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지금도 어리지만, 말하자면 지금보다 어릴 땐 '뽕' 이 중요했다. 빈약한 가슴은 왠지 모르게 나를 위축시켰고 그게 '남들 만하게' 부풀려있어야만 가슴을 폈다. 달라붙는 옷을 입을 땐 봉긋하게 솟은 가슴 아래로 뚝 떨어지는 윗배와 똥배 없는 아랫배는 내 자신감이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밝히자면 교정 속옷을 맞추러 가서야 내 사이즈가 트리플 A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나는 왜 가슴에 살이 없는 건가요!
그런 내게도 자유는 있었는데 바로 집에서였다. 습관적으로 집에서는 냅다 브라를 풀어버렸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체했던 나는 브래지어를 벗어야만 소화가 잘 된다 느꼈다.
그리고 와이어.
나처럼 가슴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가슴 모양을 잡아주는 와이어 브라는 내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가끔씩 오래 입은 속옷은 와이어가 천을 뚫고 나와 가슴에 상처를 내기도 했고 속옷을 벗었을 때 살에 남은 자국은 그냥 이유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같은 일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외국에 나갈 기회들이 많아졌는데,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여자들이 ‘노브라’인 채 밖을 나돌아 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젖꼭지가 옷에 비치는 얇은 티셔츠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 주변 사람들도 무심한 듯 지나가는 모든 상황. 내겐 너무 신선했다.
그때는 그랬다. 은근히 그녀들의 당당함이 부러웠고
별일 아닌 듯 여기는 사회 시선이 의아했다.
결혼 후,
집에서 노브라는 당연했고 실은 좀 더 과감해지기까지 했다. 누구는 아줌마 반열에 오른 게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집 앞 슈퍼 나갈 때는 그 상태로 카디건을 걸치거나 조금 두꺼운 티를 입는 식으로 누군가를 의식했다.
어느 날엔 출근길 현관문을 닫고 나와 한걸음 걷는데 뭔가 허전해 살피니 브라를 안 한 채로
나와 당황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브라는 점점 더 불편한 대상이 되었다. 와이어브라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부터 '노'와이어 브라는 내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리고 뽕이 없어도, 가슴을 잡아주지 않아도 되는 심플한 브라를 찾아다닌다.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움이 편해질 나이라고 해두자. 작은 가슴은 더 이상 내 삶의 화두가 아니다. 사회는 여전하고, 내 가슴도 여전하다. 변한 건 나다.
나는 지금껏 브라를 하고 다녀야만 한다는 암묵적 사회적 합의 속에 그게 누군가에 대한 예의라 믿고 살아왔다. 그런 예의를 차리다 보니 진작 누렸어야 할 내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를 오롯이 사랑하는 것. 누구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삶의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밋밋한 가슴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조금 더 용기를 내 ‘노오 브라’로 거리를 활개 칠 수 있을까. 뭐, 언젠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