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인도의 한 마을에 국제구호단체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주로 서방의 부유한 나라 사람들로 이뤄져 있었고, 당시 낙후되어있던 그 마을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죠. 그래서 그들은 그 지역에 얼마간 머무르며, 주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그 지역 주민들 가운데 며느리들에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계급제도와 가부장제도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며느리들의 육체적 노동이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다시 관찰했죠. 무엇을 도와줄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매일 새벽 2~3시간 물동이를 이고 강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고단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죠. 구호 단체 사람들은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관개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굳이 물을 길어 가지 않아도 집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지 물을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을을 며느리들이 구호 단체를 찾아왔습니다. "저 펌프와 수로를 없애주세요." 아니 왜? 이유는 구호 단 체 사람들의 며느리들과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며느리들이 새벽에 물을 길어 가는 시간은 그들에겐 유일한 해방과 자유의 시간이었는데, 구호 단체 사람들은 지극히 자신들의 관점에서 좋아 보이는 혁신을 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혁신에 있어서 공감이 얼마나 중요하고 쉽지 않은 일인가를 설명하는 사례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마포대교와 한강대교 생명의 다리 사례가 있죠.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다리 난간에 유명인들의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가 적힌 램프를 레일로 설치하였었는데요. 당시에 여러 매체에서 홍보하고 일반인들의 반응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려고 다리에 가기도 했었죠. 하지만, 정작 반전은 원래 목적인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거의 4배 가까이 나요. 왜냐하면 장소가 유명해지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마포대교를 더 찾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이번에도 역시 공감의 문제라고 봅니다. 정작 이 캠페인의 수혜자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까지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즐거운 설루션이 되어 버린 것이죠.
요즘 사회적 혁신이 화두가 되면서 흥미로운 것은 사회 혁신 운동을 하는 기관과 단체 그리고 기업들에서 디자인 싱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를 훌륭한 문제 해결 방법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싱킹의 핵심이 "사용자와의 공감"을 통한 문제 정의와 "고객 감동의 설루션"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혜자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보다 괘를 같이 하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에 우려로 보이는 점들은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회사들과 단체들이 위에 소개했던 것 같은 실패를 겪을 것 같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디자인 싱킹의 본질마저도 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 누구를 위한 소셜 혁신인가? (명분은 좋은데 수혜자가 빠져있다.)
소셜벤처 기업들의 창업 붐이 시작된지는 좀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직간접적으로 많은 업체와 기관들의 활동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런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기업이나 단체의 공통점은 모두들 좋은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누구에게나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로 모아집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많이 모입니다. 대표적인 몇몇 회사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봅시다. 그 회사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의도를 가지고 있고 어떤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좋은 학교와 학위, 국제기관이나 구호 단체, NGO 경험 등 화려하죠. 여기에 더하여 저명인사와 정부 기관 그리고 대기업들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죠. 그리고 수많은 활동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특징적인 것은 기업이나 기관에 대한 계몽이나 교육 활동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들이 명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하는 활동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점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좋아지는 것은 누구일까요? 마포대교의 캠페인처럼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직접적인 수혜자는 누구이며 어떤 가치를 받고 감동했을까요?
