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센트럴파크에서의 러닝
골프채를 잡던 사람들이 어느덧 채를 내려놓았다. 그 대신 사람들은 쉽게 휘두를 수 있는 테니스 라켓을 손에 쥐었으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러닝을 하기 시작했고 어디서든 쉽게 뛰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필드에서 코트로, 코트에서 공원 및 강변으로 밀물과 썰물처럼 새로운 운동을 찾아 나섰다. 코로나 시기동안 마음 한편에 있었던 제한된 행동반경을 넓혀 나갔다. 유행의 최후방을 떠맡고 있던 아저씨들도 새로운 브랜드의 러닝화를 찾아 신고 다닌다고 하니, 가히 지금은 러닝시대라는 말이 썩 이상하지 않다.
한국은 서울 한강 변을 중심으로 러닝 크루들이 밤낮으로 달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점조직에서부터 회사 소모임, 동호회에 이르기까지 모임의 유형과 크기도 다양하다. 모두 달리는 속도를 다를지언정 유행을 따라가는 속도는 한국인을 앞서가기가 힘들다. 너도 나도 달리기 위해 러닝화를 알아보고 짧은 반바지를 사는 것을 보면 이미 러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러닝 시장이 경제적, 사회, 문화적으로 양적 팽창을 했다면 뉴욕은 그보다 먼저 점진적으로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즐기는 인구가 증가해 왔다.
러닝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러닝만큼이나 장소가 중요한 운동이 또 없다. 어디를 달리느냐는 기분은 물론이고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뉴욕은 크고 작은 공원이 많이 있어서 그곳을 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주말이면 맨해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센트럴 파크를 뛰는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 센트럴 파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코스는 대략 10km 정도로 한 시간 정도를 달리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다. 이보다 작은 코스로는 6km와 4km 코스가 있다. 이처럼 선택지가 있어 초보자나 간단하게 달리고 싶은 러너들을 위한 옵션도 존재한다. 또, 달리는 도로는 널찍하게 되어 있어서 사람과 자전거가 모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충분하다. 공원이 따분하다면 강변을 따라 뛰는 사람도 많다. 주말 아침 맨해튼 서쪽인 허드슨 리버 강변을 걸어 다니다 보면 러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상의를 탈의한 채 반팔을 허리춤에 깊숙이 넣고 뛰는 건장한 남자에서부터 무리를 지어 그룹으로 뛰는 사람들까지 아침과 저녁,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늘 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런 좋은 환경이 부드러운 카펫처럼 깔려 있음에도 나는 뉴욕에 온 지 거의 3년 동안 러닝은커녕 센트럴 파크 산책도 등한시했다.
내게 달리는 것은 그 자체가 주는 큰 즐거움이 없었다. 다른 스포츠처럼 점수가 즉각적으로 매겨지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규칙도 없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센트럴 파크 근처에 살고 있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릴 수 없는 큰 장점이지만 내게는 그저 관망의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룸메이트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러닝슈즈를 사더니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러닝에 대한 열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덧 친구들이 대회까지 참여하면서 러닝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커져갔다. 주말이면 아침마다 센트럴 파크를 뛰는 친구들을 보며 어느새 나도 신발을 사고 각종 기능성 반팔 티셔츠를 구매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 6대 마라톤 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뉴욕 마라톤을 뛰기 위해 크고 작은 레이스들에 점차 참가하기 시작했다.
혼자 또는 룸메이트 두 명과 센트럴 파크에 달리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부터 한국에서 러닝 크루라는 것이 바람에 민들레씨 날리듯 여기저기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듣게 됐다. 센트럴파크에서 러닝을 할 때도 같은 티셔츠를 입고 뛰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문득 이왕 뛰는 거 혼자나 둘이 아니라 여럿이서 그룹으로 같이 뛰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때마침 한국에서 러닝 동호회서 만난 사람들과 운동하고 친목을 다지며 더 나아가서는 연애의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러닝이 고단한 타국 생활의 한줄기의 빛처럼 다가왔다면 이제는 타들어가는 목을 축일수 있는 시원한 물줄기와도 같은 연애가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러닝을 그녀도 함께한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관건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람을 모으냐는 것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8월 말 신입생들이 내가 다녔던 대학 및 대학원에 들어오게 됐다. 새로 들어온 누군가가 단체 카톡 대화방에 이 학교에도 러닝 모임이 있냐는 물음을 던졌다. 700명 가까이 있는 이 대화방에서 러닝 모임이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물음에 좋아요 표시만 수십 개가 달렸다. 밥 먹던 와중에 이 글을 확인하고는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임이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러닝도 즐기고 소통도 하며 더불어 원대한 꿈인 연애까지 쉽게 닿을 것처럼 보였다. 전체 대화방에서 질문을 본 즉시 룸메이트들에게 오늘부로 러닝 모임을 만든 다는 것을 알렸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면서 집에 러닝슈즈만이라도 있다면 바로 크루로 받아들였다. 이후 재빠르게 룸메이트와 너나 할 것 없이 주변 지인을 끌어모아 오픈 채팅방을 하나 열었다. 전체 대화방에 질문이 올라온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불순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카톡방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한껏 부풀어진 내 꿈은 터질 것 같이 더욱 커졌다. 첫 모임 게시 공지를 하고 모임이 있는 주말까지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방에서 아는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되었지만 내 관심은 베일에 가려진 나머지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렇게 주말이 됐고 모임 장소에 나갔을 때에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엔 룸메이트를 비롯한 늘 봐오던 남자 친구들 서넛이 전부였다. 큰 허탈감이 밀물처럼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풀었다. 공원을 달리면서 연애까지 꿈꿨던 것이 스스로 봐도 웃겼던지 혼자 큭큭 거리며 공원을 가로질렀다. 이후에도 매주 모임을 지속하면서도 기대했던 소정의 목적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매 주말 달리면서 나를 비롯한 같이 달리는 친구들의 체력만 빠르게 좋아졌다. 6km만 겨우 달렸던 과거와는 달리 10km 및 하프 마라톤 대회에도 같이 달리는 친구들과 참가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함께 달리며 또 다른 대회를 준비 중이다. 연애는커녕 새로운 친구와의 사귐마저 신기루처럼 쓱 사라졌지만 어쩌면 지금 이대로가 좋다. 뛸 때마다 늘 알던 친구들이지만 뛰면서 얘기하며 일상을 나누고 서로에게 더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러닝에도 더 재미가 붙어서 이제는 하프 마라톤을 넘어 풀 코스에도 곧 도전할 예정이다. 불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러닝 모임은 현재 매우 건전하게 돌아가고 있다. 취지와 목적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달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달리기가 재밌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