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57 W
2010년대 초만 해도 대학에서는 통섭,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학과를 한 데 모아 새로운 교과 과정으로 개편하는 것이 유행처럼 일어났었다. 하나의 문장으로 말해도 될 정도의 기다란 이름의 학과가 생겨났던 것도 이쯤이었다. 의도는 여러 개의 학과가 섞여 시너지를 내고자 하는 것이었고, 미처 어두워 잘 살펴보지 못했거나 기존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는듯했다. 학과를 비빔밥처럼 섞거나 용광로처럼 녹여내자는 표현들은 으레 상투적이지만 꽤나 잘 들어맞는듯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와서 보면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학과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체계적인 커리큘럼 부족과 더불어 학문 간 융합의 한계 때문에 지금은 그 유행이 사그라진 것 마냥 보인다.
비슷한 시기인 2010년도에 미국 뉴욕 서쪽의 허드슨 리버에 새로운 형태의 주거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막 떠오르는 건축가였던 덴마크 출신의 비아케 잉겔스(Bjarke Ingels)와 그의 건축 설계 사무소 BIG (Bjarke Ingels Group) 이 해당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비아케 잉겔스와 BIG은 이미 덴마크 및 유럽에서 건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가 되고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단순하고 합리적이며 기능적인 것으로 설명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바탕으로 그만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이전 대표작 중 하나인 덴마크 해양 박물관 (Danish Maritime Museum) 은 역사적 보존 지역이라는 제약을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고 보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표어 하나로 자신의 건축적 지향점을 설명해 오던 모더니즘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단한 선언과도 같이 느껴지며 건축가 본인은 물론 사회에도 규범을 정하는 가이드라인처럼 제시되었다. 장식은 죄악이라 말한 아돌프 로스와 함께 '적은 것이 오히려 더 많다'는 (Less is more)를 외친 미스 반 데 로에 (Mies van der Rohe)는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려왔다. 이후 모더니즘 건축은 너무 단조롭다는 반발에서 로버트 벤츄리는 '적은 것은 지루하다'는 (Less is bore) 것으로 미스를 도발적으로 반박하였다. 1900년대 말 필립 존슨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두 오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는 창녀다' (I'm a whore)를 외쳤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렘 콜하스는 (Rem Koolhaas) 많은 것이 많은 것이다 (More is more)를 말하며 현대 사회의 혼란, 과잉, 다층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일종의 밈에 가까운 이런 표어들은 이제는 더 이상 큰 의미를 담기가 쉽지 않아 졌다. 이전 세기에 비해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와 사회의 양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다양하면서도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문장으로 건축을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더이상 불가능한 일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비아케는 모더니즘의 종식을 알렸던 미스처럼 표어의 종식을 알리는 문장을 통해 그의 건축 세계를 소개했다. 바로 'Yes is more'이라는 얼핏 보면 다소 모호한 표현을 통해 제약도, 가능성도 모두 긍정하며 그것들을 기회로 보고 열린 태도로 문제와 현실을 접근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BIG이 미국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인 Via 57 W (이하 Via)는 그의 창의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설계 과정을 잘 보여준 좋은 예시로 손꼽힌다. 맨해튼 서쪽 허드슨 리버 강 끝에 위치한 이 주거용 건물은 유럽형 중앙 안뜰과 뉴욕으로 대변되는 초고층 건물을 형태와 기능적으로 하나로 합친 것으로 멀리서 보면 도심에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Via는 덴마크 코펜하겐식 도심 오아시스를 건물 중앙부에 위치시켜 거주민들을 위한 녹지를 제공하고, 필요로 하는 밀도의 제공을 통해 뉴욕에 위치한 고층 건물로서의 역할까지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고자 한다. 또한 건물을 덮고 있는 경사 지붕은 간결한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구멍처럼 뚫린 공간에는 남향으로 위치한 테라스가 있어 햇빛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BIG의 건축은 이처럼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 간 통합을 할 때에 그들의 디자인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간결한 다이어그램을 사용한다. 복잡한 것을 설명할수록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다이어그램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BIG이 제약조건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아이디어를 설명했는지 다이어그램을 다시 재구성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사이트는 맨해튼 서쪽 허드슨 리버에 위치한 곳으로 바로 옆 동쪽으로는 다른 주거 시설인 헬레나 빌딩이 들어서 있다.
2. 먼저 사이트 위에 필요한 연면적을 그대로 올려 얼마나 공간을 차지하는지, 높이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3. 중앙에 중정을 두고 중정의 가로 세로 비율은 뉴욕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게 맞췄다.
4. 네 꼭짓점 중에서 북동쪽 꼭짓점을 그대로 들어 올리고 나머지 세 꼭짓점은 낮춰 건물의 형태를 잡는다.
5. 이를 통해 인접한 헬레나 타워의 허드슨 강을 향한 조망권을 침해하지 않고 Via는 남향의 유닛을 더 많이 구성할 수 있게 된다.
6. 건물 내부로 자연광이 더 깊숙하게 들어오게 된다.
BIG은 Via를 디자인하면서 중정을 뜻하는 Courtyard와 초고층 건물을 뜻하는 Skyscraper를 하나로 합쳐 Courtscraper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원했던 밀도의 고층 건물을 지으면서도 유럽식의 중정을 함께 가져가며 결국엔 절충안이 아닌 독특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새롭게 작동하는 건물이 디자인되었다. 건물에 동쪽으로 기존에 위치했던 헬레나 타워는 새로 건물이 들어섬에도 허드슨강으로의 조망권 침해를 줄일 수 있었고 Via는 더 많은 일조권과 함께 중앙 정원과 더불어 발코니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비야케 잉겔스는 사회적 갈등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를 건축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 장애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건축가의 역할을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절충하거나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을 통합하고 연결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자'라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제약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기회이며 이는 창의적 해법의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 관점을 바꿔서 볼 수 있다.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둘 중 하나를 버리는 전략이 아닌 둘 다를 취하며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점차 복잡해지는 사회 구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오면서 조건과 규정은 까다로워지고 제약과 제한은 증가하면서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외쳤었던 통합과 융합은 단순히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넘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 제시에 이르러야 그 의미가 되새겨질 수 있겠다. 지금은 통섭과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2010년대만큼 큰 화두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던 Via를 보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