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같은 말도 누군가에게는 조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되는가
영업기획팀 막내 이지아 씨(28세, 가명)는 월요일 오전이 힘들다. 김 부장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월요일만 되면, 그는 이지아의 자리 앞에 와서 묻는다. "지난주 파트너사 미팅, 어땠어? 알려준대로 잘 했지?" 그리고 대답이 나오기도 전부터 조언이 시작된다. "처음엔 무조건 관계부터 잘 만들어야 돼. 내가 그 회사 대표와 십 년 동안 일을 해봐서 아는데…"
이지아 씨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메모하는 척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부장님, 안 궁금해요. 묻지도 않았는데, 정말 왜 이러세요! 월요일 오전부터...'
김 부장 말이 틀렸는가? 아니다. 나름 20년 경험에서 나온,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지아 씨는 왜 그 말을 흘려듣는가? 아니, 왜 오히려 하기 싫어지는가?
이런 현상을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자유가 침해당한다고 느낄 때, 그 압력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원치 않는 조언, 즉 '비요청 조언(unsolicited advice)'이 자신의 판단과 충돌할 때 사람들은 그 조언을 단순히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행동하기도 한다는 것.
* 미시간대 심리학자 잭 브렘(Jack Brehm) 교수가 처음 사용(1966)
타이밍 효과도 강력하다.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조언을 먼저 듣게 되면,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밀어내고 싶어진다. 10대, 20대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뜻으로 하는 말도 귀를 막고 안 듣는 행동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판단을 어느 정도 형성한 뒤에는 자기 생각과 다른 조언을 받아도 사람들은 훨씬 열린 태도를 보인다. 조언의 타이밍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내쉬는 피드백 과정의 핵심을 짚는 연구를 발표했다.* 피드백이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 탓을 하고,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 탓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보는 악순환의 원인은 관계적 맥락(relational context)의 결여다. 피드백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참여를 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조언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조언이 된다는 것이다.
* Nash RA and Winstone NE (2017) Responsibility-Sharing in the Giving and Receiving of Assessment Feedback. Front. Psychol. 8:1519. doi: 10.3389/fpsyg.2017.01519
여기서 중요한 변수 하나가 더 있다. 관계적 맥락이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떤 관계에서, 어떤 의도로 건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자기중심적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귀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불안 때문에 하는 말이구나." 이 해석이 자리 잡는 순간, 내용의 질은 무관해진다.
요약하면, 조언과 잔소리를 가르는 것은 말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인내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국 프로야구(KBO)에 현대적인 트레이닝 시스템과 '벌크업' 개념을 도입한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 이지풍은 수백 명의 선수를 관찰하며 오랫동안 한 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찾아가서 하는 말은 전부 잔소리다. 스스로 찾아와서 묻는 순간에만 조언이 된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해서 선수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선수들이 믿고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력을 한 가지 사례로 설명했다.
지방 원정 경기가 끝난 어느날 밤, 호텔 로비에서 이 코치는 평소 거리감이 있던 선수와 마주쳤다. 선수가 접시를 내밀었다. "코치님, 이 호텔 케이크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그는 잠깐 망설였다. 식단 관리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손을 내밀어 케익을 받아들고 먹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이 선수와 가까워질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신뢰는 무게 잡고 면담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대가 건네는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데서 쌓인다. 그렇다면, 선수가 찾아왔을 때 조언의 효과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이지풍 코치의 답은 명확했다.
조언의 성공 여부는 듣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에 달려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 선수가 대표적이다. 그가 키움 히어로즈(당시 넥센) 신인이던 2017년, 이지풍 코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었다. 조언을 들으면 바로 다음 날 그대로 해보는 반복적인 패턴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코치들은 자연스럽게 더 좋은 조언을 하고 싶어졌다. 반대 사례도 있다. 코치가 조언을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운동장에 들어서면 자기 습관대로 하는 선수. 이지풍 코치의 표현으로는 '희망이 없는' 선수다.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듣지 않은 것이 아니다. 행동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변수가 있다. 바로,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다.
