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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04. 2024

여자친구가 생일선물로 가방을 사달라고 했다

행복,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것


여자친구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선물을 대하는 여러가지 관점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물은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 형식의 선물도 재미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 본인이 원하는 것에는 큰 괴리가 있을 수 있으니 물어보는걸 선호한다. (돈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들여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상대방이 별로 행복해하지 않으면 이것만큼 또 슬픈게 어디 있을까)


그렇게 물어본 후 얼마 뒤 답이 왔다. 가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방수가 되는 백팩인데 가격 때문에 살지 말지 고민해온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생일선물로 받을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하겠다고. 부담되는 가격이라면 자신이 반틈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소위 말하는 명품백을 사줄 여력은 없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이었다.


그 날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러갔다. 단순히 생일 선물 만이 아니라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난 시간 보내려면 결국 재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4년전, 군대 가기전에도 상하차를 했는데 그때와 감정이 너무 달라서 놀랐다. 4년전에는 그저 나한테 사용할 돈이 필요해서 일을 했다. 그때는 너무 괴로웠다. 무더운 날씨에 탁한 공기, 중력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무거운 상자들까지(정말 고양이 모래…쌀 포대..) 그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면 고통 그 자체였다. 어서 하루빨리 이 노동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은 기뻤다. 물론 무더운 날씨와 탁한 공기, 무거운 상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컨테이너 안은 무덥고, 먼지들이 날려서 숨 쉬기 힘들고, 별의별 택배 상자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 그것을 해주려면 보내야 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달았다. 동일한 업무에,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덥고, 똑같이 피곤한데도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삼남매이다. 그리고 출생률이 0.6을 달성하는 초저출생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삼남매를 키우는 건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우리 삼남매 키우는게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힘들지. 그래도 너희들 보면 행복하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자식들이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어디서 행복을 느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건 사랑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가족,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라면 힘들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


요즘 삶의 우선순위가 변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화려한 것, 거대한 것, 성공적인 것, 막대한 것 이런걸 원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일 내 주변의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 조금씩 부모님을, 특히나 아버지 즉 ‘한 집안의 가장의 어깨에 대한 무게가 이런건가?’ 기웃기웃거리고 있다. '좋은 배우자,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지?'라는 질문을 스스로한테 종종 던진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차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자신을 잘 아껴줄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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