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다가오는 것인가 다가가는 것인가
빌 어거스트 감독(2014)
가보지 못한 마을과 도시와 국가에 대해서는 상상으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어느 개인이 삶으로부터 얻은 지혜 또는 어떤 작가의 책에서 배운 지식은 당대를 대표하거나 보편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이지 않은 지혜와 지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 때문에 삶이 조금이나마 풍성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연적이라고 착각하는 주어진 시스템을 벗어나고, 잘못된 것을 부정하며 새롭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비 오는 아침, 다리 위의 한 여자
사건의 출발은 비 오는 아침, 다리 위에서 강바닥을 쳐다보며 그곳으로 몸을 던지려고 하는 어느 젊은 여자로부터 시작된다. 교사인 중년의 남자 그레고리우스는 그녀를 발견하자 말자 다리 아래로 끌어내린다. 둘은 비에 흠뻑 젖은 채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가득 찬 교실에 들어선다. 이 이상한 풍경에 아이들은 놀랬지만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교사는 젊은 여성의 코트를 벽에 걸고 교실 벽면 구석에 자리를 내어주고는 “앉아 있으라” 권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말자 그녀는 자리를 뜨고, 주인공은 걸려있던 코트를 들고 따라나서지만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코트 안에서 운명 같은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의 책에는 곧 출발할 리스본행 열차 티켓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교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차역으로 간다. 그녀는 보이지 않고, 기차는 경적을 울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는 머뭇거리다 그 열차에 올라타고 만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은 ‘리스본의 봄’,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불리며 포르투갈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1974년 4.25 혁명을 배경으로 쓰인 한 남자의 에세이였다. 그의 이름은 아마데우였고 부유한 대법관의 아들이었으며 총명하여 2년이나 월반한 수재였다. 하지만 그는 레지스탕스였다. 불온서적을 몰래 훔쳐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대학 졸업식 날에는 졸업생 대표로 체제를 부정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꼬집는 연설을 한다. 졸업 후 그는 의사가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혁명 활동에 가담한다.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책에 홀린 듯 작가의 집을 찾아간다. 스위스 어느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그는 운명처럼 타게 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내려 그의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책을 쓴 아마데우는 오래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라는 문장이 남겨진 묘비만이 그레고리우스가 찾은 유일한 그의 자취였다.
운명은 다가오는 것인가 다가가는 것인가
우연히 시작되어 운명처럼 이끌린 여행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어두운 밤 길에 자전거와 부딪혀 안경이 부서진다. 새 안경을 사러 방문한 안경점에서 우연히 아마데우의 친구 주앙의 조카인 아드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 계기로 인해 책에 등장하는 아마데우의 혁명동지이자 친구인 조지와 주앙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스테파니아를 만나 그들이 겪었던 드라마 같은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마데우가 졸업 연사에서 남겼던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라는 말처럼 그레고리우스는 평범한 출근 날 우연히 자살을 목격하고, 우연히 책과 열차 티켓을 얻게 되고, 우연히 아드리아를 만나 책 속 주인공들을 만난다. 며칠 동안 우연과 우연이 겹쳐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새로운 운명을 향해 달려간다. 혁명 한 번 없었던 지루한 나라 스위스에 살며 재미없는 주제로 수업을 하고 이혼 후에 불면증으로 혼자 체스를 두며 아침을 맞이하는 그레고리우스는 이 놀랍고 드라마틱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었다고 자책한다.
그 푸념을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앞에서 아드리아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남긴다. 그러자 아드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군요”라고 되묻는다. 여기에 머물러 달라고 하는 아드리아의 부탁에 그레고리우스의 얼굴은 떨리고, 영화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인물을 멀리서 비추며 끝이 난다.
그가 열차를 탔는지 타지 않았는지는 우리의 판단에 달렸다. 그리고 우리의 운명은 다가오는 것인지 다가가는 것인지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정의될 것이다. 우연이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감독이라면 주어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삶은 시작되었고 막은 올랐다.
©️key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