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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Oct 25. 2022

공부가 싫어서 특성화고를 가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19화-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이 책임지는 것.>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며 엄청난 학구열을 자랑하는 수성구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논밭에 둘러싸여 있는 구미 외곽 해평면에서 고등학교(조리특성화) 시절을 보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대조군을 가지고 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 그중에서도 특성화고를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꿈을 찾아라!’ 같은 따뜻한 이야기가 아닌 차갑고 냉정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결국 자신의 삶은 본인의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만, 선택과정에 참고해볼 만한 요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는 특성상 일반화의 오류가 가득 담겨있기에 적절히 걸러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이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판단은 당신에게 맡긴다.




원래 대구의 중심에 위치한 중구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사를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택에 살게 되면서 부모님한테 ‘왜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강아지 키우러 왔다’고 대답해주셨는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물어보니 아버지가 진실(?)을 이야기해주셨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들어봤니? 맹자 어머니가 왜 3번이나 이사를 갔을까?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공부를 하든 안 하든, 학원을 다니든 안 다니든 최소한 최선의 환경을 너희들에게 마련해주고 싶었다.”(거짓말 1도 안 보태고 공부하라는 이야기 한 번도 못 들어봤다)


중학교 예비 입학식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400번 중 1번을 배정받았고 나머지 399명은 모르는 사람이다. 외향적 성격이 아닌 데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 친구들은 같은 동네에서 크고 자라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첫 1년간은 거의 책만 읽고 (지금 돌아보면 왕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전교 5%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과학고 갈 생각은 없는지, 지금부터 준비해보면 어떨지 물어볼 정도였다. 2학년에 들어서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정말 생각 없이 놀았다. 어쩌면 내 유년 시절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공부에 흥미를 잃고 등수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원인은 흥미 상실과 게임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게임도 안 하지만 당시 게임(피파, 롤)에 푹 빠져있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게임을 했다. ‘왜 그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성장욕구의 결핍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성장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느낌 감정과 경험은 엄청난 행복감을 준다. 그러나 수성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10대에게 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통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게임 속 캐릭터를 성장시키면서 내가 성장할 때 느끼는 쾌락과 동일시한 것이다. ‘지금은 왜 게임을 안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인생이 게임보다 흥미진진한데 굳이 게임을 할 필요가 있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중학생의 나는 게임 속 캐릭터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어떤 아이템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스킬을 써서 승리를 할 것인지 고민했다면 23살의 나는 현실 속의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어디에 돈을 투자해 어떤 가치를 얻어 낼 것인지, 어떤 동료를 만날 것인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어떤 단점을 보완하고 어떤 강점을 강화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중3이 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주어진다. 드디어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특목고, 자사고 혹은 진학 안 함을 선택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크게 인문계를 진학할지, 실업계를 진학할지 나뉜다. 중3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계에서 3년 동안 이 짓거리를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왜’라는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인문계에 갔다가는 질식사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이때 떠오른 것이 요리였다.



호기심이 가득해 궁금한 게 엄청 많은 사람이다. '도대체 이 호기심은 어디서 왔을까?' 스스로 질문해봤는데, 어쩌면 중학교 때 끝난 공교육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그 호기심을 짓밟히지 않았기에 지금껏 이 아이 같은 순수한 호기심을 잘 간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본 영상이 이에 대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줬다.


https://www.youtube.com/watch?v=QYt1-Z12K2E (배운 만큼 생각하게 하는 교육 | 박주용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대한민국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취도가 떨어집니다. 저는 그 이유가 너무 빨리 에너지를 소진시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했을 때 책에서 이런 문장을 접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당시 호두파이를 만들어 선물을 했다. 새벽 4,5시부터 일어나서 (온 집안을 헤집어 놓고) 파이를 만들고 학교 선생님들한테 선물했다. 마침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후로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문장도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 그렇게 수성구를 박차고 요리를 위해 구미에 위치한 특성화고 조리과에 진학했다.


