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운 사람이 바라보니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요식업계의 한 획을 그었던 흑백요리사가 12월 16일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아직 모든 회차가 방송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가 안성재 셰프가 극찬한 ‘사찰음식‘이다.
나는 심리학과에 다니는 평범한 대학생이다.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으로 안성재 셰프의 극찬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조리고등학교를 나와 한때 셰프로서 꿈을 키웠고, 고등학교 시절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구미와 서울을 오가며 선재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웠다. 이때의 내게 남은 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안성재 셰프가 왜 극찬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여느 요리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 먹으라고 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요리 재료를 대할 것인가를 말했습니다. 나는 크게 2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사찰음식에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의 진리가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 물도 공기도 나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물과 공기, 흙의 기운으로 만들어졌으니, 그것들이 병들면 나도 아프게 된다. 모든 생명이 하나이고 저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어떤 음식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요리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선재스님]
수업은 2시간가량 진행됐다. 수업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 혹은 레시피를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었다. 절반에 달하는 시간을 태도 즉 정신적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신다. 사찰에서 이 재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왜 이 재료 이 계절에 쓰는지, 어떤 조리법과 태도로 이것을 다루고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신다. 이것이 바탕이 된 후에 스님이 시연을 해주신다. 이후 4명으로 이루어진 팀원 분들과 함께 그날 배운 음식을 만들었다. 계절마다 정말 평생 살면서 맛보지 못한 수많은 나물들과 재료들을 만났고, 그것들이 서로 만나 만들어내는 ’ 결’의 조화를 경험했다.
안성재 셰프가 심사에서 ’ 절제, 향, 맛’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극찬을 한다. 분자요리사 분을 탈락시키는 장면과 비교해서 보면 그 이유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심사 전 생사과를 한 입 베어문다. 그리고 완성된 요리를 먹어보고는 탈락을 시킨다. 오래된 테크닉, 다른 사람의 레시피를 따라한 것 등을 떠나서 가장 핵심인 ’그래서 생사과보다 맛있나?‘라는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사찰음식은 이 기준 위에서 시작한다.
사찰음식의 시작은 제철에서 시작한다. 그 시점에 먹기 가장 적합한 재료는 대체로 가장 맛있는 시점이다. 거기다 시간의 힘을 사용한다. 바로 장이다.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단번에 맛을 덧입히는 방식이 아닌 시간을 들여 깊이를 만들어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번에 이해시켜 준 것이 바로 ‘사찰김치‘였다. 보통 가정집에서 김장을 하면 그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파, 마늘처럼 강력한 향의 향신채와 젓갈류의 묵직한 냄새가 섞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찰요리에서는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신채(파, 마늘, 달래, 홍거, 부추)도 사용하지 않으니 김치에도 해당 재료들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으로 맛을 내는가?’ 싶은데 이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간장이다.
무와 다시마로 채수를 우려내고 여기에 간장으로 깊은 맛을 낸다. 김치를 만드는 동안 평소에 맡아왔던 김치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나 또한 처음 이 김치를 만들었을 때 ‘이게 무슨 맛이나 날까?‘싶었는데 완전한 오판이었다. 평소 먹던 김치가 향신채와 젓갈의 무게감으로 저음을 깔아주는 베이스라면 사찰김치는 가벼운데도 셈서한 향의 층이 나뉘는 테너에 가까웠다. 제철의 가장 맛있는 재료를 최소한의 기술로 다듬고, 시간의 힘을 빌려 본연의 맛을 극대화한다. 안성재 셰프의 지금까지 심사평을 미루어봤을 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둘째, 사찰음식은 수행자에게 깨달음에 닿도록 돕는 지혜의 음식이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기운이 깃든다. 사찰음식은 수행자들이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려 고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면 정적인 음식을 먹으면 내면이 충실해지고 반대로 동적인 음식을 먹으면 힘이 밖으로 뻗치게 되니, 자연히 채식을 권장하게 되었다. 물론 부처님이 반드시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육식도 약이 될 때가 있다. 또 적게 먹어라. 편식하지 말라. 자연의 리듬에 맞춰 먹어라. 때 아닌 때 먹지 말아라 등 음식에 관한 자세한 계율은 곧 최선의 수행을 하기 위한 방편이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선재스님]
사찰음식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맛에 대한 정의‘이다. 평소에 생각하는 맛의 정의와 완전히 다른 곳을 지향하고 또 추구한다. 사찰음식의 출발점 자체가 수행을 위한 음식이다 보니(그래서 채소임에도 향이 강한 향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 또한 사찰음식의 맛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감탄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도토리 묵 냉국’을 만들어주셨다. 스님께서 직접 담근 무짠지를 얇게 썰어 물에 찰랑찰랑 흔들어 국물을 낸다. 여기에 직접 쑨 도토리 묵을 먹기 좋게 썰어 넣고 고명으로 제철을 맞은 여름 오이와 고소한 참개를 곁들였다. 이 요리를 먹은 뒤 수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선명하다. 한 입 먹은 순간, 든 생각이 ’ 내 삶에 이런 맛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였다. 안성재 셰프가 ’ 절제’로 표현했듯이 더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고 덜어낸 맛의 정수가 그 접시에 담겨있었다.
누군가 사찰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말할 때, 오히려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사찰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에 익숙해진 혀로는 그 섬세함을 한 번에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찰음식은 ‘한 번에 감탄’이라기보다,‘조용히 감각이 열리는 경험’에 가깝다.
사찰음식이 굉장히 꽉 막힌(규율이 많은) 음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당시 스님이 수업 중 투병 중인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치료를 받고 병을 이겨내야 하기에 단백질이 필요한데 유전자 조작 콩과 소답게 큰 소의 단백질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라는 것이다. 핵심은 단순히 ‘육식이냐 채식이냐’가 아니라,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방향을 만드는지, 궁극적으로 수행을 돕는지까지 묻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선재스님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서 이야기하셨다. ”사찰음식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큰 무엇을 단박에 바꿔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기회가 된다면, 그래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면 그것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작은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런 ’ 작고 소중한 깨달음’을 심어주길, 오늘도 한 그릇 밥에 담아 정성으로 기도 올립니다 “
나 또한 이때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이 작은 씨앗을 가지고 이 사찰음식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을 잘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즐겁고 건강하고 재미난 삶이 되지 않을까? 지금은 요리를 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또 많은 사람들이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돼서 참으로 기쁘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 사찰에서 공양을 하기 전에 바치는 오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