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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Jun 18. 2019

그러니까 왜 너네 회사여야 하냐면

싱가포르 회사와 리쿠르터 전화 면접

PART 1  |  G회사를 만나게 된 디자인 토크

인연은 우연을 가장하고



싱가포르의 싱자도 제대로 모를 지난 2월 사전 답사(?) 겸 여행으로 런던에서 날아왔던 그 날, 내가 도착하자마자 배웅하러 온 남자친구가 사용한 게 바로 A회사의 앱이었다. 당시엔 비몽사몽 간에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에 피식 웃었더니, 그런 나를 지긋하게 쳐다보며 동남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를 너가 코웃음치고 있는 꼴이라며 회사의 투자상황과 기타 등등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궁시렁댔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그들은 유니콘이었다. 


유니콘들은 지금껏 늘 내 인생과 별 상관없이 스쳐지나갔었다. 성공이라는 기준이 큰 회사나 연봉이 아니었던 내게 큰 회사는 말 그대로 '규모가 큰' 회사일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대기업 취업이 꿈이었다면 평생 신세한탄했을거다. 한국의 거대 회사들을 클라이언트로 일부 모시고 일을 하거나, 그 곳에서 뛰쳐나온 소수의 동료, 선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도 듣다보면 급기야 그 곳에서 일하는 그들이 안타까워지는(?) 이상한 현상까지 있곤 했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극히 일부만 본 것이었지만 그게 내 삶에 그들에 대한 편견을 심는 데는 크게 한 몫 했다. 


하여간 싱가포르로 모든 짐을 다 옮겨온 4월 말 즈음에도 내게 A회사는 모두가 잘 아는 큰 회사일뿐 그들이 새로운 직원들을 영입하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앱을 사용하면서 이 부분은 UX가 참 똑똑하게 잘 지어졌네, 이런 부분이 아쉽네하며, 여느 디자이너처럼 혼자 CEO질하기만 했지, 내 인생과 엮을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자기계발 욕구가 치솟은 어느 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했다. 싱가포르의 디자인 컨퍼런스나 디자인 토크 등을 검색한 후, 한국인 프리젠터가 초청된 디자인토크에 가게 된 것. 하필 그 날 참 피곤했는데도 구두까지 챙겨신고 꾿꾿히 센트럴까지 갔다. 지하철과 연결된 으리으리한 건물의 (무려) 35층에서 열린다니. 분명 이벤트 설명을 읽을 때는 특정 디자인 학교에서 주최된 이벤트이며 장소만 A회사를 빌려서 열린 거라며 쓰여있었는데, 가보니 A회사의 리쿠르터라던가 직원들이 해당 프리젠터와 매우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때만 해도 그냥 지인들이 있어서 이 곳에 초청을 한 건가 보다 했다.


흥미로운 디자인 토크가 마무리되고 (다들 그러길래 나도)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데 자꾸 나한테 중국어로 말을 건다. 하하 멋쩍게 웃으며 당황해하다 설마 한국분은 알아보겠지 싶어 한국인 프리젠터 분께 갔더니 영어로 말을 거셨다. 영어로 답하다 대뜸 아, 저 한국인이라며 인사하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왠지 한 쪽 눈에서 뜨거운 물같은 것이 흐를 것 같았지만, 도착 2주 만에 현지인화되는 좋은 현상이라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급히 대화 주제를 돌렸다. 여기서 일을 하려고 이제 막 구직중이라고 하니 프리젠터 분이 이번에 A회사가 디자이너들도 모집하는데 한 번 가서 저들과 얘기를 해보라며 격려한다.


'오호호, 그럴까요'하며 뒷걸음질치다 (극한) 용기를 내어 리쿠르터에게 다가갔다. 이벤트 중에서는 부끄러워 찌그러져 있었기에 구지 그 자리에서 갑자기 어필하는 건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았지만 이 꽉 깨물고 짧게 나를 소개했다. 그는 내게 탁자에 놓인 자기 명함을 건네어 주곤, 작은 배너에 찍힌 QR코드를 입력해서 이벤트 후기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란다. 


