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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May 23. 2022

내 집 앞마당이 서울 친구 원룸보다 넓다.

<6화-귀촌을 통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들>

이전 글에서는 '왜 귀촌을 하는가'에 대답했더라면 '귀촌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시간과 돈의 절약.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다. 모든 경험이 그렇듯 그저 한 인간의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시간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야말로 단 하나의 참다운 보편적인 조건이다.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시간을 소모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필수자원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를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분시키는 특성으로서 시간에 대한 충실한 관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듯하다."

-자기 경영 노트 (피터 드러커 지음)-


1. 출퇴근 시간


깅남구청역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1달간 견습생활을 했었다. 합정에 위치한 집에서 레스토랑까지 매일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하철 속 수많은 인파에 끼여 운반되다시피 오고 갔다. 그 시간 동안 영어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눈도 잘 안 떠지는 아침에 지하철의 굉음과 콩나물시루 같은 비좁음은 피곤함만 증폭시켰다. 하루에 2시간씩 주 5일. 매주 10시간, 한 달 40시간을 꼬박 허공에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곡성에서는 매일 아침, 중학생 때 구매해 철인 3종까지 출전한 10년이 다 되어가는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약 2.2km 거리를 10분간 느긋하게 페달질 해 간다. 그 시간 동안 논두렁과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고민들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농촌 특유의 순수한 공기를 마시면서 하루를 준비한다.


[분석에 따르면 서울 내부와 내·외부를 오가는 이들의 평균 출근 시간은 53분이었다. 서울 주민이 서울 내로 출근할 때는 평균 44.7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할 때는 평균 72.1분,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근할 때는 평균 65.4분이 소요됐다]

 출처 : 서울 평균 출근시간 53분… 경기도→서울은 72.1분 (연합뉴스)


논과 밭이 어우러진 출퇴근길


2. 생활시설들의 밀집


농촌 도시 특성상 모든 생활 편의시설이 한 곳에 몰려있다. 이는 공간 간의 이동시간을 10분 내로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퇴근 후 일상을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오후 5:30에 퇴근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 학원에 간다. 10분 뒤, 5:40분에 도착해 1시간가량 수업을 진행한다. 이후 500m 옆에 있는 수영장에 6:40분에 도착해서 50분가량 수영을 한다. 7:40분에 수영장을 떠나 8시에 집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날 할 일들을 진행한다.


10개의 공을 동시에 저글링 하려는 성향의 사람이기에 이 같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도시와 똑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을 때 결과물이 2~3배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인 것도 사실이다. 도시처럼 퇴근 후 수영장 가는데 30분, 피아노 학원 가는데 40분, 텃밭 가꾸러 가는데 1시간 걸리면 답이 없다. (도시처럼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동전의 뒷면이다. 좋은 시설의 피아노 학원이 있지도, 매일 저녁 수영 강습도 있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시간과 에너지'라는 가치를 투입해야만 한다. 이를 투입하지 않고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고, 어떤 결과물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동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절약한다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치이고, 교통체증에 치이면서 소비되는 에너지도 상당히 아껴준다. 이는 생산성의 복리가 돼서 10개의 공을 동시에 저글링하는 원천이 된다.

 


 가난한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돈에는 관심이 없다." 혹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부자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돈이 곧 힘이다. 가난한 것과 빈털터리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빈털터리는 일시적이지만 가난은 영원한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1. 생활비