이대로 승승장구하면 너무 좋겠지만 인생은 절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자퇴를 고민했다. 사실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너무 아슬아슬해 차선책으로 선택했다. (특성화고는 한 번만 지원해야 해서 떨어지면 인문계를 가야 했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명확한 목적과 대단한 포부를 지니고 왔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함께하는 친구들을 ‘공부는 안 맞고 요리나 해볼까라는 마인드로 온 사람들’이라 업신여겼다. 결정적으로 학교 커리큘럼이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다. 조리고등학교라 하면 종자부터 시작해서 농사, 수확, 칼질, 요리 그리고 음료와의 다채로운 조화까지 배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자격증에 맞추어진 수업과정에 요리 중 맛도 보지 말라고 하니 ‘내가 학교를 잘못 왔구나, 너무 갑갑하다, 배울 게 없다, 자퇴하고 한조고를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1학년 내내 했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미슐랭 레스토랑에 찾아가 밥을 먹고 그곳을 총괄하는 셰프님께 물어봤다. “도대체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나요?” “물론 자격증 위주의 커리큘럼의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학교는 수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짜고 운영됩니다. 학사 일정이 있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하죠. 이 상황에서 자격증 커리큘럼만큼 효율적인 대안이 있을까요?”. 조리고등학교는 요리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기관이라기보다 (아마 세상에 아직 없지 않을까) ‘이런 요리가 있다’ 정도 알려주는, 즉 발만 살짝 담가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아무리 대단한 걸 가르쳐줘도 고등학생들이 얼마나 습득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요리학교에 가지 마라. 이론적으로는 요리학교에 가서 잘될  있다.  짜인 교육 과정, 경험 많은 강사진과 취업 기회가 있다. 미국 요리학교의 학위가 있다면 호텔 레스토랑 또는 적절한 연봉에 복지도 제공하는 기업체의 주방에서 완벽하게 안락한 커리어를 찾을  있다. 하지만 셰프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용적인 차원에서 따져보면 요리학교가 제공하는 시나리오는 레스토랑의 현실과 전혀 다르다. 현실 세계에서는 다섯 명이  스테이션에 달라붙어 이해심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요리학교는 커리큘럼만 거치면 진짜 셰프가   있다는 환상을 파는 사업체다. 착각해선  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공짜로 배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당신을 파먹는다. 프랑스 요리학교에서 만난 동기 서른 다섯  가운데 겨우 한두 명만이 아직도 요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의대가 그런 수준으로 취업에 실패한다면 청문회가 벌어질 것이다.

<인생의 , 모모푸쿠-데이비드 지음>


천만 다행히 주변의 수많은 도움으로 자퇴는 하지 않고 3년을 무사히(?) 다녔다. 자퇴를 하지 않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흥미 있는걸 끊임없이 찾아 나섰다. 학교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학교라는 울타리를 마음껏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실습 때는 누구보다 성실히 하면서, 6번의 방학 동안 전 세계를 다니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견습하고, 선재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웠다. (고3 때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를 빼고 서울에 가서 사찰음식을 배웠다. 담임선생님이 흔쾌히 승낙해주셨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네가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갈 학생이라면 진작에 말렸다고..’) 성인이 되고 학교라는 울타리가 가진 힘이 엄청나구나를 새삼 느꼈다. 여행을 하고 도전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안정감인지 모른다. 방학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새로운 상황으로 내던졌다.


특성화고는 졸업 전 산업체 실습을 할 수 있다. 고3 10월, 셰프들의 스승, 한식의 대모라 불리는 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견습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요리가 내 길인가?’라는 의심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시간으로 진로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에 퇴근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밥 먹는 20분에,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해소할 줄 모르고, 주변 친구들은 이제 대학 가서 첫 20살을 즐기는데 나는 왜 여기 처박혀서 이러고 있지? 라며 너무 괴로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너무 추웠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의문은 삽시간에 삶을 흔들었다. “이게 내가 정녕 살고 싶은 삶인가?”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부터 지금까지 4년을 꼬박 고민했고 드디어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를 확신했다. 요리를 싫어하기보다 요리를 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고, 주방에서 요구하는 성향과 내가 가진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경험했던 주방에서 요구한 성향이지 모든 주방은 결코 아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일했다면 아직도 요리하고 있지 않을까?')