역시 목표는 설문조사였나 싶었지만 초긍정파워로 당장 해드리겠다며 얼른 QR코드를 입력했다. 안된다. '어, 이상하네'하다가 결국 d5IEJejrQER 따위의 윈도우 오류 코드같은 웹주소 전체를 찍어 들어가봤다. 안된다. 보니 영어 한 자가 잘못 되어있다. 기필코 10분 걸려 겨우 들어간 웹페이지에서 설문조사를 완료했다. 나 외에는 다들 귀찮다며 포기하는 분위기였는데, 설문조사 마지막에 A회사의 구직 기회에 관심이 있으면 메일 주소를 남기라는 문항을 그들이 못봤기 때문이란 건 비밀. 


다음 날 즈음, 나는 커버레터에 쓰는 글을 메일 내용에 붙여놓고 온라인 포트폴리오 주소와 CV(이력서)를 첨부해서 리쿠르터 명함에 쓰인 메일주소로 인사를 남겼다. 예상 외로 그가 매우 친절하게 자신이 A회사 디자인 리드들한테 메일을 포워드 시켜놨다며, 그들이 검토한 후 내게 관심이 있으면 연락이 갈거란다. 그런데 보통 2-3주 정도 넉넉히 그들에게 시간을 준단다. 2-3주라니, 그 여유로운 시간동안 과연 바쁜 그들이 메일을 확인이나 할지 사뭇 궁금해졌다. 




PART 2  |  수차레 망했던 리쿠르터 전화면접이 내게 준 교훈

"왜 싱가포르로 오고 싶은 거니?"


그 즈음 A회사 외에도 약 2-3명의 리쿠르터로부터 컨텍이 있어서 여러 차례 통화를 했었다. 매우 여유롭고 별 생각없이 제대로 망치고서야 리쿠르터 혹은 헤드헌터들의 역할은 인재(?)를 찾아 (제정신인지 확인하고) 그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첫번째 거름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왜 싱가포르로 왔냐'는 그들의 심각한 질문을 노브레이너로 여기고 매우 쿨하게 대답했던 게 그 이후 연락이 끊기는 큰 요소였던 것. "후훗, 아, 그게 조금 재밌는 질문인데 뭐랄까 남자친구가 여기로 이직하게 되면서 나도 옮기기로 결정한거지. 우리 나라랑도 가깝고 말이야."라는 생각 없는 내 대답에, 마치 영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매우 긍정적으로 '그랬구나!' 답변을 하곤 연락이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쥐구멍에 숨고 싶게 만드는 저급한 저 대답을 진지한 모드로 고쳐잡은 뒤에서야 리쿠르터를 통한 회사 대면 면접이 한 차례 이루어졌다. 


"아, 그러니까 너도 알다시피 싱가포르가 테크놀로지의 성지이고 동남아가 경제적인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잖아.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하기를 서슴치않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항상 인상적이었고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를 이 곳으로 오게 만들었어. 물론 내 고국이랑도 가까워서 가족과 관계를 유지하기에도 좋고 말이지." 


적어도 그들에게는 국가를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고, 늘 생각은 했지만 말로 뱉어본 적은 없었던 나의 중요한 동기 요소가 그들의 귀에 꽂히자 그들은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은 후 어느 정도 리쿠르터 통화 내 주요한 질문들을 익혔다 싶을 즈음, A회사에서 또 다른 리쿠르터로부터 메일이 왔다. 


'안녕, 흐눗. 나는 A회사의 탤런트 애퀴지션(Talent Acquisition) 팀이야. 너가 지난 00 이벤트를 통해 제출했던 프러덕트 디자인 지원서를 잘 받았고, 이렇게 소통하게 되어 기쁘다!

지금 구인 중인 기회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짧게 통화를 다음 주중에 했으면 해. 나는 탤런트 애퀴지션 관점에서 너를 꼬옥 더 알고 싶거든! 그리고 내가 이후의 인터뷰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줄게.

그러니까 이번 주나 다음 주 중에 언제가 괜찮을지 알려주면 내가 전화할게. 답변 기다릴게.
고마워 안녕!'


