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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앙코르와트의 잘못이 아닙니다

<캄보디아-앙코르와트>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진실

by 케빈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방콕에서 버스를 타 6시간 만에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했다. (이곳은 앙코르와트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기에, 가히 앙코르와트의 현관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착 이후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프랑스, 벨기에, 대만,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있었고,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 앙코르와트’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여행자들이 이미 그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놀이공원에 가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이의 심정처럼, 나는 설레는 심정을 가득 담아 그들에게 물어봤다.


“앙코르와트 어땠어?”

이 대답에 내가 기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좋았어” 혹은 “너무 좋았어”. 하지만 친구들의 입에서 나온 답변들이 “별로였어” “그냥 돌이던데?” “너무 기대했나 봐” 하나같이 부정적 반응이었고,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빛나갔다. 그래서 순간 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는지 한 친구가 얼른 “물론 진짜 웅장하고 좋았어! 그런데 우리가 기대가 너무 높았나 봐”라고 말했는데, 마침 주문한 음식들이 나와 앙코르와트 품평회도 끝이 났다


한 사람도 아니고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작심이라고 한 듯 별로라고 해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별로였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를 거야”라는 자만심을 품고 호기롭게 잠을 청했다.

앙코르와트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러 갔다. 전날 호기로운 각오와는 달리 나도 전날 만난 친구들 중 한 명이 되어 사고 있었다. 그냥 커다란 돌덩이가, 오랜 세월 이곳에 있었구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감흥이 없었다. 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도, 무엇인가 찜찜한 기분을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왔고, 지금까지 인류의 입에 두고두고 화자가 되는 곳이라면, 분명히 내가 놓친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앙코르와트를 떠올렸을 때, 이 찜찜한 기분이 들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혼자 조용히 걷고 싶어, 투어 대신 왕복 택시만 이용했다. 덕분에 가이드를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사원을 걷기도 하고, 사원 벽을 아름답게 둘러싸고 있는 조각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앙코르와트를 바라보며 책을 읽기도 했다. (마침 이곳에서 읽은 책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통해 앙코르와트에 말을 걸고,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다.

1000년전 조각했다는게, 믿기지 않을정도의 작품이였다



아직까지 색이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던 중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던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1000년의 역사를 1시간 만에 읽으려 했다.

앙코르와트 투어를 하게 되면 일출, 일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간다. 나는 일출을 보러 가는 것을 선택해, 새벽 4시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그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니 몸은 비몽사몽 한 상태에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에, 가이드는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지, 피곤 그 자체였다 (당시에도 너무 피곤해서 설명 듣다가 잠시 졸았을 정도였다.) 이런 상태에서 앙코르와트를 보니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건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이건 기둥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느껴졌다.


한 예로 1000페이지에 달하는 고서를 1시간 만에 읽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책을 ‘흝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읽었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1시간 만에 앙코르와트를 보고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앙코르와트는 1000년간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식민지배,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 그리고 오랜 시간 지속된 내전까지, 이런 참담한 역사를 아무 말 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비극을 봤고,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또 많은 걸 배운 시간이다.


겸손하고 또 겸손할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눈에 쉽사리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앙코르와트는 내게 알려주었다.


2019.11.27

In Ankor wat, Cambodia

제발 여러분, 국가 망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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