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의 차별
어릴적에 우리집에는 우리 형제 또래의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내가 옛날 사람이다 보니 그 시대에는 무작정상경이라는 다시말해서 시골에서 먹고 살것이 없는 급박한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 서울에 친인척이 있으면 어떻게든 다리를 놓아 일을 주선해 생계를 해결했던 시절이었다.
우리 모친은 살아생전 사업가로서 가내 수공업을 하고 있었기에 살림은 엉망이었고 우리 4남매의 밥을 제대로 해 먹이지 못함을 미안해 하던 나머지 지인으로터 '상순이 언니'를 소개받아 우리 집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래봤자 언니의 나이는 큰 언니보다 3~4살 위일 정도였다. 그냥 같이 양육 당하는 연령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언니는 우리 집 살림을 특히 음식을 해서 우리와 함께 먹고 엄마와 아버지가 사업으로 바빠 집에 제대로 없을 시간에 함께 먹고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언니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고기를 싫어하는...
부모님께서 고기를 사와 요리를 하라 하면 언니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고기요리하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언니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의 괴로움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뿐 아니라 우리 4남매 모두가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오직 엄마와 아버지만이 고기를 좋아하시고 우리 4남매는 고기에 대한 혐오를 자연스럽게 상순언니로부터 받게 되었다.
우리 4남매는 고기를 먹지 않았고, 이에 걱정하던 엄마는 결국 우리의 단백질을 위해 두부를 공수해 요리를 해 주셨고 설 만두를 만들 때면 고기 넣은 만두를 먹지 않는 우리를 위해 고기넣은 만두와 고기를 넣지 않은 만두의 두 종류를 만들어 우리의 먹는 기쁨을 해결해 주셨다. 우리 4남매를 위한 요리 모두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고, 유독 후각자극이 예민한 나는 고기냄새를 아주 섬세히도 발견해 내곤하여 4남매의 총 사령탑이 되어 그 소식을 알려 거부하게 하였다.
그 이후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괴롭지만, 약간의 소고기에 대한 타협이 있어 회식 때 먹곤 했었다. 그것도 양념을 아주 많이 해서 냄새가 나지 않는 선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무슨 쓸데없는 이상한 소리인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게는 고기의 노린내가 아주 예민하게 작동하는 거다. 후각적 자극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발달된 것이다. 그 이후 결혼해서 울 가족은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남편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화를 냈고, 결국 아들과 남편은 일주일에 한번 삼겹살을 메뉴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시위의 결론 내기도 했다.
그로 부터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단체급식을 한다.'
나는 혈당 조절도 필요하고 음식도 조절해야 해서 하우스 가족들과 식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불편할까 싶어서다. 그런데 관리자로서 나는 최소한 가족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또한 요리의 질적인 문제도 살펴야 하니 월 급식비를 부담하고 일주일에 3회씩 반찬을 조달받고 있다.
새로 오신 주방선생님은 아주 열심이고 힘이 넘치는 적극적인 분이시다. 하우스의 가족들을 넘나 사랑하시고 모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음식으로 귀결시키는 정말 귀하고 좋은 분이시다. 그런데 나와의 컨셥이 안맞는다. 고기를 좋아하신다. 나는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진 않는다
누구나 취향이 있으니 그저 각자의 취향을 인정해 주는 것에서 각자의 존중감을 인정받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내가 영국의 뉴튼디 캠프힐 공동체에서 행복했던 것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나를 편견의 눈을 보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며 내게 적절한 음식을 제공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커밍 아웃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늘 뭔가를 덧붙여 나를 조롱했었다. '아무거나 먹지 뭘(여자가..)..', '알고 보면 다 그래 고기 들어가지 않은 것이 있어?..',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나이 들수록 단백질...', 등등
새로오신 급식선생님께 나는 분명히 말씀 드렸다. 나는 피질질 육고기는 안먹는다고.. 왜냐고 묻길래...'맛이 너무 진해요. 그래서 부담스러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5개월이 지난 시점인 오늘에도 또 묻는다. '새우는 드세요?, 생선은 드세요? 오징어는 드세요??' 나는 매우 정중하게 여러번 말씀 드렸건만 오늘도 또 물으신다..ㅠ. '저는 육고기를 먹지 않을 뿐 그래도 생선도 먹고 계란도 먹어요.'그렇게 여러번 대답해 알겠지 싶었는데 오늘도 또 묻는다.. 그래서 오늘은 화가 났다.
"저요...먹는 거 그리 까다로운 사람 아니거든요? 왜 자꾸 물어봐요? 제가 육고기만 안먹는다고 몇번 말했는데 계속 이렇게 종류별로 물어보시면서 나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거에요??? 정말 내 돈 내고 밥 얻어 먹기도 힘드네. " 이렇게 말해 버린거다.
내가 시설장이라고 나를 특별히 챙겨달라 요구한 적 없지만, 급식비를 내고 일주일에 3일 반찬을 얻어 먹는과정에서 이처럼 나의 욕구가 왜곡되는 것을 보면서 말 못하는 우리 빌리져들은 어떻게 이런 불만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온다. 주방선생님이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미안했던지 굳이 점심 메인요리를 별도로 만들어 남겨두신것 같다. 물론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음에 잘 하시면 되는 거지 내가 화를 냈다고 바로 시정하시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억지로나마 배려를 해주신 마음에 감사하며 저녁을 먹었다. 야채와 점심 메인요리 한접시..
마음 같아서는 급식비 안내고 밥도 혼자 해결하면 좋으련만.. 그것은 직무유기라 그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개별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장애인복지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서 나는 굳이 주장하려고 한다.
각자의 식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개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때때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고 싶을 텐데, 댠체라는 이름으로 보편적인 개성없는 음식으로 충족해야 하거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빌리져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시설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개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일 진데, 이렇게 개인의 특질을 이해하고 배려받는 것이 존중의 시작이 아닐까 싶은 거다.
내가 올바로 경험해야 하우스의 빌리져(장애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하고 예민하게 주장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싶어 오늘의 일상을 주저리 적어본다.
너무 맛이 진하지 않은 생선은 모두 좋아합니다. 일본 여행에서 경험한 새 맛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