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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 킴실 Oct 24. 2024

10초만 볼 수 있다면 …

보이는 당신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혹시 당신은 오늘 아침 출근 시간의 빡셈 정도타이트하게 다가오는데 아이는 더럽(love) 느긋해서 또 참지 못하고 용암 같은 극대노를 표출했나?


나는 그랬다.

자주 그렇고 한 이틀 무던한 척하다 발작처럼 오늘도 그랬다.

아이를 채근하는 종종걸음으로 공식적인 아침적 퇴근인 ‘등원’을 완료한다.

잉여 공간이 생긴 뇌로 인해 버스 안에서 ‘잡생각’이라는 여유의 결과물이 떠다닌다.

‘진심 그렇게 화날 만한 일이었나?

건강하면 그것으로 효도라는데 무탈하게 오늘 아침을 맞이한 것으로 감사할 줄 아는 그릇의 인간이 될 순 없는 건가?’ 며칠 전 시각계의 큰 행사 날, 유난하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떠다니던 생각이 멈춰 섰다. 개회식의 17분짜리 개회사였다.


“아 근데 도대체 언제 끝나요?”


하마터면 이 말을 목젖 밖으로 내뱉을 뻔했던 tmi 회장님의 만담 개회사 중 한 목.


“우리 시각장애인들에게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니 제일 많이 하는 말이

‘10초만 볼 수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자도 있고 같이 사랑을 나눠 낳은 금쪽같은  자녀들도 있지만 이미 시각을 잃은 후에 만난 경우들이 많아 매일 한 집에 지내는 내 가족의 얼굴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 흔하지요.

주변인들이 뭐 듣기 좋은 말로 저한테도 말해줍니다.

‘인물이 좋으십니다, 아내분도 미인이시네요’

근데 보이질 않으니 뭐 그런가보다 하면서도 사실은 온전히 믿기 힘들고, 뭐 아니라 한들 안 보이니 그게 뭐가 중하겠습니까?”라는 거다. 듣고 있던 시각장애인 회원들은 끄덕이거나 몇몇은 가볍게 웃기도 했지만 장애가 없는 정안인 들은 조금 멍해졌다.


흔히들 하는 말 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란 말이 있다.

눈이 편치 않은 그는 자신의 아이 얼굴을 모른다.

어디 밉기만 하련? 분노 마일리지 적립 꽤 많이 채웠다 싶을 무렵쯤엔 쩝쩝 소리나 숟가락인지 젓가락인지 모르도록 연신 밀어 넣는 실루엣조차 외면하고 싶은 남의 편.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 어쩌면 그나마 조금은 진짜 내 편일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니.


음 오늘은 분유가 꽤 싱겁군

언니, 그날 얼마나 무너졌을까.

말랑하고 따뜻한 아기가 삼일은 굶은 듯 서럽게 울어재껴 어르고 달래며 더듬더듬 분유는 타는데 젖병 눈금을 볼 수 없어 밍밍해져 버린 우유를 모르는 척 쪼끄만 입속에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을 그날.


어떤 심정일지 사실 가늠조차 어렵다.

나와 연결된 내 사람들을 캄캄함 속에서 혼자 상상으로만 그려본다는 것.


시각의 손실을 극적인 소재로 다룬 영화 중 한편이 떠오른다.

이런 영화들은 줄곧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지만 소재가 같다고, 마침 그 소재가 내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오래 기억되긴 어렵다. 와중에 아직도 마음에 남은 영화가 있는데 보는 내내 꾸역꾸역 눈물샘을 리필하더니 결국 굵은 방울 하나를 툭! 떨어뜨리고야 끝이 났다.

‘클래식’이다.

그래 맞다, 그 클래식.

지금은 현빈의 그녀가 된 배우 손예진과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진 배우 조승우의 그 클래식.

기어이 굵은 방울을 뽑아내게 만들었던 장면은 월남 파병에서 포탄으로 실명한 조승우가 손예진과 재회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조승우 배우와 한패가 된 우리 관객들은 그의 실명 사실을 진즉 알고 있었다지만, 이걸 예진 아씨에게 어찌 알려야 할까. 그녀의 충격과 그의 절망을 어떻게 보란 말이냐.

그는  그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전날 숱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한 카페의 동선을 따라 마치 그녀가 훤히 보이는 듯 준비한 연기를 펼쳐 보이는 그의 모습과 그 앞에 선 그녀. 울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다.


"지금 나 울고 있어. 안 보여? 나 울고 있다고"


예진 아씨의 흐느끼는 외침에 남자 주인공은 이내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숱하게 연습했건만

마음의 헤아림이 반복되면 깊어지고 깊어지면 짙어지고 이윽고 진심이 돼버리는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찐 배려’ 한 조각사회엔 필요하다. 대단한 수고로움도 아니고 실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어둠 속의 흰 지팡이 유저에게는 그 어떠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나 좀 괜찮네?' 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기억은 그게 아무런 바램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준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어차피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도 않으니 해 줄 수 있는 것은 ‘애니타임’을 외쳐주면 불평으로 가득한 텁텁한 입이 상쾌하지 않을까. 어차피 나도 누군가의 애니타임 선언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매일 호흡하듯 가족을 얼굴을 마주하

무심하게 내 얼굴의 단점을 뜯어보다 멀찌감치 거울을 밀어 놓으며 "이만하면 됐다" 퉁칠 줄은 알지,

사실 나도 종종 세상에 혼자인 것 같다고.

화면해설 없이도 화려한 색감의 ott는 쉽게 정주행 하지만 당신처럼 깜깜하게 못 보는 게 많아서.

 

내일은 꼭 자신이 원빈을 닮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서 과장님께 사실 원빈은 때려죽여도 아니라고 맥주 한 잔 마시는 김에 시원하게 말해드려야겠다.

원빈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슬쩍 실눈 뜨고 보면 눈매가 영심이 동생 순심이 같아서 (순간) 연식 대비 귀여울 수는 있다고 상처에 연고도 슬쩍 발라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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