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의 흔적이 남긴 은은한 빛

명희 작가

by 케쓰



차갑고 단단한 금속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닮을 수 있을까.



이명희 작가의 작업 앞에 서면, 그 질문은 자연스레 해답을 얻는다.

작은 단위들이 반복되고 쌓여 만들어지는 구조는,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풍경과 닮아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제약을 넘어선 자유, 차가움 속에 스민 따뜻함을 발견한다.






0.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금속의 단위형태를 반복해 이어 붙이며 새로운 구조와 형태를 만들어가는 금속공예 작가 이명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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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궁금함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금속이라는 물질이 가진 물성과 감각은 특별한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스를 통해 금속판을 단위 형태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 혹은 이 재료를 계속 사용하게 만든 끌림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금속은 주로 평평한 판을 재료로 다루기 때문에 곡선적이고 볼륨 있는 형태를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제약 속에서 둥글고 부드러운 조형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프레스라는 기법은 틀에 얇은 판을 넣고 압력을 가해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제 감각과 잘 맞았습니다.

그때부터 단순히 기법으로 머무르지 않고, 프레스에서 얻어진 형태를 저만의 공예적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작은 단위가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방식에 재미를 느꼈고 지금의 작업은 그런 저의 취향과 시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 ‘단위형태에 우리 하나하나를 투영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축적되어 쌓여가는 모습이 공동체를 연상시킨다는 표현도 굉장히 와닿았는데요, 이 사각형 유닛 하나하나에 사람의 존재를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위형태 하나하나는 독립된 형태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전체 구조를 이루도록 제작됩니다. 하나의 단위형태만으로는 구조를 완성할 수 없고, 용접을 통해 여러 단위를 연결해야 전체가 형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각 단위가 서로 영향을 주며 연결되는 공동체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단위형태가 반복되고 쌓여 구조를 이루듯, 우리의 삶도 반복되는 일상과 경험 속에서 쌓이고 연결됩니다. 그래서 제 작업에서 단위형태는 단순한 금속 조각을 넘어, 반복과 연결의 구조를 보여주는 장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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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님 작업을 보면 마치 벽돌이나 타일, 혹은 도시의 단면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렇게 주변 사물에서 영감을 받아 공예로 풀어내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작가님만의 작업노트 혹은 작업에 대한 밑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저의 작업은 주변에서 마주치는 벽돌, 타일, 도시의 단면과 같은 사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큰 면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자, 디자인적 반복이라는 조형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에서 관찰한 반복과 패턴에서 느낀 시각적 감각을 제 작업으로 풀어내 형태를 반복하고 쌓아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작품을 제작할 때는 비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실물 모델링을 많이 합니다. 대략적인 스케치를 한 뒤 종이로 모델을 만들어 전체적인 비례와 구조를 확인하고, 여러 비례로 제작한 후 공간에서 직접 두고 관찰합니다. 이러한 아날로그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이 저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즐거운 방식이며, 덕분에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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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복의 끝은 곧 자유라고 하셨습니다. 작업적 측면에서의 자유와 작가님의 삶 속에서의 자유로도 뻗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두 가지 각각은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른가요?


작업에서는 하나의 단위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제한된 자유 안에서 형태를 조합하고 실험하게 됩니다. 반면 삶에서는 주변의 다양한 재료와 형태들을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상하며 훨씬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작업 속 자유와 삶 속 자유가 서로 영향을 주며 이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매 순간 숙제를 하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도,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5.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중에 유난히 오래 손이 가고, 자꾸 눈길이 가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그 작품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을 들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작품 사진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그전까지 저는 조명, 스툴, 선반과 같이 사용을 고려한 작품을 주로 제작했기 때문에, 작업을 만들 때 쓰임에 대한 고민이 가장 먼저였습니다.

하지만 ‘균형과 장식’ 그룹전시에서 제작한 모빌-오뚝이 작업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한 외국인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바라보는 행위와 관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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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작가님께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실험적인 작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으로는 조각이나 회화처럼 공간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업들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벽면을 꾸밀 수 있는 벽 오브제를 조금씩 시도하고 있는데, 작업 방식이 좀 더 자유롭고 확장 가능성이 있어 재미있게 작업하는 요즘이에요.



7. 작가님의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저의 작업이 금속이라는 소재를 다루다 보니 차갑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종종 “차갑지만 따뜻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손으로 마감하며 생긴 잔잔한 사포 자국이 은은한 광을 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제 작업을 통해 공예의 손길을 느껴주신다면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관람객분들이 어렵지 않게, 그저 보이고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작업을 경험해 주셨으면 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두의 삶이 즐겁고 재미있기를 바라며, 저 역시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즐거움이 제 작업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속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사포질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온기, 반복 속에 숨어 있는 자유의 감각은 우리 삶의 작은 비유처럼 다가온다.



10년 가까이 이어온 즐거움이 오늘도 작품 속에서 빛나듯, 우리의 일상도 그렇게 쌓이고 연결되며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명희 작가의 금속은 결국 ‘삶을 닮은 따뜻한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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