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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죽었다!’고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영화 리뷰] 스탈린이 죽었다!

by 랩기표 labkypy

독재자의 이름을 딴 영화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회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모스크바 라디오 클래식 실황 중계를 하던 방송 책임자는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정확히 17분 뒤에 스탈린에게 전화를 걸어라는 메세지가 남겨진다. 그의 부하와 놀란 가슴으로 허둥지둥하던 사이에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약속한 시간은 흘렀고, 수화기 넘어 건너온 스탈린의 음성은 간단하게 명령했다.

"지금 연주 녹음본을 가져오시오"

덧붙일 말 없이 단지 이 한 마디였다. 자신의 권력처럼 달콤한 음악을 영원토록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 졌나 보다. 어쨌든 그 간단한 말 한 마디로 소란이 일어났다. 그 연주는 생방송을 위한 것일 뿐, 녹음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방송 책임자는 전화가 끊기는 동시에 막을 내린 연주회장으로 뛰어 들어가 다시 앉으라고 소리친다. 자리를 털고 늦은 귀가를 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위대한 동지께서 원하는 바를 목청껏 설명하며 흩어진 시간의 조작을 다시 맞추려 노력하지만 울타리를 넘은 양떼처럼 쉽지 않다. 모두들 제발 착석해주세요 부탁하다가 결국 명령조로 바뀐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거기 이층! 자리에 앉으라고!"

억지는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세 가지 문제가 발생된다. 연주의 메인인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가족을 처형한 독재자를 위해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무심하게 떠나버린 관객의 빈 자리로 인해 울림 현상이 발생해 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방화 통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린 지휘자까지 첩첩산중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관객 들은 필시 스크린에 비치는 심각한 표정 위로 킥킥거리거나 깔깔 웃었을 것이다.

겨우 연주는 다시 진행되었고 늦었지만 녹음한 LP를 위대한 동지 스탈린께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포장된 LP 속에는 가족 잃은 피아니스트의 울분의 편지 한 통 또한 동봉된다. 음악을 켜고 바닥에 떨어진 그 편지를 읽으며 어이없는지 웃더니 갑자기 컥컥거리다 쓰러진 스탈린이...죽었다! 이후부터는 동지 들의 피 튀기는 권력 다툼이 이어진다.


스탈린을 위한 스탈린의 의한 스탈린의 연주
스탈린이 죽었다!... 그러니 일단 의사 보다는 위원회 소집부터!


이 영화는 첫 에피소드로 모든 주제를 담았다고 생각했다.

암울한 시대에도 가슴을 울리는 예술은 죽지 않고 허공을 맴돌며 대중의 가슴을 위로해주었고, 사회주의 독재자를 위해서 피아니스트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간 것은 복수나 대의명분이 아닌 그저 방송국 담당자가 제시한 비용의 두 배를 부르며 성사된 경제의 원리였다. 그 뻘 짓을 위해 아무 이유 없이 동원된(또는 희생된) 사람들은 거리에서 억지로 데려다 앉힌 모차르트의 '모'짜도 모르는, 권력과 욕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저 내일 입을 옷을 뜨개질하는 가난한 인민들이었다. 갑자기 아파트로 들이닥친 경찰을 피해 도망가려던 지휘자가 무작정 끌려 와 잠옷 차림으로 지휘하는 모습은, 세상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가게 된 것일 뿐 눈 감고 이 흐름에 몸을 맡기면 어떻게라도 되겠지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자의든 타의든 독재 권력 아래 일하는 사람은 우스운 광대로 변했다.

이러한 코믹으로 시작된 영화는 말했다. 웃긴 상황을 보고 웃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며 그것을 실현케 하는 것은 독재다. 그리고 이 코미디 같은 현실은 역사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우리는 관객으로서 그것을 바라보고 웃고 힐난했지만, 어쩌면 우리도 그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대 위 희극인으로 살아야 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그 날을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블랙리스트니 사찰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도 우리에겐 잠재적인 위험으로 분류되어 있다. 독점하는 권력은 필수적으로 희극과 고통을 동반한다. 웃기지 않은 상황을 두고 웃는 것과 웃기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어색한 연주회장 모습처럼 정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열망했던 삶은 그저 내일 입을 옷이나 뜨며 고이 잠든 아이 얼굴에 입 맞추는 것이 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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