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성'을 찾으러 갔다,
'영혼'을 찾아 나왔다.

<프랑스-때제 수도원>

by 케빈

이번 여름에 누나와 여행을 할 때였다. 누나는 내게 리옹에 있는 수도원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옛날부터 꼭 한번 수도원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기에 우리는 함께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나는 무교이고 내가 이곳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이유도 종교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해 sk 뉴스쿨 테스트를 할 때 인문학 강연을 들을 때였다. ‘감수성’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잠시 수도원이 언급되었다.


“평상시 살아가면서 시간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바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떻게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것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 바로 '수도원'이 그 대답이 될 것입니다”


평소 '감정적인 사람' 이 아닌 '감성적인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기에,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마음 작은 한편에 수도원에 가서 꼭 한번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심어졌다. 그렇게 소중히 간직하고만 있던 씨앗은 이번 여행에서 싹을 틔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시간도 너무나 빨리 흘렀고. 그렇게 나의 감수성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나의 ‘영혼’이 나의 집을 찾아왔다는 것

옛날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탐험하기 위해 처음 떠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곳의 지리를 전혀 몰랐던 이들이기에, 현지 가이드를 구해서 함께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한 지 고작 이틀째 되는 날에 가이드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어이가 없었던 유럽인들이 그에게 물어봤다. “왜 더 이상 못 가느냐? 무엇이 문제냐” 그러자 현지인의 답변은 “ 저의 육체가 너무 빨리 가, 저의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지를 못합니다"라는 것이다. 다리가 아파서, 임금이 적어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 이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


수도원에 도착할 무렵의 나도 이들처럼 나의 영혼이 나의 집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출국 직전까지 일하랴, 토익 준비하랴, 철인 3종 하랴, 여행 준비하랴 게다가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동생과 함께 여행했는데, 끝나자마자 바로 새로운 사람과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멈출 줄 모르고 달려만 갔었던 나인데, 수도원에 지내면서 스스로에게 잠시 브레이크를 걸수있었다.



내가 침묵주간을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때제에 도착하는 첫날 '일반 프로그램'과 '침묵 주간' 두 가지 다른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이곳은 매주 일요일을 기점으로 1주일 단위의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끝난다) 전자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일반적인 프로그램 (기도하기, 성경 읽고 토론하기 등)을 하며 지낸다면, 침묵 주간은 일주일간 특별한 공간에서 지내며,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수도원은 후자에 가까웠기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먹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산책하는 것. 특히 식사시간과 기도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나만의 시간인데, 이때 스스로에게 정말 많은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영화 <말하는 건축가>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등 특히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지만, 평소 잘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들을 위주로 했다. 이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를 알아가고,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의 영혼이 집을 찾아와 있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혹은 이곳에 오기 전처럼 내 영혼이 나를 따라오지 못할 때, 이 시간의 기억과 경험들을 지지대 삼아 위로를 받고 조언을 받을듯 하다.


2019.08.18

In France , Taizé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은 이 순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