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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Jun 01. 2021

홍상수의 <인트로덕션>(2020).

지금 주목해야 할 영화들 #3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장편영화이자, 그의 첫 영제 영화인 <인트로덕션>을 조조영화로 보고 왔다. 2021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대 이상의 감상을 하고 왔다. <인트로덕션>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모더니즘 성향이 짙게 느껴졌다. 세 단락으로 구성된 플롯과, 이전 영화들보다 젊어진 주인공을 앞세워 보다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인트로덕션(Introduction)처럼, 젊어짐과 동시에 성숙해진 것처럼 보이는 <인트로덕션>을 감상한 뒤, 홍상수 감독이 펼칠 앞으로의 영화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특히 이번 작품은 각본, 연출, 촬영, 음악까지 홍상수 감독이 혼자 담당했기에 그의 내면을 보다 개인적이고 깊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홍상수 감독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감안했을 때, 초점이 맞지 않던 <인트로덕션>의 화면은 기술적으론 평가절하될지는 몰라도 예술적으론 이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뤘다고 평가하고 싶다. '인트로덕션'이라는 이름을 지은 뒤, '인트로덕션'이 가진 소개, 처음, 시작, 도입의 의미들을 무엇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홍상수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걸작이었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한의원을 찾아간다. 한의사인 아버지는 환자에게 찬 것을 피하라고 조언하지만, 이에 반해 아들은 밖에서 눈을 맞으며 담배를 피운다. 무엇이 이 둘을 가로막는지는 <인트로덕션>은 설명하지도 않고, 이후에 있었을 부자의 대화조차 과감히 생략한다. 영화의 짙은 음영은 작중 인물들의 내면을 심화시킨다. 흐린 초점조차 인물들의 단절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들이 오랜만에 만난 한의원의 누나와 나눈 포옹은 아들이 진심으로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자, 충동이다. 영화 내내 때론 담배로, 때론 포옹으로 상징되는 충동은 아들의 진심을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버팀목의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딸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지인은 딸을 조금은 차갑게 대한다. 그런 딸을 한국에서 독일로까지 찾아온 남자친구는 그들과 대비된다. 사이가 안 좋은 아버지를 설득해서라도 여자친구와 함께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친구와 딸은 오랜 포옹을 나눈다. 부모로부터 벗어나 찰나의 도피를 나누는 그들은 서로를 지탱한다. 남자친구의 충동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는 딸은 진심으로 사랑을 느낀다. 독일 시내에 뻗은 나무들의 모습과 가로지르는 강물, 그리고 웅덩이에 비친 나무들은 그들의 운명을 조금씩 앞으로 뻗어나가게 만든다.

  세 번째 단락에서 아들은 동해안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배우를 그만둔 자신의 아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유명한 연극배우에게 설득을 부탁한다. 친구와 함께 동해안을 찾은 아들은 연극배우의 술을 받으며 배우를 포기한 이유를 털어놓는다.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여자와 키스를 나누는 것이 죄스러워 연기를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아들을 그의 어머니와 연극 배우는 이해하지 못한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 <우리 선희>에서도 등장하는 취중에 고조되는 갈등은 <인트로덕션>에서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이전과 달리 폭발하는 감정을 토해내는 것은 아들이 아닌 연극배우이고, 아들은 그 자리를 맞받아치기는커녕 회피해버린다. 이해받지 못하는 아들의 도피처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는 꿈속이다. 꿈속에서 죽기 위해 해변에 머물던 여자친구를 아들은 그녀를 해변 밖으로 인도한다. 곧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여자친구를 그저 위로만 해주는 그의 모습은 진심이다.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꿈속에서 아들은 비로소 진심을 쏟아낸다. 이내 꿈에서 깬 아들은 친구와 해변을 거닐며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아들은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든다.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며 죽음의 방향을 향하지만, 바닷물을 먹고는 웃으며 해변으로 빠져나온다. 바닷바람에 아들은 몸을 떨지만,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의 일들로부터 몸을 바다에 맡겨 정화시킨 아들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새로운 도약을 기약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위선을 내려놓은 아들은 충동을 통해 진심을 있는 힘껏 세상을 향해 표출하며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




  

  아직 <인트로덕션>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는 꼭 아침에 봤으면 한다. 새로운 도약을 이야기하는 <인트로덕션>의 주제는 깊은 음영과 파도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정화를 선사한다. 눈과 나무, 그리고 바다의 초월성을 빌려 인간의 충동과 진심을 시원하게 그려내는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은 스크린을 통해 홍상수 감독이 앞으로 펼쳐낼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자조를 벗어나 충동과 인간의 본성을 카메라에 더 가깝게 담아내고 있는 그의 영화를 꼭 스크린에서 경험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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