벌렁이는 가슴으로 내일과 모레 몇 시에 가능하다며 답장을 보냈고, 역시나 바쁜 그녀는 그 두 개의 시간을 모두 홀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후 정확한 시간이 정해지고서도 그녀는 여러 번의 시간 변경을 요청했지만 굉장히 상냥하고 정중한 메일덕분에 마음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 그녀의 이름만 보고서 한국인 남자분이라고 오해를 했었는데, 나중에 통화를 하고서야 매우 예쁘장한 목소리를 가진 싱가포리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리쿠르터들과는 달리 구글 행아웃 링크를 보내어 통화를 요청했고, 그런 방식은 인터뷰 기간 이후 여러 차례 그녀와 연락을 취해야하는 모든 상황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PART 2  |  그들이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물어봤던 질문

그러니까 왜 A회사여야 하냐구


그녀와의 첫 통화에서 그녀의 상냥한 발음은 정확하고 쉬웠으며, 이전의 다른 리쿠르터들이 했던 질문들과 비슷한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너에 대해서 좀 설명해줄래?'

'너가 테크 필드에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왜?

'네 경력을 보니까 한국에서 런던으로, 그리고 이제 싱가포르로 오려고 하는 구나, 보니까 런던 경력이 약 1년 정도네. 1년을 조금 넘는가봐?' 

'음, 그러면 너 지금 활발하게 싱가포르에서 구직활동 중이겠다. 인터뷰도 보고있고?'

'그렇구나, 그러면 왜 특별히 A회사야? 우리 회사가 특별히 너에게 매력적인 부분이 뭔데?'

'너 얼마동안 여기에 머물 수 있어?'

'너의 커리어 골이 뭐야?' 

'어떤 롤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 그러니까 너가 이 롤에 지원하기 전에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들이 뭐였어?'

'너 국적이 한국인이니? 결혼했니?'

'가장 최근의 연봉을 좀 얘기해줄래?'

'특별히 우리에 대해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 


3-4번 가량 다른 리쿠르터들이랑 연습을 했기에 바로 바로 잘 대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상당한 부분에서 나는 '어-', '그러니까', 등을 많이 번복하면서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묻지 않은 것들까지도 미리 포함해서 아주 길-게 설명했고 문장의 마무리를 잘 짓지 못해 '허허허' 하고 끝내곤 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 부분은 꽤나 좋지 못한 습관이고, 나중에 녹음본을 들으면서도 부들부들 떨며 삭제를 누르고 싶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단점이었다. 


특별히 그녀의 질문 중에 특이했던 부분은, 끊임없이 '왜 우리 회사여야만 하냐'고 재차 질문했던 것. 나는 충분히 설명을 한 것 같았는데 그녀는 그러니까 왜 A회사인건지를 다시 물어봤다. 그리고 이 포인트는 모든 인터뷰에서 적용되었다. 심사관으로 등장했던 디자인 리드들이라던가 모두가 내게 동일한 질문을 정교하게 여러 차례 물어봤다. 한 번 묻고 넘어가면 크게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 "왜 우리여야만 하냐"라는 질문을 숫차례 받고나니 A회사의 구인 과정에서 제일 핵심적인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그 회사여야만 하는가. 

당신은 그 회사를 왜 지원했는가.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야 자신의 회사의 비전와 비즈니스 상황을 잘 이해하고 그에 부합하는 인재를 채용하고 싶어서 물은 거 겠지만 이 질문은 계속 내 마음 속에 다른 의미로 맴돌며 꾸준히 내게 깊은 의미를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진짜 이 회사를 도대체 왜 지원했을까. 나는 왜 지금 이곳에 있을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목표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나는 생각하고 있는가. 숱한 질문들이 머릿 속에서 부유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내가 늘 하던 말대로 '별 생각없이' '될대로 되라며' 했던 구직과정들이 한편으로는 심적으로 편안하도록 돕긴 했지만 진득하고 깊은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를 주진 못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질문이 살포시 내 마음에 앉아서 진중한 그 무게로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느즈막하게서야 축적해 나가기 시작한 삶에 대한 깊은 고찰들이, 실제 삶을 이루어가는 내 행동들과 잘 일치되어지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생각했던 가치관들이 내 선택들과 함께 잘 발휘되도록 이끌어가고 있고 있느냐는 말이다. 


참으로 우습게도 그들은 왜 우리와 함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뿐인데 나는 전화를 끊고서 안드로메다까지 나아가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너무 나를 채찍질하는 방향으로만 내던지듯 달려왔다. 이제는 정말 '생각'하면서 걸어갈 시점이 오지 않았는가. 하릴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숱한 생각에 빠져갔다.


그리고 며칠 후, 이 고민은 놀랍게도 첫 면접의 디자인 리드가 내게 다시 재조명하며 질문했던 제일 중요한 답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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