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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림 Dec 01. 2023

왜 나는 지금의 행복을 자꾸만 뒤로 미루려고 할까?

눈앞의 달콤한 행복을 유예하는 것으로 미래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5년 전에 친구랑 디즈니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평소에도 디즈니를 좋아했던지라 굉장히 흡족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기코끼리 덤보가 그려진 예쁜 엽서 한 장을 받은 것이었다. 이 엽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다이어리에 끼워 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중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예쁜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이 엽서를 액자에 담아 오늘을 추억하리라고.


그러기를 어언 5년,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지 못한 철없는 캥거루 족이었고, 엽서 또한 여전히 내 서랍 한 구석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시회를 함께 간 친구들과 만나 우연히 그 엽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덤보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그제야 내 엽서의 존재를 상기했다.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그 엽서 내 집 마련하고 사용하려 했는데 아직도 서랍에 박혀있다고 말이다.


항상 미루는 것이 습관이었다. 대외활동 때문에,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험준비 때문에, 취업준비 때문에 사소한 행복들은 중요한 일정에 밀려 늘 뒷전에 있었다.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면 훗날 더 큰 행복이 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마시멜로우같이 퐁신한 행복이 눈앞에 있더라도 기약 없이 뒤로 미루는 습관 같은 게 생다.


마시멜로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초등학생학급문고에 꽂혀있던 '마시멜로우 이야기'책이다. 지금 마시멜로 먹기를 참으면 다음에 두 개를 준다는 실험이 있었는데, 이때 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은 14년이 지난 후에도 학업성적 좋고 친구관계 원만했다는 내용이었다. 미래의 어떤 이익을 위해 현재의 유혹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로, 그 당시에는 굉장히 유익하게 읽었다. 래서 난 자연스럽게 눈앞의 달콤한 행복을 미루면 당연히 더 큰 행복이 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행복하기를 참는다고 해서 더 큰 행복은 오지 않았다. 사실 마시멜로우 이야기는 장의 행복을 미루는걸 권하는 책이 아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대신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나중으로 미뤄봤자 그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그저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으로 더 큰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종종 잊는 바람에,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현재에는 잘 집중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큰 아쉬움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소소한 행복조차 놓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별것 아닌 거에도 충분히 행복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는 길에서 산책하는 흰 강아지를 보면 행복을 느끼고, 누구는 카페에서 우연히 먹은 새로운 디저트에 행복을 느끼고, 누구는 추운 겨울 따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이불에 폭 싸여 행복을 느낀다. 항상 완벽하게 행복하려고 강박에 싸일 필요 없다. 작은 행복이 흰 종이 위 점처럼 드문드문 찍혀있더라도, 그 점들도 멀리서 보면 선처럼 생겼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매일을 행복한 순간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인 것이다.



친구와의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가 눈에 들어왔다. 수초 고민 끝에 다이소에서 액자를 사기로 했다. 작은 행복일지라도 기약없는 미래로 미룰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서랍에서 코끼리엽서를 꺼내 다이소에서 아주 값싸게 산 액자에 끼웠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결과까지 만드는 데에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몇 년을 미뤄온 작은 행복을 겨우 반나절만에 이루고 나서야 나는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미래의 불확실한 것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말 것.

지금의 행복을 미루기만 하면 더 큰 행복이 될 거라는 가짜해결책에 속지 말 것.

그리고, 매 순간을 작은 행복으로 채우려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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