오늘날 조직에서 조언을 받을 입장의 사람들 중 다수는 20대, 30대 초반이다. 이들은 '시키면 한다'는 방식으로 성장한 세대가 아니다.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움직이고, 자신이 선택했다는 감각이 있어야 실행으로 이어진다. 수직적 권위보다 수평적 신뢰에 반응하고, 일방적 전달보다 대화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특히 더 강하게 통제로 읽힌다. "나를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쉽다. 그래서, 이 세대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은 더 까다롭다. 찾아오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물었을 때 답을 해줘야 하고, 조언의 내용 이전에 신뢰 관계가 먼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지아를 향한 김 부장의 소통 노력이 실패하는 이유는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이지아 씨는 아직 김 부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할 만큼의 신뢰를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게 문제다.
우리 사회의 많은 김부장님들은 여기까지 읽기도 전에 이미 흥미가 사라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반전된다. '즉문즉설(卽問卽說)'로 대중들의 고뇌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법륜 스님의 인터뷰다.
2015년 5월 25일, SBS <힐링캠프>에서 MC 김제동이 법륜 스님에게 물었다. 질문은 '조언과 간섭의 차이'를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래는 법륜 스님의 답이다. 1분17초 영상이니 꼭 한 번 다시 보자! ([영상으로 직접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9Z9YGF5rqjQ&t=77s))
"자기가 괴로우면 간섭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들으면 좋고 안 들어도 괜찮고 — 그게 조언이다."
이어서 욕심과 원(願)의 차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바라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게 이뤄지지 않아서 괴롭다면 — 그건 욕심이다. 상대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그 자체론 나쁘지 않다. 그런데 바뀌지 않을 때 괴롭다면 — 그건 조언이 아니라 집착이다.
이 통찰이 무서운 이유가 있다. 조언과 잔소리를 구분하는 기준이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잔소리를 하는 순간 마음 속을 돌아보면 어떤가? 상대가 내 말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고, 상대가 실수할 것 같아서 걱정되고.. 그 불안과 걱정이 나를 움직여 찾아가게 만든다. 그 말의 동기는 진심 어린 걱정이지만, 동시에 집착이다. '내 말대로 해야 한다'는 집착. 상대가 듣지 않으면 괴롭다. 그 괴로움이 바로 스님이 말한 간섭의 신호다.
상대가 유익하다고 느끼는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조언을 먼저 하지 않아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때를 기다리고, 상대가 필요를 느낀 순간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비로소 건넨다. 그리고 이후는 상대의 몫이다. 들으면 좋고, 안 들어도 괜찮다. 이 마음이 될 때 — 비로소 조언이 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같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조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되는가. 심리학 연구와 현장의 경험이 가리키는 답은 네 가지로 수렴한다.
첫째, 비요청 조언(unsolicited advice)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아무리 옳아도 통제로 읽힌다. 조언자가 먼저 찾아가는 순간, 그 말은 이미 잔소리의 조건을 갖춘다.
둘째, 타이밍 효과(timing effect)는 내용보다 강하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정리하기 전에 조언이 도착하면, 정보가 아닌 압박으로 인식된다. 좋은 타이밍이란 '내가 말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됐을 때'다.
셋째,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은 진심도 막는다. 자유가 침해된다고 느낄 때 인간은 저항한다.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상대도 그만큼 강하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좋은 의도(good intent)는 갈등의 원인이다.
넷째, 관계적 맥락(relational context)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위에서 내쉬의 연구가 지적했듯, 피드백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의 준비가 필요하다. 신뢰가 없는 관계에서 건네는 조언은 일방적 선언이 되고,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 건네는 조언은 선물이 된다. 그 신뢰는 케이크를 거절하지 않는 것처럼 사소한 순간들의 누적으로 쌓인다.
결국, 조언과 잔소리를 가르는 인내심은 세 층위가 있다.
타이밍의 인내 — 상대가 먼저 물어올 때까지 찾아가지 않는 것. 관계의 인내 — 상대가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공을 들이는 것. 집착의 인내 — 내 말의 결과에 무관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김 부장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조언이나 전달 스킬이 아니다. 이지아 씨가 먼저 찾아오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월요일 오전에 찾아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지아 씨가 건네는 작은 순간들 — 어쩌면 커피 한 잔의 제안, 잠깐의 질문 — 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당신 주변에, 먼저 찾아와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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