 노하우 소개드립니다.

미생을 시작하다 2013. 06. 10.

우연인 듯 필연으로 시각장애인 필드에 본격적으로 내 등을 셀프로 떠밀며 입장하게 되면서 좌충우돌 신입교육 기간에 돌입했다. 예술인인 척 자유롭게 지냈던 마인드를 여즉 장착한 채 자주 다뤄볼 일 없던 한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아예 마주한 적 없던 결재 문서 처리나 결재 라인 따위의 설명을 듣는 일은 나로서 마치 진짜 '미생'을 살아보기 시작한 듯 새로운 기분을 선사하곤 했다. 여긴 어디요, 난 누구요? 하며 어리벙벙 얼타기를 커피 타기 대신 하루 일과 시작으로 여기며 말이다.



우리가 가장 배고플 때는 언제인가? 평소 안 쓰던 머리를 쓰며 무언가에 신경을 집중하고 난 직후가 아니던가?

오죽하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명언이 있지 않은가.

구내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진즉 접수했고 미슐랭 심사단 뺨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교육 자료를 보며 앞으로 당분간 다니게 될 이 직장의 밥 퀄리티는 어느 수준일지 원스타? 투스타?... 엉뚱한 생각만 해댔다.

필연처럼 보게 된 식단표에서 오늘의 메인은 제육볶음인 것을 쓱- 이미 스캔해 버렸기에 배꼽시계는 광광 울리기 일보 직전이었고 각종 미생 스킬 습득하기에 꽤 많은 에너지를 쓴 나는 시계가 제발 12시를 향하기만을 배꼽 꼽아 기다렸다.



"교육기간 동안 점심 식사는 안대를 착용하고 장애 체험 형태로 진행됩니다."


WHAT??!  ㅈ4@3#$*#%*@*@!!! 8539ㄷ셔ㅑㅓSAFSDJKGJSD Dzkfjs!!!!!!!!!

그날 저녁, 나는 평소보다 두 배 가량의 음식물을 마치 일곱 마리 양들을 잡아먹은 늑대처럼 그득 채워 넣고 나서야 두 발 뻗고 잠들었다고 한다.



교육생이던 클라이언트와 나름대로 관계가 친밀해지면서 식사를 함께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러기를 수 해 거듭하면서 체득한 식사 노하우를 (시각장애인을 가까이 겪어보진 않았지만 앞으로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계기로 마주할 수도 있을 상황이기에) 여러분이 시각계에 발 담지 않은 비시각장애인이라고 설정하여 소개해보고자 한다.




시각장애인과 식사할 때 추천 메뉴 top 3

1. 한 그릇 음식

예를 들면 비빔밥, 설렁탕, 칼국수, 순두부찌개 등과 같이 한 그릇이 메인 그 자체인 메뉴가 좋다.

바로 자신 앞의 그릇 하나만 제대로 챙겨서 숟가락질하면 원활한 식사가 진행되며 잘 아는 맛이기에 설명할 것도 없고 안내자에게 부담이 없으니 식사하는 이도 편안할 것이다.

* 물론 뚝배기 같이 뜨거운 것은 미리 알려주어 조심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빔- 비빔- 비빔비빔 


2. 햄버거

이것 또한 간편하고 말 그대로 FAST FOOD 아닌가.

빨리 나오며 (키오스크 주문이 혼자서는 넘사벽이겠지만 당신이 있으니 든든할 것이다.) 본인 앞에 정해져 있는 양의 햄버거, 후렌치 프라이, 콜라를 트레이라는 정해진 영역 내에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많은 설명이 필요 없어 서로 편하다. 그리고 맛있으니까 땡큐.

* 마요네즈, 각종 소스 등 흘러내릴 수 있으니 티슈 몇 장 앞에 두는 센스도 발휘해 보자.

후렌치프라이 어디 갓슴메


3. 초밥 (케바케)

사실 이 메뉴는 사바사 또는 케바케이긴 하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반 회보다는 초밥이 먹기 좋고 배도 쉬이 부르니 선호할 것이고, 생선회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은 젓가락질을 잘해야 하며 작은 종지에 담긴 간장까지 찍어 먹으려면 조금 힘들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측근인 그는 회를 즐기고 젓가락질을 잘하기 때문에 먼저 이 메뉴를 제안하여 같이 먹으러 갔던 적이 있다.

