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심은 데 꼰대 난다
개 같은 서른 하나 _ 일
우리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다. 이직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후배를 맞이하고 다섯 달이 지났고, 난 지독한 꼰대가 돼가고 있다. 누구보다 혹독한 초년생 시절을 겪었다고 자부하기에 착한 선배가 되고 싶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편하게 질문하고 싶은 선배, 조언에 감정을 담지 않는 선배, 예의 운운하지 않는 선배.
지나고 보니 혹독했다. 첫 직장이라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엄마는 퇴근할 때마다 반송장이 돼 있는 날 위해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엄마 또래 사회인들은 모두 내게 참으라 했다. 원래 사회생활은 힘든 법이라고.
우연히 같은 건물에서 일하게 된 선생님이 격려 차 우리 회사를 방문했을 때, 내가 잘하고 있냐 묻자 그들은 “열심히는 해요”라고 답했다. 회사에 있는 커피 기계와 얼음통을 닦는 나의 부지런함을 향한 칭찬이 계속 그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걸 후배가 들어와서 알았다.
또래 언론인들을 만나러 갈 때면 ‘미팅하러 가냐’ 물었고, 치마 입고 출근하면 ‘데이트하냐’ 물었다. 퇴사하던 날 선물을 건네고 내가 들은 첫마디는 ‘얼마냐’였다.
나와 후배가 나온 자리에 새로 온 이들이 내게 “최장기간 일한 선배죠”라며 조언을 구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올 정도니,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좋은 선배가 되자고.
그런데 오늘도 난 별로였다. 감정만은 담지 말자 다짐했건만 두 눈을 질끈 감다 못해 목소리가 커졌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늘어나고, 한번 말할 걸 두세 번 더 말하게 된다. 큰 소리로 말한다고 더 잘 알아듣는 게 아닐 텐데 그래 버렸다. 인정하자, 난 감정적이고 부족한 사람이다.
내 일은 많고 챙겨야 할 이가 느니 집중이 안 된다. 기사 쓰는 속도까지 느려지니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집에 오는 길에 반성하고 다음 날 또 눈을 질끈 감으며, 미워하던 선배를 떠올린다.
후배를 보면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취업 후 근 1년간의 기록이 전부 속상함이었다. ‘힘들다. 지친다. 받아낼 그릇이 작다. 실력이 부족하다. 내가 또라이고 싶다. 몇 시간 뒤에 출근인데 집에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한 번에 통과할 순 없을까. 지우고 싶은 날’ 등. 잘못해서 혼나고 혼나니 실수하고 실수해서 혼나고 기죽고 반복의 반복이었다.
만년 막내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내가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 터득한 것들을 하나씩 알려줘야 하는데 빈약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목소리가 커지는 걸까.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하던 위치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할 자리로 왔는데 실력 없이 연차만 쌓이는 건 아닌가 겁이 난다. 내 연차에 할 수 있는 것들을 꼭꼭 씹어 나이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