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안주 속에도 인생이 있는거야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서
살고 늙어 가는 것 같습니다
많이 배운이들에게서 얻는 지식도 있지만 일상에서도 문득 문득 배우는 삶의 지혜도 만만치 않은 거 같습니다
누구나 치기어린 젊은 시절에는 못 할게 없고, 겁도없이 무슨 일이든 대들기도하고, 넘 같이 쓰기 위해 넘 몰래 알바로 돈도 벌어 어깨 힘 주며 호기있게 쓰기도 합니다
여자애들이 있으면 더 호기를 부리죠ㅎㅎㅎ
뭐든지 지기 싫은 때니까
그날도
찜통지고 한 나절 알바를 뛰고나니 어깨가 다 까지고 쓰렸지만 다른 일보다 짭잘한 일당 덕에 이틀치지만 제법 두툼한 오까네를 들고 계획한대로 광장 시장에 가서 캔버스 천 좀 사고, 천이랑 걸이랑 종로에서 소주 한잔 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따 저녁에 야방 슬 사람 없어?...일당 쳐 줄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
더 벌면 좋을텐데도 선듯 나서는 이는 없다
이 세계가 그래서 일당 노가다라고 하는거 같다
'아 쉬발 정말 아무도 없어, 정말 이럴거지...'
'........'
'노인네 뒤 질거면 뭐 빨랐다고 여기와서 사람 속 뒤집고 쥐랄이야. 진즉이나 이야기 하던가....
어이 거기 학생 오늘 야방 한 번 서봐, 좀 더 줄께'
'......'
안 할 수도 없다 안 하면 담에 일을 안 시킬테니까...
'그럼 오늘 먼저 오까네부터 주세요 저녁 참도 주시고요....'
'알았어..... 함바집에서 참이랑 아침까지 먹고 들어가 임마'
'낼 학교 가야 하니까 좀 만 일찍 와 주세요...'
'알았어 색꺄, 장사 1박 2일해'
입은 걸어도 학생 아니라고 속였어도 알고도 속아준 고맙고 정 많은 사람입니다
신축중인 개인 주택의 야방은 좀 도둑이 무섭던 시절이라 제일 먼저 각구목부터 한 자루 챙겨놓고
함박집으로 향했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밤에 혼자 외딴 곳의 하룻밤은 소주 한 잔 안 하면 잠 자기도 더러우니까
말입니다
함박 집은 무엇이든 싸고 참 맛있습니다
우선 푸짐합니다
'이모 소주 한 병하고 안주 될 만한 거 주세요'
'혼자야'
'예, 맛 있는거 주시고 소주도 음식값에 같이 업혀주면 댕큐고....헤헤'
'베라먹을 놈, 알았어'
술 한 잔하면 참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무슨 걱정과 고뇌가 그리 많고,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젊음이고 지성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가장 낮은데 있는 사람들의 외침을 대변하는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게 단 줄 알았습니다.....
학교는 거의 매일 휴강이고 최루탄 냄새, 전경들...
따라서 매일 술이고....
78년 그때는 그랬습니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살았습니다
앞으로 뭐하지?
학교는 제대로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다시 잡은 붓은 놓기 싫고.....
그래도 명색이 과 대표라고 선배들 따라 다니면서 잃은것 만큼 얻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힘과 폭력의 논리를 배웠습니다
경청, 결단하고 행동하는 단호함도 배웠습니다
두려워서 비겁하지만 도망치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이 뭔지를 배우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제길
또 말이 길어졌습니다
무튼
소주 한잔이 한병이되고 두병이 될 쯤
거의 손도 안대고 식어버린 국물이 비릿한 느낌이 날 때 쯤 입니다
'이모 이거 좀 만 데워주면 안 될까?'
'이놈아 안주는 안 처먹고 술 만 처 먹으면서 뭘 데워 데우긴....그냥 처 먹어'
'이모 내가 데울께... 맛 있어서 그래 내가 다 처 먹고 갈께 헤헤헤'
'베라먹을 놈의 쉭끼...냅 둬 데워 줄탱게'
언젠가 부터 생긴 버릇인지는 몰라도 술 먹으면 가끔식 난 하늘을 봅니다
모르실겁니다 밤 별이 얼마나 이쁘고 밝은지....
오줌 한 번 내 지르며 하늘 한번 보고 돌아와 앉아 담배를 꼰아 무니 데워진 안주가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이 젊은이 나도 혼잔데 같이 마실까? 안주도 같이 먹어도 좋고...'
'.......'
'젊은 사람이 담배를 너무 맛있게 피워서 그래...'
'그러세요 그럼'
한 동안 말 없이 술만 마셨던거 같습니다
'젊은이 학생이지?'
'......'
'공사판에서 한 50년 있다보니 반 무당 다 됬어'
'돈이 필요 한지, 도망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몸에서 냄새가 나 매퀘한 췌루탄 냄새...'
'그런거 아닌데요'
'아님 다행이고'
술 맛이 순간 훅 하고 달아나는 느낌이 왔습니다
'주제 모르고 하는소리네만 학생이면 학교로 돌아가 돌아가서 자네가 지금 보고 느낀대로 우리네 같은 인생들을 밖으로 이끌어줘...
우리 스스로는 안돼 절대 안돼....
우습게 들리겠지만 아까부터 보니 학생 같은 사람들이 아직은 이런데 오면 안돼 공부해야지
각자 마다 주어진 자리가 있고 쓰는 자리가 달라
식어버린 안주 속에도 인생은 있듯이
식은 안주를 먹는 것도 인생을 배울 수 있는걸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생도 느끼거나 배운게 분명 있을거야....'
진짜 아닌 밤중에 홍두깹니다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
괜히 합석 했다 생각하며 이후에는 애꿎은 담배만 작살내고 술 만 뽀개다가 헤어졌습니다
근데
신기한 것은 머리속에 남겨진 말 한 마디가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식어버린 안주 속에도 인생이 있고,
식은 안주를 먹는 것도 인생을 배우는 거'
비록 어떤 의미로 얘기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 나름대로 그 의미를 깨우친 것 같습니다
거의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의미를 가끔씩 되 새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란 것도 말 입니다.....
누군가도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면
한번 음미해 볼 만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해석은 읽는분 마음 이시고요....
-식은 밥을 뎁히는 걸 보며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