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올해도 잘 살아냈어, 내년도 잘 버텨보자"

by 미오

12월 22일, “생일 축하해”라는 말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루를 살아가기보다, 살아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나 좀 제발 죽여줘.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어” 그렇다. 나는 죽을 용기가 없다. 그냥 죽고 싶을 뿐이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꿈꾸는 일이 있다. 하지만 지금 죽는다고 해도 뭐, 나쁠 건 없다.


20살이 되던 해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죽음이 두려웠고, 그래서 죽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앞에서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나가는 담당 의사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역시도 그 앞에선 내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20살의 나는 어렸다. 집으로 돌아와 죽고 싶지 않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살아 있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우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경고였다. “너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야”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압박은 오히려 나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특별해졌다. 나는 너무나도 특별해서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은 포기해야만 했다. 대학 M.T를 타의로 안 간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내가 유일할 것이다. 무언가를 포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유를 물어오는데, 나의 건강을 핑계로 삼기는 싫었다. “몸이 안 좋아서요”라고 답하면, 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구나”라고 하지 않고 “왜? 어디가 안 좋은데?”라며 더 깊이 알려고 하는 걸까. 우리는 그런 얘기까지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말이다.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지긋지긋할 뿐이다. 그 반응은 딱 3가지로 나뉜다. 첫째, 불쌍해한다. 둘째, 혐오한다. 그리고 거의 없는 셋째,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나는 세 번째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다. 그 몇 없는 사람들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사람들의 반응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다. 첫 번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나를 불쌍해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를 낮게 평가한다. 나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듯한 그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두 번째 사람들도 말 그대로 나를 혐오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더러워한다. 나와 가까이 지내면 내 병이 자신에게 옮는 줄 아는 저급한 생각을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내 사람들에게만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겉만 화려한 특별함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가물가물해졌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다 문득 ‘정말로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면,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저 우연인데 운명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그 상황을 혹은 사람을 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여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그해 여름은 내게 운명 같은 여름이었다.


그곳에서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부터 완벽했다. 쓸데없이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지금의 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오전 수업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바다와 함께 보냈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는데,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마치 “이곳에 잘 왔어”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기숙사로 돌아와 학교 안을 걸었다. 한국에서는 밤 10시만 되면 언제 들어오냐고 보채는 누군가가 있었지만, 캐나다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보채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이 지나도록 나는 걸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의 시작은 항상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나는 특별하지 않아. 남들과 같아. 나는 평범해. 하지만 소중해” 그해 여름, 잃어버린 나를 되찾았다.

앞선 이야기만 들으면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머나먼 캐나다까지 가서 혼자 있다가 온 외톨이처럼 보이겠지만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모두가 나에게 선물이 되었다. 이전에 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다. 겉모습만 보고 혹은 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상대방을 판단했다. 어쩌면 특별함 속에 갇혀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선을 그어버린 내 탓도 있을 수 있겠다. 이런 나의 성향은 첫 수업에서도 드러났다. 주변을 둘러보며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혼자서 생각했다. 누군가 한 발짝 다가오면, 나는 한 발짝 물러섰다. 또 다른 누군가 손을 내밀면, 나는 손을 뒤로 감췄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들을 끝없이 의심했다. 그저 나와 친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작은 발걸음은 비로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큰 선물로 돌아왔다. 어느 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 수업을 빠지게 되었다. 다음 날, 그들은 어제 나오지 못한 이유를 물었고 나는 아팠다고 답했다. 끝이었다. 그 누구도 “왜?”라고 더 묻지 않았다.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사람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지 말라며 안아주기만 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결국엔 깨달았다.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그들을 나 또한 닮아가고자 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모든 사람인 ‘그들’은 나를 변화시켰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조금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살아내고 있고, 여전히 나는 죽고 싶다. 언제 ‘펑’하고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인생이 지겹다. 어쩌면 ‘펑’하고 터질 그 순간을 나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터질 땐 터지더라도 후회 없이 사는 것. 내가 꿈꾸고 있는 미래는 꽤 멀다. 그 미래에 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더라도 상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이미 수없이 해봤다. 직접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누가 아나, 유병장수라는 걸 하게 될지. 지금은 그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내 곁에 있게 될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그들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다.


2020년 12월 22일, 올해도 나는 바라고 있다. 사실 축하해주기만 해도 모자란 날인데 그런 말을 하기란 참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게 될 어떤 이가 내게 찾아와 이 말을 건네주길 바란다. “올해도 잘 살아냈어. 내년도 잘 버텨보자” 그럼 난 웃으며 답할 것이다.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