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서른 하나
확실히 프리랜서로 일은 못 하겠다. 하루의 여유시간이 주어지면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 계획은 세우지만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다. 한 번은 글을 마감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출근할 때와 같이 7시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오전 필라테스를 갔다가 느지막한 점심을 즐기며 카페에서 글을 쓸 계획이었다.
현실은? 필라테스 예약시간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달려갔다. 한 시간가량 필라테스를 하고 나니 녹초가 돼,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거실에 뭉그적거리며 TV를 봤다. 글은 언제 썼냐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위기감에 봉착해 집 근처 카페를 갔다. 프리랜서로 글 쓰는 게 꿈이었건만 당분간 꿈으로 남겨둬야겠다.
부지런한 줄 알았지만, 난 사실 게으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가는 엄마 아빠와 한집에 살아서 부지런한 척 살아왔다. 생각해보면 집 밖에 나가면 줄곧 게을렀다. 친구와 외국 여행 가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부산떠는 친구와 달리 난 조식을 먹기 위해 겨우 눈을 뜬다.
하지만 게으른 티가 나지 않았던 건 추진력 덕분이었다. 결정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타입으로 ‘도전정신이 강하다’, ‘추진력이 높다’는 평을 들어왔다. 아마 내게 연락하면 내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친구들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도전정신이 내 게으름을 이긴 셈이다
‘우선 질러보자, 해결은 내일의 내가 하겠지’ 정신으로 살아왔다. 계획과 다른 준비과정에 ‘내가 이걸 왜 맡았지’ 백만 번 후회해도 결국 해내고 나면 뿌듯했다. 올해 일 외에 저지른 대부분 작업이 그러했다.
외부에서 글 청탁이 들어오면 내가 적합한 사람인가 고민하기 전에, 내가 왜 적합한지 이유를 적어 상사에게 허락받았다. 업무 외 일이라 퇴근 후 혹은 주말에 글을 써야 했기에 2주 정도 고됐다. 마감기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원래 올리던 매체가 아닌 곳에 실린다는 부담감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감은 지켰고, 통장에 찍혀있는 용돈 벌이와 더불어 내 이름과 함께 받아든 결과물은 뿌듯함만을 남겼다.
올해는 토론회를 두 번 정도 참여했다. 토론자들의 발언만 정리해봤지 토론자로 나선 건 처음이라 여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난 상사에게 내가 토론회에 왜 나가야 하는지를 정리했고, 벌벌 떨면서 나갔다.
다행히 첫 번째 토론회는 취재진도 유튜브 생중계도 없었다. 15분 발언으로 밤새 정리해간 토론문이 조금 허무하게 사라지던 참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쓴 반 차가 아까워지려던 찰나, 사회자는 “오늘 토론회에는 자주 참석 안하시던 분들이 오셔서인지 성실하게 준비를 많이 해오셨네요. 깊은 내용을 많이 나눈 것 같아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토론자 제안을 승낙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제안은 지난 토론회에서 처음 만난 이가 제안한 토론회였다. 잦은 토론회 참석에 회사 눈치가 보였지만, 글만 쓰다 보니 말하기 기술이 도태된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한몫했다. 망신을 당하든 욕을 먹든, 계속 출연하다 보면 늘겠지 싶었다. 발제문을 토론회 당일 오전에 받고, 초조해하며 내가 취재해온 내용으로 토론문을 채워 갔다.
카메라가 앞에 있어 나 홀로 손에 땀을 쥐는 토론회가 끝이 나고서야 출연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은 계속해서 준비해간 토론문만 보고, ‘디지털’이란 발음이 자꾸 뭉개졌지만, 나름 선방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루한 일상에 유쾌한 변주를 준 것 같아 행복했다.
#314 도전
딱 한 사람 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딱 한 사람은 챔피언. 그대도 나도 챔피언이 아니다. 도전하고 싶을 때 도전할 수 있다. 어쩌면 도전은 우리 생에 주어진 유일한 특권인지도 모른다. 그 특별한 권리를 그늘에 묵혀둘 이유는 없다. 정철, 권영묵 『사람사전』 (허밍버드,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