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같은 사람이 되어, 해바라기 같은 삶을 살자"
언제부터인가 하루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 책상 앞에 앉아 지난 하루를 되돌아보는 나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를 주제로 삼아 글을 썼다.
단어를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날 하루가 행복했다면 '행복'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면 '시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
마땅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우연히 눈에 들어온 혹은 문득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와 관련된
지난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갔다.
지금까지의 내 글들은 사적인 공간에서만 쓰이고 읽혔다.
지금부터의 내 글들은 공적인 공간에서 쓰이고 읽힐 것이다.
새롭게 쓴 글일 수도 있고, 지난날에 쓴 글일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짧게, 어느 날은 길게, 어느 날은 적당하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설레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반딧불이 같은 사람이 되어, 해바라기 같은 삶을 살자"
"반딧불이는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이에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헬퍼봇인 클레어의 대사 중 하나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클레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 역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빛을 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빛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다.
해바라기는 왜 해바라기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서 그런 거라고 알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인 '해'만을 바라보는 꽃이 바로 해바라기다.
나는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빛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자 한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런 당신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우리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이유를 막론하고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는 그대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그대들 역시 반딧불이 같은 사람이 되어, 해바라기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