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인형
나는 걱정인형이다.
나를 옭아매는 것은 바로 내 쓰잘 떼기 없는 상상력이다. 긍정적인 상상력도 물론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쓰잘 떼기 없는 상상력'인 잡생각도 존재한다. 이 녀석은 몹시 위험할 때가 있다.
콜라 많이 먹으면 살쪄서 안 좋다던데... 이도 썩고...
제로 콜라는 칼로리 걱정은 없는데 대장 환경을 파괴한다잖아...
에구...
이러쿵저러쿵 하나하나 단점을 다 나열해 따지다 보면 이 세상에 먹을 것도 없고 쓰고 입을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한두 번씩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하고 있는 남편이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전화를 해 볼까? 아니지, 아니야. 한창 바쁠 때 전화하면 더 정신없잖아.
걱정인형이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때는 저렇다. 하지만 간혹 소설을 쓰는 경우도 생긴다. 이면에 있는 걱정인형은 어찌 보면 힘든 상태의 내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는 선연한 장치이다.
실제로 얼굴 보며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과 전화하는 것,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는 것 순으로 상대방의 의도와 정확한 워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건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간혹 상대방의 카톡을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지금 이 상황 너무 불쾌한데? 다른 사람을 너무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
아니 카톡을 읽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몇 시간째 아무런 답이 없는 거야? 다시 카톡을 남겨 말어?
지금 화내는 건가? 아니면 비꼬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점을 맞이하게 되는 경험은 분명 누구나 하게 된다. 이때는 잡생각 제조기가 아주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다. 안 그래도 되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만나서 다시 이야기 나눠보자. 다른 뉘앙스겠지. 일부러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려고 그러겠어? 굳이...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든 때에 이면에 숨어있던 나아쁜 걱정인형이 나타난다. 그럼 그 인형이 나의 생각을 옭아매고 나를 갉아먹고 나를 잠식한다.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상을 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멍청하고 걱정스럽지만 그런 스위치에 불이 탁-하고 들어왔을 때는 나도 나를 어찌할 수가 없다.
착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착각하는 것은 독선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그런 성질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면 실수를 피할 수 있다.
프로레고메나
출처: 칸트의 말, 삼호미디어
'칸트의 말'이라는 책을 읽으며 자각하고 있으면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 외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내 혼자만의 걱정인형이 나를 옭아매고 갉아먹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쇼츠를 보기도 하고, 지인에게 반갑게 연락하기도 한다. 삶에 긍정적인 액션이 하나 둘 쌓이면 편안한 상황에서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힘든 상황이라면 조금은 그 침체된 상황에서 벗어나 평안한 내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될 테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만큼 힘들어하고 힘들다고 표현하게 되어 있더라.
그렇게 힘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받고 나면 다시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도 지인이나 가족과 토론도 해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해보지 않았던 색다른 경험도 해 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은 회복을 했기에 지금 내가 너무 힘들고 벅차서 너무 정신없는데 나 괜찮은 거 맞아? 같은 생각이 간간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은, 아주 잠시만 멈춰 서서 지금 내 상태를 점검해 보고 도움이 필요한지 자가 진단을 해 보면 좋겠다. 그저 작은 권유일 뿐이다.
나를 옭아매는 건, 바로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