아, 초밥 먹고는 싶은데 완벽하지 못한 젓가락질이 영 신경 쓰일 것 같다 싶을 땐 아예 손으로 가져다 먹는 경우도 있다. 뭐 어떤가, 손만 깨끗이 씻은 상태라면 그 방법도 나쁘진 않다고 여겨진다.

지금 바로 여기... 먹고 싶다




시각장애인과 식사할 때 권장하지 않는 메뉴 top 3

1. 한정식

거나하게 한상 가득 채운 상을 눈으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고픈 배를 채우는 것이 식사의 목적이니까.

상다리 부러지기 전에 설명하며 먹다 서로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비추.

뿐만 아니라 많은 가짓 수의 음식을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떤 것은 안 먹는지, 생선은 발라 줄 지 어느 정도 혼자서 발라 먹을 수 있는지 등등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또 비추.


어떤 걸 얼마큼 드려야 할지 모르게쒀요


2. 쌈밥 또는 샐러드류

쌈 싸는 일은 이미 적잖이 귀찮지 않은가.

내 손바닥 사이즈에 걸맞은 쌈을 스캔하여 손바닥에 척하니 올려 각종 고기, 마늘, 김치, 쌈장 등을 올려 다른 손으로 유려하게 오므려 입까지 배달하는 일이 꽤나 품이 많이 든다. 보이지 않을 경우엔 더욱이 그렇다.

그렇다고 알콩달콩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매번 쌈을 싸서 입에 넣어 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모 지회장님의 장애인식개선에세이를 점역하다가 최근 더 알게 된 메뉴는 샐러드이다.

일정하지 않게 이쪽저쪽 자유분방하게 내뻗은 소스 묻은 잎사귀들의 방향 때문에 입에 마요네즈 등이 묻게 되어 입을 정말 크게 벌려서 먹지 않는 이상 닦아내야 하니 귀찮아서 안 먹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끄덕끄덕하며 점역을 했다.

싱싱함을 입가에 묻히긴 싫으니까요


3. 생선

생선을 주 메뉴로 정하는 것은 두루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접시에 수프를 내는 것과 같다.

사실 메뉴 중에 가장 별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선을 선호하는 시각장애인은 그다지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장애에 잘 적응했고 혼자서 어느 정도 생선도 잘 발라 먹는 스킬을 탑재했다 하더라도 그는 돈 주고 사 먹는 식사메뉴 라인업에 생선을 끼워주진 않을 것이다.

잘 보이는 사람도 미처 발라내지 못한 잔 가시에 목구멍을 찔려본 경험이 살면서 한 번도 없진 않을 만큼 가시를 정확히 발라 먹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가정에서라면 가시를 100% 발라낸 고등어 같은 시제품이 요즘 잘 나오긴 한다. 그래도 생선은 몸에 좋으니.

가시제거연구소 고등어 추천해요(ppl 아님)





시각장애인과 식사 잘하는 노하우 3가지

1. 가능하다면 선호하는 메뉴를 묻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한다.


2. 급식이나 도시락 같은 형태의 식사를 하게 된다면 시각장애인이 젓가락을 잡은 상태에서 살짝 젓가락 끝을 같이 잡고 밥에서부터 -> 반찬-> 국을 시계 방향으로 간단히 설명해 주면 편하다.

예) 밥은 흑미 약간 섞인 밥이고요, 왼쪽부터 김치, 무말랭이, 생선가스, 국 자리에는 불고기랑 제육 조금씩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사실 국 자리에 저게 뭔지 잘 분별이 안 되는 사진을 가지고 와서 애를 먹고 있다.)

밥이 꽤 많네요잉???


3. 좋은 사람과 마음 편한 식사가 누구나 최고의 식사다.

경청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되어주자.

별 것 아닌 내 얘기에 서로 번갈아 한 번씩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사실 어떤 음식인들 맛이 없으랴.

어려운 메뉴면 잘 도와주면 되고 맛이 없으면 다음에는 더 맛있는 것 먹자고 다음 약속 잡으면 될 일.

뭣이 중한데.





맛있게 먹고
함께 더불어 멋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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