대신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라. 셰프가 되고 싶다고  퍼센트 확신하더라도 요리학교보다 일반 대학교를 가라. 요리학교는 요리사를 배출한다. 셰프가 되고 싶다면 요리보다  넓은 세계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릴  아는 동시에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수학과 과학도 알아야 한다. 역사는 물론이다. 양서를 읽어 왔다면 도움이 된다. 공학, 화학, 미생물학, 역사, 철학, 문학 등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가라. 셰프가 되든  되든 도움이  것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배우고 세계 문화의 발전에 주의를 기울여라. 메디치 가문, 오도만 왕조, 칭기즈칸, 아즈텍 부족, 제래도 다이아몬드, 다윈주의를 공부하라.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바가바드 기타를 배우고 인생이 바뀌었다. 논리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같은 영향을 미쳤다. 토론 모임에 가입하고 피아노를 배우라. 대학 신문 기자로 일해라. 친구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라. 오스틴, 휴스턴 로스앤잴레스, 시카고, 아니면 뉴욕처럼 식문화가 발달한 생기 넘치는 도시에서 등록금이  주립대학을 골라라.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하되 주방에만 머물지 말라. 웨이터나 버스 보이로도 일해봐라. 서비스 산업의 분위기와 리듬에 대한 감을 잡을  있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레스토랑에서 일해보면, 목표를 실천하는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게 된다.

<인생의 , 모모푸쿠- 데이비드 >


요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속속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이 시점이 되니 친구들 대부분 군문제를 해결하고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이제는 피할 곳이 없다. 진짜 실전 게임이다. 이 부분에서 중학교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이 엄청나게 다르구나를 느꼈다.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소위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 많다. 발에 치이는 게 의대생이다. 중학생 때 옆자리 짝이 서울대 의대 갔고, 함께 로켓 만들려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의대 가고, 같이 자전거 타며 10대를 보낸 친구가 의대에 갔다. 벤츠 타고 의대에 다니고 있는 게 중학교 친구들이다. 반면 고등학교 친구들은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있다.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있는 특성상 좋은 식당들도 서울에 밀집되어 있다. 엄청난 월세를 주고 좁은 원룸과 옥탑방에서 먹고 자며, 주방에서 10시간이 넘는 고강도의 업무를 통해 번 돈으로 생활한다.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인지 나눌 수 없다. 내가 판단할 깜냥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의사로서의 삶이 모두 행복하고, 요리사로서의 삶이 모두 불행한 것은 절대 아니다. 모든 의사가 돈을 많이 벌고 모든 요리사가 가난하건 더더욱 아니다. 각자가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위해 재미나게 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학교 친구들처럼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요리에 열정적이라 내 모든 것을 바쳐 달려 나가지도 않는다. 주변에서 각자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나는 여기 찔렀다, 저기 찔렀다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과거의 선택을 복기해봤다. ‘만약 그때 특성화고를 가지 않고 인문계를 갔다면?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가? 과거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했지만 이게 내 실력인가? 누군가 특성화고를 가고 싶다면 나는 뭐라 해줄 것인가?’


누군가 내게 특성화를 가고 싶다고 한다면 인문계를 가라고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게 ‘기회의 차이’이다. 나조차도 셰프가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직업이고, 대단한 셰프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10대에 바라보는 세상과 20대에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상황에 노출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달라지고 보는 세상이 바뀌니 결과적으로 삶의 중요한 가치관까지 변한다.


그런데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쉬운 말로 서울대 의대생이 요리에 흥미가 있어 요식업에 뛰어들 수 있지만 조리고 졸업생이 의학을 배우고 싶어 의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낮다는 말이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건 가능한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요리를 하다가 새로운 적성을 발견해 대학을 가고 싶은데, 자신의 전공과 다르면 (거의 대부분 대학이) 특성화고 성적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방법이야 찾으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육 구조상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인문계를 진학한 학생들과 비교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친한 친구가 재수를 해서 의대에 들어갔다. 재수가 끝나고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때 왜 의대를 선택했는지 물어봤다. ‘주변에 돌아봤을 때 자기 자식에게 자신의 직업을 추천해준 부모는 의사밖에 없는 것 같아. 아빠만 봐도 그런 게 은행에 일하고 계시지만 내게 은행에 취업하라고 추천하신 적이 없거든.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그렇게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 의대를 진학하게 됐어’ 그들이 대단한 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앞으로 어떤 것을 할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가다듬고 관리하며 실낱같은 무언가를 위해 달려갔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 일화는 내 가슴속에 항상 품고 있다. “필요할 때 준비하는 게 아니라 준비해서 필요할 때 사용할 것”


