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등록금을 가져가주세요, 교수님
스물다섯,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친구들은 이미 졸업을 준비하고 있을 나이에 나는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 있었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시작이었지만, 고민 끝에 선택한 지난 1년은 심리학도로서 값진 경험들로 채워졌다. 대학은 단순히 학위를 얻는 곳이 아니었다. 과거의 삶을 맞추는 공간이자 미래의 삶을 그려내는 공간이었다. 이 순간들이 휘발되기 전에 활자로서 기록해두려 한다.
2025년, 대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소식은 17년 만의 등록금 인상이었다. 현재 한 학기에 30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고 있다.유튜브와 GPT를 통해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교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심리학 교수님이자 지도교수님인 S 교수님을 통해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특히 이 강의를 20대를 시작하는 나이에 듣고 있는 동기들이 진심으로 부러울 정도였다.그러나 S 교수님께 감동한 이유는 단순히 강의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분은 한 사람으로서도,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이었다.‘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교수님에게 이토록 빠져들게 했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 되짚어보며, 삶의 정확한 시점에, 정확히 필요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나의 인복에 대한 감사를 이 글에 담고자 한다.
'좋은 교수란 무엇일까? 교수란 왜 필요할까?' 그토록 오고 싶어서 온 대학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고민한 질문이었다. 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교육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시점이라 질문은 더 깊어졌다. 1년간 학교 생활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좋은 교수란 'PPT를 띄워놓고 아무런 영혼 없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전공적 지식에 삶의 연륜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관점을 더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빠지면 ‘과연 교수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전공 지식만 전해줄 거면 GPT가 더 잘 알려줄 것이고, 자신의 관점만 늘어놓는다면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설령 충분한 지식과 관점이 뚜렷하다고 한들 이것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기술이 없다면 교육자로서 의미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걸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이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왜 이런 기준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중심에는 S 교수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타 교수님들의 수업은 좋은 점도 있었지만 ‘도대체 낭독을 여기서 왜 듣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S교수님의 수업은 실망한 적이 없다. 이 부분 스스로도 궁금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 수업을 그토록 좋아할까? S교수님만이 가지는 다른 교수님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그 관점에서 봤을 때 나온 대답이 바로 ‘전공지식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학생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S 교수님을 바라보니 '교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몇백만 원짜리의 등록금도 결코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극히 소수라는..)
S교수님의 첫인상은 ‘이런 어른도 세상에 존재하는구나’였다.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이 밥벌이를 위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일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물론 밥벌이는 숭고한 노동이다) 하지만 S교수님은 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것을 잘 해내며 오랜 시간을 들여 전문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수하게 ‘심리학’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1학년 첫 수업 시간에 “저는 아직도 심리학이 너무 재밌어요. 지금도 수십 년째 배우고 있지만 이 배움에는 끝이 없네요. 여러분들도 이 재밌는 세상이 함께 뛰어들 수 있기를 바라요”라는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에도 여러 번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때마다 마치 너무 맛있는 음식을 익었거나 감동적인 책이나 영화를 봤을 때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에 잘 간직해 두었다 가까운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학문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심리학 공부를 앞으로 하면서 여러분들만의 삶을 설명할 수 있고,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고 남한테 설명할 수 있는 콘셉트가 생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피드백 받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교류가 좀 일어나면 좋겠어요. 이런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각자에게 심리학이 삶을 살아가는 것, 잘 늙어가는 것, 잘 죽는 것, 이런 삶의 여정에서 큰 인사이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에요. 하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어떻게 계속할지, 얼마나 잘할지 사실 저도 제 앞날을 모르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요.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들. 그게 너무 소중하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S 교수님의 강의는 대부분 구두로 진행된다. PPT는 참고 자료일 뿐, 수업의 핵심이 아니다. 많은 교수들이 강의 시간에 PPT를 띄워놓고 자료를 읽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런 수업에는 흥미가 생기기 어렵다.그럴 때면, 차라리 혼자 도서관에 앉아 전공서를 읽고, 이해되지 않는 개념은 GPT에 물어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하버드나 MIT 교수의 강의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S 교수님의 수업은 전혀 달랐다. 심리학개론을 강의하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지식을 읊거나, 심리학의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뇌 구조를 설명할 때도, 단순한 기능적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이 지식이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해 주셨다.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은 이렇게 강조하셨다. “심리학을 배워서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그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가 건강하게 잘 살아야, 비로소 타인을 도울 수 있어요.” 이 강의는 백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였고,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으면, 마치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강의는 더 이상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도왔다. ‘그럴 수 있어. 너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거야.’
