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빼앗긴 사람들
오늘 막내딸의 등굣길에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찬탈당하는 자를 도우라는 사명에 대해서 말하더군요. 사람의 인생의 목표는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타인을 돕고 구제하는 일은 그중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목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년 전에는 젊은이였지만 지금은 중년이고, 20년 후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네가 될 터인데 세상을 살아가며 따스한 가슴을 더 많이 만들어 놓고 떠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사람은 자기 인생의 목표를 나 자신보다 큰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나. 나. 나. 그래봤자 나 죽고 나서 날 위해 울어주고 추모해 줄 이 하나 없을 겁니다. 이제는 사진과 영상이 영원히 클라우드에 남아서 나를 추모해 줄 사람만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세상의 기억 속에 존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누구나 다 찬탈당하고 삽니다. 빼앗기며 산다는 소리죠. 찬탈은 돈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고, 감정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감정을 찬탈하는 사람은 정말 많죠. 어떤 말이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데 마구 뱉어내는 사람들 말입니다.
가장 빼앗기기 쉬운 것이 감정인 듯합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에 대한 책이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겠지요. 내 곡간이 여유로워야 남도 도울 수 있습니다. 우선 내 마음이 쉽게 흥분하거나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등의 감동으로 요동하지 않게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저는 타인에게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만의 비법을 개발했습니다. 화를 내는 상대에게 아주아주 안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오늘 아침에 이혼을 통보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가족 중에 누군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걸 오늘 알았을 수도 있죠.
그날의 일진이 아주 아~주 안 좋은 상대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가 이해해야죠. 그런 일이 생겼으면 저렇게 쉽게 화낼 만도 하지. 하며 측은한 눈빛을 감추기 위해 애씁니다. 뭐 실제로도 매 순간 화를 내는 사람은 참 슬픈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니 측은하게 봐도 될지도?
급하게 차선으로 끼어드는 차를 보면 아, 지금 바지에 싸기 일보 직전이구나.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가는 중이구나. 하고 이해를 합니다. 내가 욱하고 반응해 봤자 나만 감정을 찬탈당하는 손해니까요.
그럼 이렇게 내 마음을 다스렸다면 이제 타인의 감정을 빼앗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해야겠죠?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상대의 감정을 뺏는 일도 같이 확 줄어듭니다. 화를 내면 거의 반드시 상대도 화를 내거든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반사적인 인간의 대응법입니다.
그래서 어느 상황에도 침착할 수 있는 능력이 참 대단한 거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은 위대합니다. 타인에게 내 감정을 쏟아붓지 않기 위해 말을 할 때 감정을 섞으면 안 됩니다. 이거 무지 어려워요. 그런데 몇 번 성공하면 정말 짜릿합니다. 나 자신을 이렇게나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에 혼자 감동하게 됩니다.
자녀를 혼내는 일도 사실 내 감정이 섞인 경우가 거의 100%입니다. 공부하라고 소리치면 내 속은 당장 편해질지 모르지만 과연 아이가 바로 공부를 할까요? 자기 자신이 학생일 때를 기억해 보면 저~얼대 아니죠. 공부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만 뇌에 제대로 입력이 됩니다.
그럼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는 일이 혼내고 소리치는 것보다 월등히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혼내고 소리쳐봐야 아무 쓸모없이 에너지를 허비하고 가족의 관계에 금을 내는 행위일 뿐입니다. 훗날 큰돈을 벌기 위함이던지, 호기심이 생기는 영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히서라든지, 더 높은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찬탈당하는 자를 도우라. 우선 내가 찬탈당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나 또한 남의 감정을 빼앗지 않도록 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 뒤에야 그렇게 슬펴하고 애통해하는 자들을 찾아 나설 수 있겠죠. 옆에 있는 가족부터 말이에요.
오늘의 질문: 오늘도 타인의 감정을 뺏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보셨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