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쟁이가 다시 되고픈 소년
인연의 끈은 참 질기고 야차와도 같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에 처음 마주한 파스텔...
크레용과 크레파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첫번째 인연 입니다
크레용이 없어서 하얀 도화지에 형이 쓰던 파스텔로 동화책을 보고 따라 그린 미술 숙제
한 점으로 난 하루 아침에 그림 그리는 유명한 붓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받는 칭찬이 좋아서 까불거리며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또 그때 마다 칭찬도 받았고요....
수많은 대회에서 수 없이 상 을 받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림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화선지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묵화가 뭔지도, 화선지가 뭔지도 모르는 핏덩이 시절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두번째 인연 입니다
묵 붓이 없어서 수채화 붓과 물감으로 화선지에 교과서에 나오는 묵화를 보고 따라 그렸습니다
색갈도 넣고 말입니다 근데 미술 선생님이셨던
엄자성자X자 선생님이 방과후 교무실로 오랍니다
이젠 죽었다 했지요.....
'집에 벼루 먹 있어'
'없습니다'
'누가 화선지에 물감으로 색을 넣으라 했어, 장난 한거야?'
'아닌데요 검정 색에 색갈이 들어가면 살아있는거 같을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
'너는 선생님한테 반항한 죄로 매일 방과 후에 미술실에서 묵화 20장씩 그려서 검사 맡고 집에 가, 알았어'
'예,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쓰던건데 숙제 하는데 쓸 도구들이니까 아껴쓰고 반납 해'
생전 처음보는 벼루, 먹, 문진, 연적, 붓들을 나무 케이스 안에 담아 내게 내 밀었습니다
폼 났습니다
지겨워야 하는데 잼 졌습니다
붓 잡는 법 부터 시작해 매, 난, 죽까지 매일 매일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국은 아쉽게도....)
선생님께서 서X대학교로 가시기 전까지
중학교 시절 내 몸에서 항상 꿀 먹은 묵 향이 나던 시절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캔버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나이프가 뭔지 캔버스가 뭔지도 모르는 청춘 시절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세번째 인연 입니다
지금은 저 높은 하늘 나라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 창식이랑 나는 빨래비누로 아그립파를 조각을 하면서 '연과 얀새'로 유명한 하자영자X자 선생님을 뵙게 됩니다
'너희 둘 짜고 했지'
'아닙니다'
'근데 이 놈들아 어떻게 웨이브며 색갈(느낌)까지 비슷해'
'선생님 진짜 아니예요'
'웃기지마, 너희 둘은 둘 다 미술실로....
안오면 알지 점수는 빵점'
그날 우리는 담배 연기 자욱한 미술실에서 처음으로 도화지가 아닌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과는 창식이는 99점 나는 94점
'너희 둘은 미대가라
넌 거칠고, 넌 여성스럽다....
성적도 그만하면 됐고 기본만 배우면 충분히 좋은 대학도 가고 내 후배도 되겠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소룡도 되어보고 강철수 만화속의 긴 생머리 소녀도 그리는 즐거운 청춘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70년대 팝과 폭송, 기름 냄새는 덤 이었고요
근데
난 처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됩니다
붓쟁이는 배고프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에 밀려 평생 쓰지도 못하는 촘스키를 배웠지요 ㅎㅎㅎ
창식이와 난 70년대 당시에는 생소한 산업 미술을 하고 싶었고 대학에도 산업 미술 관련 학과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우리는 우리 맘대로 오직 흑백인 카라얀의 사진에 색갈을 약간 넣어 판넬을 만들어 선물도하고, 이중섭의 소에 빨강에 보라색을 넣어 화실에 걸기도 하고, 러시아 체조선수를 모델로
신신파스와 매치해 산미전에 출품도 하고 ....
정말 좋은 청춘이었습니다......
아쉽습니다
난 촘스키 이론을 배우게 되었고 창식이도 원하는대로 돈도 벌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이름있는 학교를 마다하고 산업미술 학과가 있는 전문대학에 갔고 우리는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습니다
아모레 병에 든 싸구라 기름을 사도, 젓가락 같은 막 붓을 사도 즐거웠고 산미전에 출품하여 상도 받고 그림을 팔고 받은 돈으로 술도 진탕나게 먹어도 보았습니다 즐거운 청춘 이었습니다
청춘에게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제
군대
창식이는 군대를 갔고 나도 신검을 받았지요
그 이후에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창식이는 하늘 나라에서 물감 살 돈
걱정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겁니다
그날도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창식이 둘째 깡패형이었습니다
'영근이니'
'예, 형 무슨 일이예요 새벽부터'
'....미안한데 좀 와 줄래'
짜증스러웠습니다
'전화 하지 말라고 하는데, 창식이가 가는 길이 너무 쓸쓸할 것 같아서.....'
'아 정말, 형 꼭두 새벽부터 장난하고 난리예요...'
'장난 아니고 창식이 죽었다....
부대에서 그린 그림으로 부대 내 멋있게 꾸몄다고 특박 나와서 서울로 점프해서 집에 왔다가 복귀하는 도중에 열차에서 떨어져 죽었어....'
'........'
'친구라고는 너뿐인데 와 줘라, 영근아'
'알았어요, 갈께요'
근데
난 가지 못 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
난 그렇게 창식이를 보냈고 그림도 떠나 보냈습니다
붓 자체를 꺽어 버렸습니다
38년이 지난 이제라도 글로나마 적어 창식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미 웃고 있겠지만
무튼
낼 모래면 환갑이 될 나이지만
마지막 인연이 소리없이 내 곁에 있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도심 한 복판의 반 고흐...
말 들은 안 하지만 거의 못 쓰게 될게 확실한
한 쪽 다리...
온통 흰색 도화지 같은 병실...
브런치에서 만나는 그림 같은 이야기들....
그립습니다
기름 냄새, 물감 냄새가
창식아 용서해 줄거지?
멀리 돌아 왔지만 이 많큼 벌 받았으니 봐 주렴
지금 당장 그릴 수도 없지만
덤으로 얻은 목슴 값을 지불하고 나서 그림 속에서 다시 만나 38년 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밤 새워서 이바구 해 보자꾸나
이번에는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 볼까 합니다
-일요일 아침 밤 새 생각한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며 ....병실 침상에서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