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눠주신 생활통지표를 확인해보니 우리 OO가 지각이 하루 있네요. 우리 아이는 지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 어머니, 확인결과 6월 11일. 9시 5분에 교실 들어왔네요.
교칙 상, 9시 이후 등교는 지각처리 됩니다.”
(문자) 선생님, △△이가 열이 좀 있어서 아침에 병원 들렀다 진료받고 갈게요.
(문자) 어머니, 병원 진료 후 △△. 9시 20분 무사히 교실 들어왔습니다.
오늘 출결은 지각으로 처리됩니다.
5분 늦었다고 지각처리라니, 사전 문자까지 보내 병원 진료를 알렸거늘 돌아온 대답이 지각처리란다. 대화의 주인공이 우리 담임선생님이라면 어떨까요? 매정함에 오만 정이 떨어지고, 학생 관리를 행정업무 보듯 하는 태도에 서운함이 밀려오시진 않나요? 하지만 이는 모두 실제 상황입니다. 부끄럽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도 전 지각을 잡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 5분 정도의 지각, 미리 이유를 알려온 경우라면 1교시를 넘기지만 않는다면야 인지상정으로 넘어가 주었지요. 저뿐이 아니라 옆 반 선생님도, 전 학교에서도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듯 공공연하게 봐 주고 넘어가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드물게는 철저한 원칙을 적용하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이런 분을 담임교사로 만난다면, 틀린 말은 아닌데 매사에 냉정할 것만 같고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엔 안 잡고 봐 줄게요.”
손해 볼 것도 없는데 기왕이면 내 아이 담임선생님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융통성 있게 처리해주는 인정 많은 분이길 바라는 게 학부모 마음이지요.
몇 해 전, 한 학교에서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1교시 시작 후, 10분이 넘어 들어온 학생을 선생님은 교칙대로 지각 처리하였고, 다음 날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항의하였습니다. 병원 진료를 받고 간다는 연락을 취하였고, 고작 10분 늦었을 뿐인데 평생 남을 생활기록부에 지각처리를 하느냐? 담임선생님은 교칙에 의거, 원칙대로 하였다 말씀드렸지요. 이런 담임선생님의 변하지 않는 확고한 태도에 학부모는 더욱 화가 났고, 이번엔 교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상황파악을 해 보니 절차상 교사에게 문제가 될만한 행동은 없었기에 정정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 더욱 화가 난 학부모는 그 반 아이들의 출결과 관련. 친분이 있는 다른 학부모들부터 아이들까지 두루 만나며 여기저기 정보 수집에 나섭니다. 그러다 1학기 때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이 2분 늦게 들어왔는데 담임교사가 말로만 주의 주고 지각으로는 잡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죠. 어떻게 됐을까요? 명백한 교사 잘못입니다. ‘10분 지각은 잡고, 2분은 봐줬지 않느냐?’, ‘이게 공정한 원칙 적용이냐?’ 교사도 학교도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원칙대로 교사는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건입니다. 관리자, 심지어 동료 교사 중에도 뭘 그렇게까지 깐깐하게 일을 처리해서 논란을 자초하였느냐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2분 지각한 아이 지각 안 잡는 건 우리 다 같은 상황이었으니깐요. 문제는 1분이라도 예외를 허용했을 땐, 10분에 대한 정당성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모두가 잘못되었던 관행이었음을 깨달은 거죠. 그 후 학교는 모든 교사에게 철저히 지각을 잡으라 당부했습니다. 원칙대로 하라. 안타깝게도 지각을 잡아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지각을 잡지 않았을 때는 책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원칙이 있는 거겠지요.
교사들도 이러한 인정머리 없는 원칙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형평성과 사고 예방을 위해 단 1분일지라도,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현장에는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확실한 건, ‘출결은 원칙대로 칼같이 처리해야 한다.’가 모두를 위한 거란 사실이죠. 올해 담임의 원칙은 작년 담임의 원칙 없음과 어느 순간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반 담임의 원칙이 옆 반 담임의 원칙 없음과 충돌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학부모 간의 의견교류가 활발하기에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문제점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제 현장은 원칙준수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다음 담임선생님에게 원칙이 아닌 내용을 똑같이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 담임선생님이 좋은 분이셔서, 올해 담임선생님이 너무한 분이셔서도 아닙니다. 출결은 생활통지표에 남는다는 사실만으로 학부모를 예민하게 만듭니다. 부디, 알고 보면 앞으로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절차적, 행정적 기록일 뿐이란 걸 기억해 주십시오.
그런데 혼란을 자초한 이런 사건의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개근을 강조하는 과거의 사회적 분위기죠. 우리 세대만 해도 ‘학교는 아파도 꼭 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고, 모두 그렇게 다녔습니다. 곧 죽어도 학교는 가라던 그때의 사고방식이 당연한 우리는, 학부모가 되어 이제 내 아이에게 개근을 강조합니다. 개근=성실?, 지각=불성실? 생활통지표에 기록된 출결 사항은 아이의 성실함을 가늠하는 척도라 여깁니다. 개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지각은 조퇴와 달리 학부모를 더 민감하게 합니다. 실제로 제가 만났던 한 학부모님은 9시 넘으면 지각이라는 안내를 전달받고 그날 아이를 결석시켰습니다. 어차피 생활기록부에 남을 바엔 지각보다 결석이 낫다면서요. 개근과 지각을 바꿀 만큼 지각이란 용어에 우리는 부정적 이유만을 연상시켜 왔던 거죠.
이제 교사들은 ‘열이 나고 아파도 일단 학교에 오라’가 아닌 ‘병원 진료부터 받고 오라’, ‘많이 아프면 하루 푹 집에서 쉬어라.’ 말합니다. 게다가 독감, 수족구, 최근엔 코로나까지. 단지 우리 아이 한 명의 출석 문제만으로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많아졌죠. 아침 병원 진료는 흔한 풍경입니다. 독감 유행 철이 되면 반에 4~5명 정도가 아침에 병원 진료를 받고 등교하기도 합니다. 9시 넘어 들어와 수업에 참여합니다. 병 지각을 했을 뿐입니다. 무리하게 등교하여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토하고 보건실로 간 아이는 내내 괴로워하다 연락받고 온 엄마와 뒤늦은 조퇴를 합니다. 아이를 이토록 괴롭혀가면서까지 얻은 조퇴가 그렇게 대단할까요? 병원 진료받고 좀 가라앉은 다음 와도 됩니다. (병 지각), 너무 힘들면 결석하면 됩니다. (병 결석) 조퇴기록이 있다고 이 아이의 학교생활과 미래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는 그 시간 동안 헛된 시간을 낭비하며 고통만 키웠을 뿐이죠.
요즘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개근상 또한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외체험학습과 같은 출석 인정 결석이 생겨났습니다. 학교 출석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고 있단 반증이죠. 생활기록부에 남은 지각을 보고 ‘불성실하다’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각=늦잠, 게으름... 그런 시대착오적인 억지 연관은 오직 부모의 사고 속에만 존재합니다. 이유 있는 정당한 결석, 조퇴, 지각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개근이 내 아이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등교는 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원리원칙이란 녀석의 첫 느낌은 무척이나 차갑습니다. 하지만, 겪어볼수록 그 녀석 말 들으니 모든 게 편해지네 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