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영어, 음악 점역마술사가 아파트에서 쓰는 글.
"이마트에 갔다고? 애들 배고프다고 난리인데 뭘 거기까지나 갔어?"
우리 집 둘째의 징징거림은 남의 편과 나의 발작 버튼이다. 뱃속에 잔뜩 미어터지도록 맛있는 걸 채워 넣어야 기분이가 좋은 둘째가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지속적으로 신경을 긁는 투정에 거대한 짜증이 치민 나는 순식간에 한 마리 통통한 벌이 되어 수화기 너머로 톡 쏘아붙였다.
엄마가 폰에 대고 툭 내뱉은 '이마트'라는 단어를 들은 이후 둘째는 계속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워댔다.
이-마트이마트 이-마트이마트 이-마트이마트
그냥 말장난 하나보다 흘려들었고 평소 최신 곡은 플레이리스트에 담는 일이 드문 나였기에 몰랐다.
둘째가 열심히 떠들어댔던 그 말장난은
로제- APT.
(Just meet me at the)
아-파트아파트 아-파트아파트 아-파트아파트 어- 어허어허.
육퇴 후 촉촉한 머리칼을 자연 드라이하며(= 빗질도 없이 방치) 따듯한 차 한 잔 머그컵에 담으면 나는 비로소 착해진다. 내가 착해지는 이 시간이 나도 참 좋다.
이런 말갛고 퓨어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순 없어 괜히 뭐라도 끼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순간의 농도를 눅진하게 더해본다.
조명을 어스름하게 낮춘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기웃거리며 끄적이는 게 요즘의 낙이다.
이 시간쯤 되면 마치 내가 푸른빛의 방어막에 둘러 싸여 있어서 하루 동안 나를 심란하게 했던 이런저런 일들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점역사 = 점역[點譯]의 국어 뜻 - 말이나 보통의 글자를 점자로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
이런 직업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고 바랬던 적도 사실 없다.
일단 점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마술사 혹은 점술사 같아서 나에겐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런 직업이 있는 줄도 아예 몰랐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물으면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이따금씩 지루해진 안경을 새것으로 바꾸듯 기분에 따라 바꿔왔을 뿐인데 인생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돌고 돌아 이렇게 되었다.
이제는 내 앞가림은 해야 할 것 같아 계획 없이 대충 다이빙했던 이쪽 일이 해를 거듭할수록 나름 매력이 있다. 이런 걸 자기 합리화라고 하겠지만 뭐 나쁘지 않은 일이다.
점역은 6개의 점형으로 한글, 영어, 수학, 과학, 음악, 일본어 정도를 표현할 수 있고 자격시험을 통해 급수가 나온다. 한글 점자는 직장인이 닭가슴살 샐러드 따위의 음식을 급하게 먹고 수험생처럼 30분, 그리고 퇴근 후에 한두 시간씩 투자하면 쉽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정도다.
음악 점자는 일정 수준 이상 음악이론 기본 소양이 있어야 도전해 볼 의지라도 생길 것 같고 영어 점자는 '응, 원래는 안되는데 너는 귀여우니까 슈퍼패스해 줄게' 이런 느낌의 예외 지침들이 많아서 까다로운 편이다.
이쯤에서 여러분이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을 자랑을 해보자면 나는 점역교정사 1급 자격증 소유자다.
한글, 음악, 영어 종목으로 땄는데 이 중에 제일 매력적인 분야는 사실 음악 점역이다.
Why? 점역 프로그램으론 아직 버벅거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분야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정말 어렵게 열정과 지갑을 동시에 털며 열 번 금도끼로 찍은 그 여자가 마침내 나에게 넘어왔을 때, 그리고 그 여자를 나만이 길들일 수 있게 된 그 성취감처럼 말이다.
시각장애인은 모두 점자를 알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천적이거나 어릴 때 시각에 장애를 갖게 된 경우라면 좌우로 쓱- 왔다 갔다 하면서 실시간으로 점자를 읽어내는 달인일 가능성이 많지만 중도실명자들은 점자를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은 확대된 활자를 어느 정도 간신히 보거나 소리로 듣는 것 위주의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지만 점자를 뒤늦게 배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특히나 중도에 사고 등으로 실명한 경우에는 집 밖을 나서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기에 감히 "점자를 배우세요, 독립 보행을 배우세요"라고 쉽게 내뱉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 경우가 적지 않기에 그들의 상황에 나를 투영해 보면 가슴속에서 시각장애인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심이 피어난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뚜벅뚜벅 나오는 것.
그들의 과정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겠지만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눈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교육실에 모여 시덥잖은 애드리브에 웃음소리를 내는 것과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지하철의 인파를 뚫고 승강장을 향해 유유히 가는 그 뒷모습이 나에겐 적잖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