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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리어스 맨

세상은 거대한 농담

by 랩기표 labk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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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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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블랙코미디다. ‘세상살이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마찬가지다. 세상은 아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고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분석하고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황당하게 풀어낸 영화다. 유대인 가족 교수 아빠와 성인식을 앞둔 철없는 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들 앞에 예상치 못한 불행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아빠는 이혼과 실직 위기에 처하고 아들은 대마초에 빠져 있다. 인생, 철학, 종교, 과학, 믿음, 허무 등과 같은 단어들이 스쳐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물리학 교수 아버지를 통해서 들여다보자.





세상 진지한 물리학 교수에게 찾아온 불행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교수가 교단에 서있다. 큰 뿔테 안경에 키는 170센티 정도다. 얼굴에 웃음기는 없고 아주 진지하다. 자신과 비슷한 성인 스무 명은 넘게 붙여야만 가득 찰 것 같은 칠판에 남김없이 분필 가루를 묻히고 나서 “이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증명입니다”라며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한다. 학생을 향해 뒤돌아보는 그에게는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진지하게 세상을 대하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갑자기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그의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영어가 서툰 한국 학생은 학점에 불만을 품고 따져 들고, 그 부모는 명예훼손으로 소송하겠다고 교수를 협박한다. 사냥을 즐기며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웃은 제멋대로 마당의 경계를 그어서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 종신 교수직 심사를 앞두고 있는 그로써는 곧 잘 될 일만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더구나 학점이 불만이던 학생은 그의 책상에 뇌물을 몰래 두고 떠났고 그 사실이 누군가의 제보로 종신 교수 심사관에게 흘러가게 되면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뽑힐 것처럼 불안해진다.







답을 묻다

‘신이시여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따져 묻고 싶은 그는 랍비를 찾아간다. 랍비는 유대교 종교 지도자로서 유대인 공동체에서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는 주변인들의 제안으로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가게 되지만 그들로부터 명쾌한 대답은 듣지 못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세상이 바뀐다”는 등 자기 계발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만 늘어놓는다. 몇 명의 랍비들을 거쳐 어렵게 겨우 만난 최고층의 랍비는 아무 일도 없으면서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는 당황했지만 비서가 “생각하시느라 바쁘십니다”라고 하는 말에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친구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고 부부관계는 다시 좋아진다. 학교에서는 종신 교수 심사가 무사히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달한다. 그는 다시 밝은 미래를 꿈꾸며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병원으로 와주셔야겠습니다.”라고 주치의가 말한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고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는 뭔가 불안안 낌새를 느끼고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라고 되묻지만 의사는 직접 와서 들어야 한다며 아주 ‘진지한’ 상황에 대한 암시를 남길뿐이다.


세상은 거대한 농담

현상은 확률로써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을 강의하는 물리학 교수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감독의 기지가 놀랍다. 현상을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으로 설명하지만, 결국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직업인이 겪는 일화가 던지는 ‘세상이 왜 이래’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남는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 이유 없이 벌어지는 불행들을 교차로 보여주며 그 속에 다양한 암시를 드러내 관객을 생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다. 코엔 형제의 천재성은 농담처럼 이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웃지 못하는 사건들은 땔 수 없는 숙제로 곁에 남는다. 결국 나는 세상은 거대한 농담이고 우리가 진지할수록 더욱더 농담 같아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코엔 형제는 영화 내내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장확하게 잘 설명할 수 있나. 그 질문에 이어 영화 시작 전 화면에 비친 성서학자 라시의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는 문장만이 다시 이어질 뿐이다.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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