2. 여전히 공급자 사고의 사회 혁신(문제는 발견하는 것)
디자인 싱킹의 또 다른 핵심은 연구자 혹은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자신들의 가설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가설을 다른 의미로 보면, 문제 정의라고 봐도 좋습니다. 디자인 싱킹에서의 문제는 디자이너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용자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들여다보고 고객 관점에서 공감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직감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그 상황에 쳐해 있지 않은 사람은 그게 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고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인터넷이나 가설 검증식의 리서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고객 되어 보기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혹은 대부분의 사회 혁신 기업이나 기관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그들은 수혜자들의 문제를 정의하고 시작하거나 가설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문제의식은 직접 경험과 사용자 경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료 검토에 의해 생긴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제가 보기엔 공급자 중심의 혁신 방식과의 공통점으로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동안 많은 회사들이 그들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이를 고객들에게 마케팅을 통해 알리고 판매하는 혁신을 해왔는데요. 이 시작은 늘 그들의 가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곤 최대한 그들 가설의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고객들을 설득시키는 작업을 해나가죠. 이런 방식은 어찌 보면 기업에 모인 사람들이 고객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사회 혁신을 하는 기업과 기관에서도 이런 방식의 접근이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연구원들이 가설을 세우고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활동들을 합니다. 가끔은 확증 편향적 조사가 진행되고, 설사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인정하기보다는 유리한 것만을 이야기하죠. 인도 며느리들의 사례처럼 "우리는 전문가이고 우리가 보기엔 이것이 문제이니 우리가 해결해줄게"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 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3. 지속되지 않는 사회 혁신(이벤트성 혁신과 업적주의)
그동안 많은 명분을 가지고 사회 혁신의 과정에 디자인 싱킹과 디자너들을 참여가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졌죠. 낙후된 도시의 지역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넣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재교육의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었었습니다. 한 발자국 떨어진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그 지역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듣기엔 굉장히 흥미롭고 가치가 있게 느껴지는 케이스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그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 낙후된 지역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일에 대해 거주민들은 환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지역 거주민들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려는 조직이나 단체에 대한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소셜 디자이너의 방문에 대해 환영 일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리 반기지 않거나 거부하는 모습도 찾아볼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지역들을 방문했던 사회 혁신 디자인 기업들이 보여준 태도 때문인데요. 지역의 가치 혁신 디자인을 할 것이라면서 정작 사회가치 혁신 기업들이 지역 현장에는 자주 와보지 않거나, 설루션을 제안해 준다고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의 근본적인 니즈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 혹은 이미 다른 곳에서 적용했던 설루션을 그대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과시성 이벤트성 활동만 하다가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주민들과 공감되지 않은 설루션들은 그것이 아무리 비주얼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의 가치를 올려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외면을 받죠. 그래서 그동안 수많은 사회적 가치 혁신 활동이 있어왔습니다만, 오랜 시간 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주민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혁신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일하는 방법의 비전문성과 명분 주의
최근 사회 혁신을 지원하는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관심이 많은 젊은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죠. 대부분의 사회 혁신 기업들은 그들이 가진 선한 목적으로 모여 있고 주민들을 돕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욕과 열정은 그 회사들의 구성원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밝은 웃음과 긍정적인 표정이 가득하니까요. 반면 아쉬운 점도 볼 수 있습니다. 혁신 가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기존 회사들의 그것과 유사한대요. 자유로운 분위기와 열린 마음보다는 여전히 상명 하복식의 조직 논리가 앞서기도 하고, 준비가 덜되어 있거나 숙의되지 않은 자료를 발표하기도 하고 적은 경험으로 강단에 서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서 만든 자료를 무단으로 인용하는 것도 잦은 일이죠. 실력을 다지는 일보다는 사업을 만드는 일, 관계를 맺고 알리는 일에 조금 더 열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회사 운영은 디자인 싱킹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왜곡시키기도 합니다. 디자인 싱킹은 재미있는 워크숍 경험으로 인식하거나, 실체가 없는 사상누각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디자인 싱킹을 통한 사회 혁신도 결국 사업이니 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마치 신상품이 나올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처럼 처음 듣고 재미있는 사람들은 신기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죠. 사회적 혁신 기업에 모인 사람들이 필드에서 경험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역량강화 활동은 현장이 아닌 교육장이나 PC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라는 명분으로 해명한다던지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모두 따라야 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 또한 대단히 아쉬운 점입니다. 좋은 명분을 가졌으니 어느 한쪽은 배려 혹은 희생해야만 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 가치 혁신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가치 혁신의 지향점은 공동의 가치 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1> 한 여름 건널목에서 발견한 파라솔과 의자입니다. 여름에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에 서 있는 동안 강력한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설치된 파라솔과, 다리가 아프신 노인들을 위한 펼침 의자입니다. 특히 펼침 의자는 유난히 건널목 교통사고가 많은 노인들의 관찰하고 인터뷰한 한 경찰관의 아이디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노인들이 신호가 변경되기까지 서 계시는 것 불편하기 때문에 건널목 무단 횡단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죠.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다리를 쉬게 해 줄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펼침 의자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굳이 대단한 디자인의 그루나 전공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공감력과 이에 기반한 스몰 아이디어의 실행이야 말로 진정한 사회 혁신의 역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혁신 기업에서 사회적 가치(SV)와 기업 가치(EV)는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들이지만 무게 추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실행을 해야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선한 가치의 실현이라는 초 심 또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지요?
+ 디자인 싱킹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생들이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강사들도 충분한 경험과 통찰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내 생각에 좋은 일을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덕(가치 창출)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을 살펴서 하지 않는 일이 배려(가치 창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