잘 사는 인간은 연구 결과에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이 뇌가 효율적이고 건설적이며, 자신의 행복에 잘 맞춰져 있고 이를 잘 구현하는 뇌를 가지고 있는지 100년 넘게 연구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 결과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뇌란 같은 것을 보고도 많이 느낄 수 있고, 많이 들을 수 있으며, 세밀한 부분을 구분할 수 있는 뇌입니다. 또한, 이러한 정보들을 기존의 지식과 잘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뇌를 잘 쓴다는 것은 잘 느끼는 사람을 뜻합니다. 자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주 기분이 좋아지며, 자주 경이로움을 느끼고, 우리가'awareness'라고 부르는 경외심을 느끼고, 자주 감동하고 감사하며 사랑을 느낍니다. 또한 자꾸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말과 생각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뇌가 이미 굉장히 풍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든다." 가수 나훈아 씨의 유명한 발언이다. 이 문장이 교수님을 표현하기에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S교수님을 이만큼 잘 나타내는 문장도 드문 것 같다. 이 강의를 듣고 삶의 관점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은 미치도록 좋아한다. 나 또한 지난 학기에 25학점이라는 무리한 수업을 듣고 있었음에도 S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서 3학점을 청강해서 수업을 들었다. 매 수업마다 ‘오늘은 또 어떤 세계를 보여줄까?’라는 무리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를 또 충족시켜 주셨다. 수업에서 해주신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현재의 해석하고, 미래를 더 지혜롭게 살아갈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는 이 강의만큼 또 까다로운 게 없는 것 같다. PPT는 보조 자료일 뿐 시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종종 학생들은 ‘왜 PPT에 없는 이야기를 하시지?’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특히 이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시험이이다. 모든 문제가 서술형 시험이며 수업을 듣지 않고 PPT로만 공부해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수업을 듣는다고 한들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 복기하고, 생각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강의를 자기화된 내용을 글로 써내는 훈련 없느니 최고점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수업이다.
지난 학기에 상담을 하다가 마주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나요?”라고 상담사 분이 묻자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그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결국에는 이 과정 속에서 배운 것을 본인만 가지는 사람이 아닌, 타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 지난번에 이야기한, 당신이 존경하는 그 교수님의 모습과 정확히 같네요”라고 말해주셨다. 이때 비로소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이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이미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혹은, S교수님의 모습에서 느낀 좋은 기운이 나의 이상을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그 이상을 현실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을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운이며, 감사의 이유라는 점이다.
앞으로의 삶에서 S교수님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단순한 전공 공부로만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들은 ‘심리학도’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더 건강하게,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비춰주는 등불처럼 내 안에 남아 있다.
삶의 굴곡을 만날 때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분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앞으로 여러분이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좋은 질문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동료와 함께 일하고, 좋은 이웃이 되어준다면, 또 나중에 결혼해서 배우자나 자녀와 이 생각을 나누고 공유한다면, 그 긍정적인 동기를 사회에 전파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양육한 자녀도 이런 생각을 이어받는다면, 비록 지금 여기 모인 80여 명의 사람일지라도, 각자 최소 10명씩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10명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영향은 빠르게 확산될 거예요. 결국,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퍼져나가면, 여러분이 세상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할 거예요.
이 강의가 끝났을 때,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가 아닐까요? 우리는 사회에 적응하는 동시에, 개체로서의 개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사회가 나를 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적응'과 '개성 발휘'의 균형이에요. 단순히 적응만 하면서 살려고 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적응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개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너무 개성만 강조하다 보면, 자신만 좋을 수 있겠죠? 그러니 적응도 필요합니다. 적응과 개성을 동시에 발휘하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이렇게 나로서 살아가면서 사회에 적응하고, 나아가 내가 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회와 개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사회는 개인에게, 개인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