귀촌생활에서 돈을 절약한다는 것은 생활 비용을 아끼는 것이다. 이 또한 어떤 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1년가량 곡성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이 본가여서 주말마다 KTX를 타고 올라가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났다.  곡성에서 서울까지 KTX 왕복 비용만 10만 원이고 밥 먹고 필요한 것들 구매하면서 (사람들과 만나 물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발생하는 추가 비용까지 생각하면 한 번에 최소 20만 원은 지출했다. 한 달 월급의 반을 이런 방식으로 지출하다 보니 떠나기 전까지 돈을 하나도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나도 초반에 서울에 올라가고 휴무날 항상 외식했다. 초반 통장 잔고가 빠져나가는 속도를 보고는 충격받아서 지금은 곡성을 잘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매일 아침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일하는 날에는 회사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휴무날에는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멸치 육수를 우려내 할머니가 직접 담근 간장을 풀어 만든 떡국 같은) 교통비나 치솟는 외식물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매달 10만 원씩 꼬박꼬박 지하철과 버스비를 내는 대신 자전거 타이어와 펌프만 구비해주면 된다.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반경 내에 출퇴근부터 마트, 피아노 학원까지 모든 걸 다 아우를 수 있다.  


곡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일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글 쓰고, 신문 읽고, 운동하고, 텃밭 가꾸다 보니 심심할 시간이 없다. 그냥 시간이 없다.


2. 주거


서울에 사는 친구들 집을 떠올리면 거의 모든 집이 잠만 잘 수 있는 비좁은 공간에, 햇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았다. 흙을 밟을 기회도 없었고 배달 오토바이 소리만 가득 찬 공간이었다. 동생이 노량진 고시원에 살며 재수를 준비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정확히 한 사람만 누울 수 있는 공간에 옆 방에 자는 사람의 코골이가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햇살은 필수가 아닌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만약 이 사치품을 추가하려면 5만 원이 더 든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이토록 열악한데도 피땀 흘려 번 돈의 대다수가 주거에 소비된다. 도심의 아파트도 별반 다를 것 없는 것 같다. 어느덧 10년 넘게 주택에 살면서 도심의 크고 높은 고층 아파트를 볼 때면 ‘닭장이랑 뭐가 다르지?’ 생각이 든다. ‘공장식 밀집 사육 양계장'보다 크기를 더 키웠고, 더 깨끗하고, 더 디자인적인 요소를 첨가했을 뿐 작은 땅에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한 시스템은 동일한 맥락인 것 같다.


현재 나는 군에서 운영하는 청년 셰어하우스에 지원후 선정돼 마당이 있는 주택에 지내고 있다. 곡성으로 이사 온 후 매일 아침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마당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 순간 수많은 새소리들과 피아노 소리가 한 곳에 어우러져서 다가온다. 새의 지저귐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고 개구리울음소리가 하루의 마침표를 안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잔가지를 모아 화로에 불을 피워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다. 눈앞이 벽이 아니라 탁 트인 녹색의 잔디 밭이고 건물들 사이에 비추는 조그마한 하늘이 아니라 탁 트인 하늘을 마주한다. 유현준 교수가 말하길 ‘스티브 잡스가 뉴욕 동부에 태어났더라면 왕따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어디에서 사는가가 당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님이 집을 방문하고 마당을 보시더니 바로 이 말을 하셨다. “서울 같았으면 이 마당에 뭘 세워도 세웠을 것인데"


공간적 여유가 만들어 내는 삶의 여유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삶은 운의 영역이 많이 작용했다. 아니 거의 전부 일정도로 운이 좋았다. 곡성 안에서도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청년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때마침 이주를 결심할 시점에 셰어 하우스 정책을 알게 되었고, 때마침 이전에 살던 분이 며칠 전 이사를 갔다.


‘나는 이렇게 잘난 삶을 살고 있어’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이 같이 건강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당연히 건강할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가축화’라는 단어를 통해 사회를 보면 문제의 본질이 보입니다.

‘가축’이란 현대에서는 인간이 식용으로 사육하는 돼지나 소, 닭 등을 가리키는데, 그 동물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인간에게 유익한 능력은 진화하고 그렇지 않은 능력은 점점 퇴화했습니다. ‘가축화’된 동물은 스스로 살아남을 능력이 없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실은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 유용한 능력은 교육을 받아 발달하지만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능력은 신체적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요소나 마음 상태까지 퇴화합니다. 마음 상태의 퇴화에 따라 사회나 사람의 관계성이 변한다고 가와다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양품 계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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