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는 오래된 건물이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만큼 재개발에 관심이 있지 않은 것도 있고 랜드마크로 지정된 건물은 개발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임대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강하기도 하거니와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도시의 큰 자산으로 여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는 건물이 100년 이상 그대로 있어도 안전상 큰 문제가 없다면 허물지 않고 그대로 사람이 살기도 한다. 처음에 뉴욕에 와서 살았던 집도 매우 오래된 집이었는데 엘리베이터의 생김새만 봐도 건물이 얼마나 세월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 건물은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대문을 열듯이 엘리베이터 문을 수동으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아주 옛날 방식의 엘리베이터와 건물이었다.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어도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런 건물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불평불만이 없었는데 이 날만은 예외였다. 집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뉴욕에 온 지 어언 2년 차가 됐을 즈음이었고 문화도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사건이 일어났다. 다른 룸메이트 2명과 같이 총 3명이서 방을 각자 쓰고 거실을 나눠 쓰는 형태로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어느 날 우리 둘을 심각하게 불러 모으더니 전날 밤에 자기가 물을 마시러 거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부엌 가스레인지 뒤로 후다닥 도망치는 쥐를 봤다는 얘기를 꺼내왔다.
"아니 진짜라니까? 집에서 쥐를 봤어. 일단 혹시 모르니까 쥐덫을 설치해 둘게"
당장이라도 쥐가 나올 것만 같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룸메이트 중 한 명이 얘기를 꺼냈다.
"에이 설마, 아무리 집이 오래되도 집에서 쥐가 나오겠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도 확인할 길이 없기에 그가 그저 잘 못 본 것이기를 믿고 싶었다. 그러면서 친구가 아마존으로 쥐덫을 주문하는 재빠른 손놀림을 어깨너머로 쳐다보며 괜히 이상한 곳에 돈 쓰는 거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설마 쥐가 나오겠어? 그것도 하고 많은 집중에서 우리 집에?'
그가 봤다던 쥐는 며칠이 지나도 우리에게 보이기를 거부했고 결국 나와 다른 룸메이트 두 명은 모두 쥐는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지었지만 혹시 모르니 이미 사놓은 쥐덫은 가스레인지 옆에 놓아두었다. 한바탕 진실 혹은 거짓의 시간이 지나가고 연휴가 되어 친구 두 명은 각자 여행을 떠났고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맑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거실로 나가 물을 한 잔 마시려던 찰나에 창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뉴욕의 새는 목청도 큰 건지 작은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새소리가 들려왔고 새를 보러 창가로 가까이 가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창가로 갈수록 새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눈을 돌려 새소리가 더 커지는 곳이 어딘지를 본능적으로 찾았고 그곳은 바로 다름 아닌 가스레인지 옆이었다. 아차차! 쥐덫에 걸린 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쥐덫에서 벗어나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끈끈이가 잔뜩 발라져 있는 쥐덫은 종이로 만들어졌고 끈끈이만 발라져 있었기 때문에 가벼워서 쥐가 몸을 양 옆으로 흔들자 상자도 덩달아 흔들렸다. 몸만큼이나 긴 꼬리는 작은 상자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상자 밖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그 광경은 충격적이다 못해 괴기하기까지 했다.
뉴욕에서 쥐를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그 장소가 집일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 나왔기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마침 바로 놓여있던 택배 상자를 먼저 집어 들고 기다란 대걸레 자루를 이용하여 쥐덫 채로 쥐를 상자 안에 넣었다. 평소 벌레 하나 잘 잡지 못하는 자칭 서울깍쟁이인 나에게 쥐는 레벨업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보스 몬스터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자도 직접 만지기 싫었기에 과장을 조금 보태 2미터는 뒤에서 긴 막대기로 쥐덫을 천천히 옮겨가며 택배 박스에 고스란히 넣고 마치 타임캡슐에 봉인이라도 하듯이 택배 박스를 닫았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으로 내던지고 싶었으나 교양 있게 자라온 사람은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속으로 울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쥐덫 채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 올라와서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옷을 갈아입고 어디서부터 쥐가 들어온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집에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청소해 본 적이 없는 가스레인지를 뒤쪽을 살펴보니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근처 철물점에서 철수세미와 석고를 사서 급하게 그 구멍을 막았다. 언젠가 주변 친구로부터 쥐가 나왔을 때는 석고로만 구멍을 막으면 쥐가 다시 파먹고 구멍을 내기 쉽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철수세미를 같이 넣어 쥐가 파먹는 것을 방지시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마치 대대로 내려온 비법인처럼 철수세미와 석고로 구멍을 틀어막았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고 룸메이트들이 오자 복덕방에서 집을 보러 온 사람보다도 더 꼼꼼하게 다 같이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고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은 석고와 철수세미로 막았다. 집에서 쥐를 맞이한 이야기는 주변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였기 때문에 간혹 가다 영웅담 혹은 안주거리로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집에서 쥐가 나올 수 있나? 그래서는 안된다부터 우리 집도 혹시나 쥐가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형 타입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약 쥐가 나온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것은 동일했다. 다들 쥐가 나오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도 제발 본인들 집에는 안 나오기를 바라며 처리하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쥐가 나온 것은 무섭고도 다시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스토리가 됐기에 약간의 무용담처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은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하다가 이 주제가 나와서 다시 한번 신나게 떠들었다. 그들은 미드에서나 나올법한 수많은 효과음이 들어간 리액션을 하며 내 이야기에 몰입했고 딸리는 영어로 나는 그 상황을 최대한 실감 나게 얘기해 주었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 그들은 제일 처음 내게 물어본 질문은 과연 쥐를 어떻게 처리를 했냐는 것이었다. 나는 쓰레기통에 같이 버렸다고 말을 하니 왜 쥐를 풀어주지 않았냐며 약간의 타박이 섞인 말을 전해왔다. 뉴욕은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따로 없어 일반 쓰레기봉투에 음식을 같이 넣기에 밤만 되면 쓰레기봉투 안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쥐를 쓰레기봉투에 놓아줬다면 자연스레 쥐덫을 벗어나 음식물 쓰레기 근처를 배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넣고 재빨리 집으로 올라왔다..
어떻게 잡을 것인가와 어떻게 놓아줄 것인가에 대한 행동의 우선순위를 국적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출신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대화가 흘러갔다는 것은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다면 다른 하나는 쥐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인데 어느 쪽으로 보아도 흥미롭지만 좀 더 궁금한 것은 쥐의 시각에서 보았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어두운 새벽, 벽을 타고 4층까지 올라와 구멍을 뚫어 부엌 한 켠으로 노크 없이 들어온 그때의 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보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 만난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쥐덫에서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