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한국인과 뉴욕의 보통인

by 케첩엔머스타드

얼마 전 인디, 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Angelika 영화관에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 관객과의 대담을 위해 뉴욕을 찾았다. 이 날 작년에 개봉한 <보통의 가족>의 상영이 있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진행자와의 대담을 통해 감독의 생각을 들어보고 관객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는 두 형제와 각각의 부인을 주축으로 자식들이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와 이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몇 차례 리메이크가 된 적이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좀 더 담아내는 방향으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에 대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정서적인 측면과 사회적 문제를 한국화 하여 스크린에 옮겨냈다.


<더 디너>라는 원작의 제목에서 보듯이 영화에서는 식사 장면이 주요한 변곡점으로 그려진다.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 있는 만큼 전작들과 비교하는 질문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는데 식사 장면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원작에서는 식사를 하는 장면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데, 감독님 작품에서는 세 번이나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잠시 고민하던 허진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아마 세상에서 제일 빨리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을 한 번의 식사 장면을 통해 보여주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어요. “


농을 치며 수줍게 답하는 감독의 말은 영화관 안에 있던 몇 안 되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미처 그 얘기가 통역되기도 전에 웃음을 자아냈다. 미국에 와서 산지 5년 차에 잠시 있고 있었던 우리의 ‘빨리빨리’ 민족성과 식사 속도가 영화에도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때론 식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메뉴를 읊는 것은 기본이고 앉기도 전에 기다리는 시간이 아쉬워 주문부터 하고 착석하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아니었던가.


미국에 와서 미국인 친구 혹은 외국인 친구들과 밥을 먹다 보면 놀라운 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메뉴를 고르는 시간부터 범상치 않다. 마치 정지된 화면 마냥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여러 메뉴를 읽어보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 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미국 식당은 메뉴에 사진이 첨부가 되어 있지 않고 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맛에 관한 얘기밖에 없으니 이미지로 볼 때보다 음식을 고르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메뉴를 골랐어도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있거나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일부 식재료를 먹지 못한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메뉴판을 읽게 된다. 여기에 더해 메뉴판에 쓰여있지 않은 그날의 스페셜 메뉴나 직원이 추천하는 메뉴에 대한 설명까지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미 한국이었다면 첫술을 뜨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다.


밥을 먹는 중간에도 서버가 와서 음식 맛은 어떤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종종 확인하기에 그럴 때마다 밥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대답을 한다. 수다쟁이 서버가 올 경우에는 한 두 마디 얘기를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대화를 하기도 한다. 단골손님이 올 경우에는 마치 원래 손님으로 온 사람인 것처럼 한동안 서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종종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면 서로 근황을 묻는 질문에 앉아서 30분 정도는 애피타이저로 수다를 떨게 된다. 메뉴판은 펼쳐보지도 않은 상태일 때가 많고 펼쳐보더라도 흥미로운 주제의 이야기가 나오면 음식을 고르는 것쯤은 제쳐두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다. 서버가 두세 번은 다녀가고 그때마다 “Sorry, we need a minute”이라고 말하며 시간을 좀 더 달라는 얘기를 하고 나서야 메뉴 본격적으로 펼쳐본다.


한바탕 애피타이저 토크가 끝나고 나서도 음식을 먹으며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받는데 이야기가 유일하게 멈추는 지점은 새로운 음식이 나왔을 때이다. 한 달 전에도 혹은 고작 몇 주 전에도 봤던 친구들이지만 그새 이야기보따리가 다시금 채워졌는지 각자 있었던 얘기를 주고받기 일쑤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두어 시간이 이미 훌쩍 흘러가 있다. 그동안 사회, 문화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개인적인 연애 얘기까지 모두 한 번씩은 다뤄주면 이제 디저트 안내를 위한 작은 메뉴판이 새로 나오게 된다.


나눠먹을 디저트를 고르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 보며 식사 시간은 다시 이어진다. 일반적인 한국의 음식점에서는 디저트를 따로 파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처음에 접했던 디저트 문화는 그 자체로 새로웠다. 저녁을 먹는데 한 자리에서 세 시간은 거뜬히 떠들다니, 한국이었다면 이미 3차로 넘어가고도 지났을 시간이었다.


디저트까지 해치우고 나서 우리를 담당하는 서버가 다시 오면 그제야 계산서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것도 바로바로 진행되지는 않으며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서버가 바쁘거나 우리를 못 보고 지나쳤다면 다시금 어느 정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레 식사 시간은 늘어나고 계산서를 받고 결제 카드를 주고받았음에도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그날 식사의 모든 절차가 끝났음에도 최소 십여분은 그 자리에 앉아 마치 그날의 식사 시간을 마무리하듯 얘기하는 시간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그제야 자리에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제는 미국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식사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는지 대충 가늠을 하기에 뒤에 따로 약속을 잡지는 않지만 처음 경험했을 때에는 나만 서둘러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밥을 다 먹자마자 나갈 준비를 하는 내게 그들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걱정 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익숙해졌으나 두세 시간을 앉은자리에서 수다만을 떨며 보내는 것은 내게는 일종의 능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빨리 먹고 빨리 자리를 옮기는 데에 익숙했던 내가 이 문화에 적응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 그들과 밥을 먹어보니 밥 먹는 시간은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 외에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었다. 가끔은 후다닥 먹고 빠르게 이동하는 한국의 문화가 그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에 치여서 마치 사치처럼 여겼던 여유를 되찾고 느림 속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행복은 긴 식사 시간이 아니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