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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대로 Jul 15. 2022

지구 반대편에서 토끼 똥을 세다.

Blankeney point

7살 무렵, 나는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뭔가 방과 후 교실 프로그램에 같은 것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명이 일찍 정해졌다고 해야 하나 자아가 일찍 형성됐다고 하나 내가 고른 것은 아니나 다를까 자연 수업(?)이었다. 산에서 자기가 관찰한 동식물들을 그린 수첩을 들고 다니는 (딱 지금 내가 하는 짓이다) 선생님이 소나무 가지로 차를 끓이는 법이나 버섯을 구분하는 법, 동물 발자국을 알아보는 법 등을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우리에게 숲 속에 초콜릿을 숨겨놓았으니 찾아서 먹으라 귀띔을 해준 적이 있다. 우리는 흩어져서 초콜릿을 잔뜩 주워 먹었다. 시큼 달달하면서도 영 싫지만은 않은 이상한 초콜릿이었다. 돌아온 우리에게 선생님은 사실 초콜릿 같은 건 숨긴 적이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우리는 토끼 똥을 신나라 먹은 것이었다. 배신감이나 더러움보다 똥이 생각보다 제법 맛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아이들에게 똥을 먹일 리가 없다. 기억이 흐려졌거나 아니면 애초에 내가 잘못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 뭔가를 주워 먹긴 했는데 뭐였지 그럼 그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하필이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나를 맞이해준 것이 이번에도 토끼 똥이었기 때문이다. 




코스가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현장 학습을 떠났다. 위치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바다가 나올 때까지 이동하면 나타나는 Blakeney point라는 곶이었다. 육지임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지형 탓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안면도 끝자락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아직 서로 이름도 잘 모르는 우리를 반겨준 것은 바닷바람과 거미줄 가득한 오두막이었다.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UCL의 생물학과 학생들이 다만 며칠씩이라도 머물며 실습을 해온 장소라고 한다. 사뭇 전통과 낭만이 넘치는 설명 같지만 글래스고랑 리즈 대학은 아프리카를 보내주는 것에 비해 그냥 유명한 학교라고 이걸로 퉁치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물개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다지 귀엽진 않았다. 멀찍이 모래섬 위에 무리 지어 구물거리고 있는 실루엣이 마치 거머리 같았다. 처음 이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식물학자가 심었으나 척박한 환경 탓에 100년째 생장을 멈춰버린 몇 그루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무릎보다 높이 올라오는 식생이 없었다. 덤불과 이끼로 덮인 모래 언덕 사이사이로 가끔 커다란 토끼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에는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부엌 오두막에서 숙소 오두막까지 몇 백 미터를 걸어가야 했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다 같이 손을 잡고 다녀야 했다. 그렇게 걷고 있노라면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었다. 새들은 대표적인 주행성 동물인 줄 알았는데 어둠 속에서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새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당연히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데이터를 모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슨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라는 건지 아무런 부가 설명이 없었다. 꽤나 당황스러웠다. 머리를 맞댄 회의 끝에 우리는 지표의 식생과 토끼 똥 숫자의 상관관계를 통해 토끼가 똥을 눌 때 선호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세 명씩 방석 만한 격자 모양 틀을 들고 흩어져 임의로 바닥에 내려놓은 뒤 칸마다 지표의 식생 (이끼, 모래, 수풀, 물 등)과 발견된 토끼 똥의 개수를 기록했다. 나름 드러나지 않은 곳, 즉 수풀 등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많은 응가가 발견될 것이라는 가설까지 세웠다. 문제는, 일련의 방식이 정해지는 동안 나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실험 실습 같은 것은 물론 학부 때도 여러 번 해봤지만 그저 시키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암기했을 뿐 스스로 목적과 가설, 방식을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반면 이런 대우(?)에 익숙한 것인지 외국인 동기들은 비록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으나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화가 났고,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이면 내가 남은 일 년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리고 막상 토끼 똥을 세기 시작하자 절대 어려운 것을 하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고 열심히 해서 얼른 따라잡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그곳의 환경만큼 거친 교육 방식이었다. 단 하루의 시험을 위해 수십 만의 학생들을 몇 년간 밤새워 공부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 환경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존을 강요했다. 나는 또 한 번 토끼똥에게 가르침을 얻고 있었다. 


Cover image, 3rd photo by Nicole Fergu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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