판사와 검사, 직업 관료와 대학 교수처럼 보수 자체가 많다고 하긴 어렵지만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도 있다. 세상의 직업을 부모가  자식에게도 권하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으로 나누다면, 이런 직업은 부모가 자식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쪽이다. 스스로 경험해본 직업을 자신이 아끼는 자식에게 권할 정도면, 어떤 관점으로 봐도 좋은 직업일 가능성이 높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 지음>


특성화고를 홍보할  취업률을 대단히 부각한다. 요리 쪽으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암담한 부분도 존재한다. 인문계보다 취업률은 높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 취업하는가?’이다. 단순히 취업하는  중요한  아니라 어떤 회사에, 어떤 업무로, 어떤 봉급을 받으며, 얼마나 근무하고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주변과 나를 돌아봤을  ‘특성화고를 나온 덕분에 이곳에 취업할  있었습니다라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굳이 특성화고를 나오지 않아도 취업할  있는 곳이 대다수이다. 결정적으로 지금 기성세대  ‘대한민국 사회는 고졸에 대한 차별이 없습니다!’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라졌을지 언정 차별의 찌꺼기는 여전히 우리의  깊은 곳에 박혀있다. 따뜻한 말이 필요한  아니다. 차갑고 냉정한, 그리고 현실을 바라볼  있는 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수년 동안 엄청난 돈과 시간을 준비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에서 또 상당한 돈과 시간을 투입해서 취업시장에 나올 때 특성화고 학생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의 시간과 노력에 비빌만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왜 고졸과 대졸을 차별하는가?’라고 허공에 주장한다면 오히려 대졸자에 대한 차별이 아닐까? 자기 주도적으로, 내 손으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쉬울지는 모르겠다. 이 부분이 너무 답답했다. 고등학교 이후에 좋은 동료들과 나를 코칭해줄 사람을 만나는 게 참 어렵다. 내재된 잠재력이 있는 건 분명한데 이걸 잘 끌어낼 줄을 모르겠다. 지금까지 혼자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점프하면 항상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느낌이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진학한 것을, 조리과를 선택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를 한다고 해서 변하는  없고,  후회라는 단어로 무마시키기에는 너무  받은 삶이었다. 인문계를 갔다면 그저 그런, 여전히  공부해야 하고,  살아야 하고,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방황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특성화고를 갔기에 그토록 자유롭게 내가 해보고 싶은  다해봤고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너무 운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운이었다. 정신적으로 나의 선택에 한 번도 반대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는 좋은 부모를 만났고, 인생의 각 시점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이때 만났을까?’라고 생각되는 귀인들을 만났다. 또한 학교생활 동안 팬데믹을 겪지도 않았다. ‘나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이렇게 운이 좋았으니깐 당신도 특성화고등학교 가세요!’라고 하면 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인가.


이곳까지 읽은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내 대답은 ‘하고 싶은 거 해라. 다만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이 책임지는 것’ 최근에서야 이 말에 담긴 진실된 뜻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는데 정말 막중한 문장이다. 부모님의 철학이 있다. ‘하고 싶은 거 하라. 다만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운이 좋은 사람일 수도, 더 많은 지원이 가능한 부모를 만났을 수도, 더 많은 귀인들을 만날 수도 있다. 혹은 나보다 훨씬 더 운이 나쁜 사람일 수도, 지원을 해줄 수 없는 부모를 만났을 수도, 이상한 인간들만 만날 수도 있다.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그릇에 맞게 선택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인생이 아닐까?


이 글의 목적도 당신에게 아주 명쾌한 대답과 정확한 방향을 주기보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선택을 하고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아쉬움보다 선택하지 못한 후회가 더 고통스럽다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이렇게 줄을 잘라보는 용기를 내어보는 길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면, 나는 생각처럼 근사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의외로 아주 근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지독하게 운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 믿음을 실행해보지 않으면 그 믿음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과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험을 거치지 않은 신념은 ‘카드로 만든 집’ 일 수 있다. 근사해 보이지만 쉽게 허물어진다. 만약 공포에 눌려 신념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면 삶은 악순환에 빠진다. 내 논리적 구조에는 문제가 없는데 나는 내가 누군지 영원히 알 길이 없다.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동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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