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리더가 되고 싶었는데, 까칠한 리더가 되어 있었다
구성원들 사이에서 '까칠한 임원'으로 낙인이 찍혔어요.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요. 저는 그저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한 것뿐인데.
대기업 임원을 코칭하던 날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분이 꺼낸 말은 예상 밖이었다. 사전 리더십 진단에서 이미 이 임원의 패턴은 드러나 있었다. '전략 실행'과 '성과 지향'은 탁월했다. 하지만 '의사소통'과 '동기부여'는 하위권이었다. 구성원들은 그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위축된다고 했다. 결과가 좋아도 칭찬은 없고, 작은 실수에도 호되게 질책하는 스타일. 어느 순간부터 피드백도 먹히지 않았고, 조직 분위기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까칠해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높은 기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어느 순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봉테일(Bong-tail)'이라는 별명이 있다.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빗댄 이름이다. 그는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까지 타협하는 법이 없다. 직접 콘티를 그리고, 원하는 연기를 배우에게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한다.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같은 테이크를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은 현장에서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그와 함께 일하기를 열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까다로움은 작품을 향한 것이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그와 함께 일한 스태프들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요구는 많지만, 모욕은 없다"는 것이다. 봉 감독 본인도 "나는 통제광(control freak)이 아니다"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해왔다. 정작 그가 집착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면이고, 배우가 아니라 감정의 밀도다. 이것이 까다로움과 까칠함의 경계다.
까다로움과 까칠함의 차이는 행동보다 맥락에서 드러난다. 까칠한 리더는 구성원이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권위와 위압감이 먼저 온다. 일을 주고도 구성원의 판단을 믿지 않아 매 단계마다 개입한다. 결과가 좋으면 당연한 것이고, 실수하면 즉각 질책이 따른다. 그 질책은 종종 업무를 넘어 사람 자체를 건드린다. 자신이 지적한대로 바꿔서 결과가 좋으면, '그것 봐, 내 말대로 하니까 얼마나 좋아!' 식으로 말한다.
까칠한 리더의 피드백 → "이런 걸 보고서라고 써왔나?"
까다로운 리더의 피드백 → "보고서 완성도를 높이려면 시나리오를 세 가지로 나눠 분석하고, 경쟁사 비교를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까다로운 리더도 중압감을 준다.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격의 없이 대한다. 디테일을 챙기되 숨막히도록 간섭하지는 않는다. 힘든 일을 맡기면서도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피드백은 따끔하지만, 방향을 담는다. 피드백을 따라서 하면 직원들도 일이 더 잘 된다고 느끼고, '본부장님 지적이 도움이 되었네'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높은 기준'이라도, 한쪽은 사람이 떠나게 만들고 다른 쪽은 사람이 남게 만든다.
까다로운 리더로 남으려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1) 감정을 일보다 먼저 내보내지 않는다. 실망스럽거나 짜증이 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 감정을 즉각 표출하면, 구성원의 기억에는 내용이 아니라 감정이 남는다. 한 템포 쉬고, 차분해진 뒤에 이야기해야 한다. 한 번 '까칠하다'는 인식이 자리잡히면 그 이후 어떤 피드백도 방어벽에 막힌다. 무너진 평판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2) 기준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알아서 잘해"라는 말은 리더를 편하게 하지만 구성원을 불안하게 만든다. 기대치가 명확하면,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구성원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이 왜 필요한지를 함께 설명할 때, 중압감은 동기부여로 바뀐다. 힘들어도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다르게 버틴다.
(3) 잘 한 것을 소리 내어 인정한다. 엄격함만 반복되면 구성원은 리더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오해를 막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인정이다. "이번 프로젝트 정말 수고했어요. 덕분에 조직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습니다." 이 한 마디가 이전의 모든 피로를 다르게 만든다.
"저는 제가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구성원들이 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걸 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코칭이 끝날 즈음, 그 임원이 회고하며 한 말이다. 그게 정확한 진단이었다. 까다로움은 일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까칠함은 타인에 대한 인내심 부족에서 나온다. 둘은 출발점이 다르다. 기준이 높은 리더는 필요하다. 조직이 탁월해지는 것은 누군가 그 수준을 포기하지 않을 때다. 다만 그 기준이 일을 향해 있어야지, 사람을 향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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