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inway Tower (111 West 57th)
자본주의의 최전선이자 시장 중심의 사회구조인 미국에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재화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거래라고 생각해왔던 손에 잡히는 물건을 통화로 바꾸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가치의 교환은 지금 현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 권리는 미국에서 단연 우선으로 하는 가치중 하나고 이것이 자본주의와 만난다면 그 가치는 거래가 가능한 가치로 탈바꿈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개인과 집단의 권리 보장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 가치를 보호하는 장치 역시 마련되어 있고 필요하다면 본인의 권리를 팔아 금전적 보상이 가능하기도 하다.
지적재산권, 개발권 및 탄소배출권 등 무형의 가치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중에서 건축과 관련된 권리 중 미국, 그중에서도 특히 뉴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권리중 하나는 '공중권'이다. 공중권이란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않을 때 미 사용한 부분을 다른 필지에 이전시켜 거래할 수 있는 권리이다. 만일 토지 소유자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 20층이나 올라갈 수 있지만 여러 제한 조건 때문에 10층 까지밖에 못 올라갔다면 나머지 10층만큼의 용적률을 인근 건물에 팔 수 있는 제도이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롭게 건물을 지을때 좀 더 높은 용적률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법적인 제도 안에서 용적률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함부로 넘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근 건물로부터 공중권을 산다면 투자자는 돈은 들지만 좀 더 높고 넓은 면적의 건물을 지을 수가 있겠다.
앞서 말한것처럼 공중권의 매매가 뉴욕에서 활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결합되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과밀화된 도시중 하나로 이 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싶다면 투자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보다 더 밀도있는 건물의 설계를 요한다. 따라서 자연스레 높은 용적률의 건물을 요구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기존에 있는 뉴욕 건물들의 개발이 제한 되는 등의 특수한 상황과 결부되어 공중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뉴욕시는 보존 가치가 있는 약 1,400여개의 건물을 랜드마크로 지정하여 증개축에 대해서 엄격한 제한을 둔다. 이는 뉴욕시 기준으로 봤을 때 약 3~4%에 해당하는 비율로 숫자나 비율 모두 적지 않다. 건축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토지 소유주나 건물주 입장에서는 한 번 랜드마크로 지정되면 해당 부지에 대한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는 등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에 공중권을 인접한 토지 소유주에게 양도한다면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더이상의 개발이 어려워도 적절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공중권은 엄격한 규제를 보완하고 보상할 수 있는 대안적인 체제이다.
뉴욕 맨해튼을 걸어다니다보면 유독 연필마냥 두께가 얇은 건물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센트럴 파크 바로 밑인 미드타운 주변은 특히나 이런 얇지만 높은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많은 경우가 인접 부지에서 공중권을 사서 허용된 용적률보다 높게 지은 건물이다. 얼핏 보면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은 좁은 부지에 높은 빌딩을 지으려는 뉴욕에서만 보여지는 특수한 풍경중 하나이다. 111 West 57th 빌딩, 일명 스타인웨이 빌딩 (이하 스타인웨이 빌딩)은 공중권을 사들인 초고층 건물로 인접 부지에 약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0억을 공중권을 사는 데에만 쓰였다.
57번가를 지나다보면 목이 젖히도록 하늘 높이 봐야 겨우 스타인웨이 빌딩의 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을 디자인한 설계사무소는 SHoP이라고 불리우는 건축 사무소로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 디자인 회사다. 스타인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건물은 피아노 제작 회사인 스타인웨이사가 소유하고 있던 피아노 쇼륨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작은 홀이 딸린 건물이었는데 이를 매각하여 고층의 주거 시설로 전환하였다. 원래 위치한 건물 내에 있는 스타인웨이 홀은 랜드마크로 지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보존하였고 그 위에 높이 건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주거 시설이 계획되었다. 기존 건물의 일부인 스타인웨이 홀은 스타인웨이 빌딩의 저층부로 통합되어 일부 상업시설 및 로비로 활용되고 있다.
높이 435m의 이 건물은 가로의 길이가 약 18m에 불과해 폭과 높이의 비율이 1:24로 세계 최고 비율이다. 스타인웨이 빌딩은 언뜻 봐도 가느다란 빌딩이기에 구조적으로도 매우 도전적인 디자인이다. 높이에 비해 바닥에 닿는 면적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고자 다양한 구조적 보강이 들어가 있다. 먼저 800톤에 달하는 튜닝 댐퍼를 건물 상단부에 설치하여 강풍에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제어하고자 하였다. 건물이 흔들리면 댐퍼는 건물이 흔들리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진동을 제어한다. 마치 무거운 추가 중심을 잡고 흔들림을 줄이는 것과 비슷한데 같은 시스템이 대만의 초고층 건물인 타이페이 101에도 적용되어 있다. 다만 관광시설로 외부로 공개하고 있는 타이페이 101에 비해 스타인웨이 타워는 주거시설이기 때문에 따로 외부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구조적 보강을 위해 건물의 동쪽과 서쪽에는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있다. 따라서 밖에서 볼 때에는 창문이 있어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리창만 있을뿐 밖을 볼 수가 없다. 건물이 얇고 높기 때문에 과감하게 도시가 보이는 남쪽과 센트럴파크가 있는 북쪽만을 채광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하고 동서로는 구조적 보강을 선택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디자인은 아르데코 형식의 셋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실제로 기능적인 역할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초고층 건물일수록 강하게 부는 바람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데 스타인웨이 빌딩은 더군다나 건물의 가로폭과 높이가 비현실적인 비율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초고층 건물과도 다른 디자인적 접근법이 요구되었다. 이는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더 얇아지는 형태를 통해 건물이 바람에 부딪혔을때 생겨나는 와류 형성을 최소화하도록 계산 되었다. 결과적으로 위로 갈수록 얇아지는 디자인을 통해 구조적인 안정성은 물론 디자인적으로도 차별화된 요소를 갖게 되었다.
건축 스타일적으로 스타인웨이 타워는 1920~30년대 유행했던 아르데코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이다. 아르데코 스타일로 지어진 뉴욕의 대표적인 건물은 크라이슬러 빌딩, 록펠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이 건물들은 수직선의 형태를 강조하고 건물을 위로 갈수록 셋백시켜 웨딩 케익처럼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재료적으로는 점토를 구운 세라믹 타일인 테라코타에서부터 금속과 유리 등을 적절하게 섞어 기하학적인 형태와 금속성 및 세련된 장식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스타인웨이 타워에도 동쪽과 서쪽 파사드에 청동과 테라코타 타일이 들어가 아르데코 스타일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때 테라코타 타일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방향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음영을 통해 건물의 입면을 보다 풍성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남북으로는 다른 초고층 빌딩처럼 커튼월 방식의 큰 창을 두어 도시와 공원을 조망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이로서 건물의 동서방향은 전통적인 뉴욕의 아르데코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변화를 꾀하고 남북 방향으로는 보다 현대적인 재료와 디자인을 가미하여 푸른색의 커튼월 일변오의 뉴욕 스카이라인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스타인웨이 빌딩은 공중권이라는 뉴욕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권리를 사고 팔아 만들어진 건물이다. 만일 공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인근 건물로부터 높은 용적률을 얻을 수 없어 스타인웨이 빌딩과도 같은 아주 얇은 형태의 초고층 건물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맨해튼 거리를 걷다가 멀리 하늘을 보면 57번가에 위치한 높이 솟은 건물들에 눈길이 가곤 하는데 그럴때면 이곳이 미국이고 여기가 뉴욕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느것이든 사고 팔 수 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리에 대한 응당한 요구와 보상을 보면 이보다 더 미국적인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