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테레즈는 사람을 찍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를 사람에게 투영하는 행위는 한 개인의 영적 존재감을 망치려 드는 오만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물은 나의 시선을 부담 없이 두고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사진작가로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팔았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그녀는 외로웠다. 웃음과 낭만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자신이 위로받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관리자의 매서운 눈과 난폭한 입만이 마주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레즈는 캐롤을 만난다. 만남은 순간적으로 핑크빛으로 물들어 일상 곳곳에 번진다. 캐롤은 손님이었고, 테레즈는 친절한 점원이었다. 손님과 고객. 성사된 거래로 주고받는 상품 뒤로 둘은 묘한 교감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캐롤이 두고 간 장갑은 테레즈에게 속마음을 전달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테레즈가 장갑을 캐롤에게 보내면서 둘은 또 한 번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많은 대화가 필요 없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고급스러운 캐롤의 매혹적인 눈빛은 테레즈를 흥분시켰다. 이후 테레즈는 카메라를 들어 캐롤을 찍기 시작한다. 테레즈는 자신이 캐롤로부터 얻는 자유와 영감을 그녀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그녀 뒤에 숨겨진 아픔. 병리적인 현상으로 치부되는 동성에 대한 사랑. 딸을 뺏긴 엄마. 구속받는 여성으로서의 지위. 테레즈는 캐롤이 가진 그 모든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품 안으로 넣어 치유하고 싶었다. 이토록 아프고 불완전한 찬란함이기에 테레즈는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의 가장 완벽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는 잔잔한 핑크빛 파도를 타고 유유히 노를 젓는 기분으로 전개된다. 보는 내내 숨을 죽이고 아름다운 영상과 감미로운 음악에 넋을 놓고 보았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떠올랐다.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